정치이슈

통합진보당 해산이 多樣性(다양성) 훼손이라고?

도깨비-1 2014. 12. 30. 09:11

류근일 칼럼

통합진보당 해산이 多樣性(다양성) 훼손이라고?


입력 : 2014.12.30 03:04 / 조선일보


자기 이익 추구할 自由라도 남 해코지 않아야 허용돼
통진黨이 체제 파괴 기도해 다양성 해친 게 분명한데 그들의 不寬容 봐줄 수 없어
假面과 참모습을 구분해야

 

헌법재판소는 찬성 8, 반대 1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이 결정에 61%의 여론이 "잘했다"고 호응했다. 대세였다. 그러나 "헌재가 잘못했다"고 한 반(反)대세의 역류(逆流) 또한 집요했다. "헌재 결정이 다양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다양성을 위해선 관용이 필수적인데 관용엔 한계가 있어야 하나 없어야 하나? 다시 말해 관용할 용의가 없는 불관용도 관용해야 하나?

예를 들어 자기들과 결혼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파키스탄 여성 100여 명을 학살한 탈레반을 다양성의 하나로 관용해야 하는가? 서방 기자들 목을 잘라 죽이는 IS도 관용할 수 있고 관용해야 하는가? 독재자 동상에 페인트를 뿌리려 한 주민을 공개 총살하고, 그의 삼족(三族)을 수용소에 가두는 것도 '다양성의 하나'로 쳐줘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폭정을 추종해 대한민국을 깨부수려는 'RO 전사(戰士)'도 다양성의 하나로 방치해야 하는가?

일부 다문화주의자는 그런 불관용의 극치도 '내재적(內在的) 접근법'으로 이해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 중엔 자유주의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도 물론 있다. 호주 원주민, 캐나다 퀘벡 주민, 영국 웨일스의 켈트족, 이슬람 이민자 같은 소수파의 문화적 독자성과 사회적 권익을 보호해주자는 주장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다양성을 위해선 자유민주주의만을 국가 운영의 포괄적 원리로 삼아선 안 되고 '자유 없는(illiberal)' 민주주의도 그와 대등한 원리로 대접받아야 한다. … 이를 위해 우리 헌법도 '자유'민주주의 간판을 떼고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 간판을 달아야 한다" 어쩌고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런 종류의 다문화주의는 통진당의 위헌(違憲), 민주적 기본 질서 위배, '국가 기간 시설 폭파' 운운도 다양성의 하나로 관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해코지 원칙(harm principle)'을 무시한 억지다.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한 각자는 자기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고 했다. 해코지하는 자유는 관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 철학자 존 롤스도 불관용의 위협이 관용의 체제를 위태롭게 할 때는 제약해야 한다고 했다. 영국 철학자 칼 포퍼는 아예 직설적으로 말했다. "불관용은 관용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통진당은 대한민국을 해코지했나, 안 했나? 했다. 증거가 있나? 있다. 헌재 심리 때 다 나왔다. 그 후로도 하태경 의원의 폭로대로라면 북한은 왕재산 간첩을 통해 '진보의 통합'과 '야권 연대'를 시종 지령했다. 왜? 대한민국의 다양성 체제를 자기들의 전체주의 체제로 변혁(해코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래서 "북한과 통진당이 먼저 다양성을 훼손(해코지)하려 했다"고 해야 맞지 "헌재가 먼저 다양성을 훼손(해코지)했다"고 말하면 그건 거꾸로다. 아니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통진당 해산이라는 대세를 거스른 또 하나의 역류는 "통진당에 대한 판단을 유권자의 선택에 맡겨야지 왜 헌재가 나섰느냐?"는 시비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헌재가 유권자와는 무관하게 공중에서 추락한 외계인의 UFO라도 된다는 것인가? 대의제 민주국가에선 유권자가 매사 직접 결정하지 않고 자기들이 만든 헌법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결정한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따라서 유권자의 간접 결정이다. 이런 이치를 정말 몰라서 '유권자의 판단' 운운하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건가?

이런 궤변이 있을 줄 미리 알았던지 안창호·조용호 두 헌재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 결정문에 이런 보충 의견을 남겼다. "맹자에 '피음사둔(詖淫邪遁)'이라는 말이 있다. 번지르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는 뜻이다.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과 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 등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런 충고를 정작 겸허하게 경청해야 할 당사자들은 그러나 '철판 깔기'로 나오고 있다. '원탁회의'인가 하는 데선 "통진당 부활…" 운운한 친구도 있었다. 통진당을 왕창 키워준 '한명숙 민주당'도 사과 한마디 없다. 새누리당 웰빙족(族)도 "우리가 너무 안일했다"는 자책 한마디 없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국인 세대는 위대했다. 그러나 오늘의 여야 정치인 세대는 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의미를 저버리고 있다. 그래서인가? 세모(歲暮)의 찬바람이 유난히 더 썰렁함을 안겨준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