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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將軍을 위해 누가 목숨을 걸겠는가

도깨비-1 2014. 9. 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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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將軍을 위해 누가 목숨을 걸겠는가
입력 : 2014.09.05 05:39/ 조선일보 이한우 문화부장


 

1980년대 말 군(軍) 복무를 할 때다. 대부분 그렇지만 그저 하루하루 무탈하게 지내다가 나가자는 생각이 전부였다. 어느 겨울날 눈이 많이 내렸다. 대대장은 저녁때 5분대기조 출동 명령을 내렸다. 임무는 큰길에서 사령관 공관까지 도로 위의 눈을 치우는 것이었다. 밤눈을 맞으며 두 시간가량 눈을 치우고 있는데 퇴근 후 외출을 마친 사령관이 공관으로 복귀했다. 그때 기자는 공관 내 미니 골프 연습장 위의 그물에 올라가 눈을 털어내는 중이었다.

차에서 내린 사령관은 그물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눈을 털어내고 있는 기자를 향해 손짓하며 대대장에게 호통쳤다. "내가 눈 치우지 말라 그랬지. 그리고 저 위에 왜 병사를 올라가게 한 거야. 어차피 녹을 눈인데. 너 같으면 저기 올라가서 눈 치우고 싶겠어?" 그러고는 당장 병사들을 내무반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말했다. 입대 후 처음으로 '아, 저런 지휘관의 명령이라면 목숨도 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해준 것은 공관의 식사를 준비하던 병사로부터 전해 들은 일화였다. 주말에 간혹 사령관 자녀들이 공관에 내려오는데 늘 공관 당번병들이 먼저 식사한 다음에 바로 그 자리에서 반찬만 다시 차려 사령관과 그 자녀들이 식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저 병사들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연히 그 사령관이 군대 내 잡지에 기고한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제목은 '병주주의(兵主主義)'였다. 간단히 말해 군대의 주인은 장교가 아니라 사병이라는 내용이었다. 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군대 내에서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조선시대 양반과 상놈의 차별을 방불케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알게 된 '병주주의'라는 말과 평소 그가 말 그대로를 실천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밖에도 이와 비슷한 여러 일화를 접할 수 있었다.

설사 그것이 연출이었다고 해도 좋다. 그것은 적어도 마음속에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새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군대가 아무리 질서를 중시하는 조직이라지만 그곳도 사람이 움직인다. 지휘관은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이 그 명령을 따르도록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자리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부모가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이래라저래라 하면 자식이 속으로 반발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 후 기자는 존경하는 사람 목록에 그 사령관을 추가했다. 군대에서 사령관과 사병으로 만난 관계이긴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그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령관은 뒤에 육군참모총장이 된 김진영(육사 17기) 장군이다.

옛날 중국에는 장수가 병사들을 너무 챙겨주자 한 병사의 어머니가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잘해주니 자기 자식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을까 봐 그랬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군대는 지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물의를 빚은 신현돈 전 1군사령관의 행태를 보니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군에 간 자식이 적군이 아니라 아군에게 맞아 죽거나 폭력 등으로 인해 자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