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논란' 폄하하는 언론
입력 : 2014.09.04 05:33/ 조선일보
지난달 26일 국사편찬위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토론회'. 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檢定)으로 할지 국정(國定)으로 할지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보수 성향의 교육학자가 "현행 검정 체제는 8종 가운데 4종의 고교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국정 교과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진보 진영의 역사학자는 "친일파가 유관순을 발굴해 이화학당 출신의 영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관순 논란'이 불거지게 된 계기는 바로 이 발언이었다.
본지는 한국사의 중요 인물을 집필자가 사관(史觀)에 따라 자의적으로 누락했다면 큰 문제라고 판단해 이를 집중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를 누락한 교과서의 담당 집필자도 일일이 취재했고, "친일파가 발굴해낸 인물이라 유관순을 교과서에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초·중학교 때 배워서 고교 교과서에 담지 않았다"는 등의 해명도 가감 없이 보도해 반론권도 보장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과 지난 1일, 진보를 표방하는 두 언론은 '예전에 국정으로 발행된 국사 교과서도 유관순을 기술하지 않았는데, 보수 언론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로 유관순 논란을 부추긴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이 근거로 든 건 2002년부터 사용된 7차 교육과정의 마지막 국정 국사 교과서다. 이 국정 교과서에도 유관순 서술이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전근대사를 주로 서술한 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발행됐고, 그 이후 시기를 담은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으로 별도 발행됐다. 이 때문에 국정 국사 교과서는 3·1운동을 비롯해 근현대사에 매우 적은 분량만 할애했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은 쏙 빼놓은 채 '국정 교과서에도 유관순이 없었다'고만 주장한 것이다. 이들 언론은 유관순 논란을 촉발시킨 진보 진영 역사학자의 발언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조선일보가 뜬금없이 유관순 열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건 뭔가 의도가 있다는 식이다.
올 초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등학교에는 진보·좌파 성향 단체들이 집요하게 압력을 가했다. 당시 이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친일(親日)'로 낙인찍은 근거 중 하나는 일본군위안부 사진 설명에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쓴 대목이었다. 앞서 언급한 진보 언론들은 문제의 사진 설명 바로 앞 페이지에 '우리 여성들이 동남아 일대로 끌려가 일본군위안부로 희생당하였다'고 서술된 대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사진 설명의 '따라다니는'이라는 표현만 집요하게 문제 삼으면서 교학사에 '친일' 낙인을 찍는 데 앞장섰다.
유관순 열사를 한국사 교과서에서 아예 빼는 건 문제가 없고, 자칫 집필자의 세심하지 못한 실수로도 볼 수 있는 거슬리는 어휘 선택은 '친일'의 확고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행태는 자기 눈의 들보는 외면한 채 남의 눈의 티끌만 트집 잡는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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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교과서, 사실과 의견부터 구분하라
입력 : 2014.01.28 03:04/ 조선일보
얼마 전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정치 이슈가 돼 신문지상에서 매일 톱뉴스가 돼 교육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나 행위가 표준이나 정석에 가까울 때 우리는 '교과서적(textbook style)'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그만큼 교과서는 표준이나 기준을 제시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지식은 각 분야 학자에게 검증되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지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에 어떠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절대불변의 것처럼 소개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정책과 정부의 업적을 집필자에 따라 서로 대조적인 해석을 달아 집필했다는 것은 이미 교과서로서 본분을 잊은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가 교과서로서 역할을 하려면 대통령이 누구라도 이어지는 맥이 있어서, 그것을 커다란 개념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학생들이 배워야 할 가치와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중학교 때 전(前)근대사를 배웠다고 해서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에 집중하여 배정했다는 것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깊어지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교육과정 구성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잘못 배분된 것이라고 본다.
교과서에서는 기준이 되는 지식을 걸러서 학생들의 이해 수준에 맞게 제시해야 하고, 각 사건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교사가 수업시간에 여러 가지 자료를 활용·비교하여 학생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가 길러질 것이다. 교과서에 이미 정치적인 평가가 서술되어 있다면 학생들은 그것이 모두 절대적인 사실인 것처럼 믿게 되는데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교사나 교과서가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판단을 구분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학생들이 자료 속에서 객관적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그것을 뛰어넘어 자기의 생각을 이끌어 낼 때 비로소 창의적 사고가 생기게 된다.
교과서나 교사는 우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일부터 정직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 집필자는 교육자적인 양심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며, 교육부는 직접적인 간섭과 감독보다는 그러한 집필자들을 신중하게 걸러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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