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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現의 자유와 국민의 '안 볼 권리'

도깨비-1 2014. 9. 4. 10:00
  • 表現의 자유와 국민의 '안 볼 권리'

 

 

입력 : 2014.09.02 05:51 /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
김태익 논설위원
광주비엔날레 20주년 잔치에 재를 뿌릴 뻔했던 '홍성담 걸개그림 사태'는 작가 홍씨가 문제의 작품 '세월오월' 전시를 자진 철회함으로써 일단 재봉질은 된 듯하다. '세월오월'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시장 바깥벽에 나붙을 뻔했다. 그러나 그림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가 돼 전시가 유보됐었다.

홍씨는 작품 철회 의사를 밝히며 "인권과 문화의 도시 광주는 이번 사건으로 껍데기만 남았다"며 "나는 이미 죽어버린 광주에서 나의 작품을 일절 전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광주를 "내 지친 몸과 마음을 의지했던 생물학적·정치적·사회적·예술적 고향"이라고 한 홍씨로선 이런 고향에 자기 작품이 걸리지 못하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광주는 죽지도 않았고, 껍데기만 남지도 않았다.

홍씨가 '세월오월'을 서울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제 돈 들여 전시하거나 자기 집에 걸었으면 별문제 안 됐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 이웃집 흉보는 것보다 쉬운 시대다. 홍씨는 대통령 허수아비가 문제 되자 대통령 얼굴을 지우고 닭을 대신 그려넣었다. 그 '닭'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런 점에서 '세월오월'을 둘러싼 사태의 본질은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홍씨는 이번 사태로 잃은 게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께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세월호 사건을 "국가가 벌인 대량학살"이라고 했다. 또 "이 같은 폭력이 빚어진 것은 무능한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기록하기 위해 '세월오월'을 그렸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작품을 통해 홍씨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 작품이 논란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행정 당국의 부당한 간섭으로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예술가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작가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국민이나 관객에겐 보고 싶지 않은 작품을 안 볼 권리도 있다. 이번처럼 압도적인 공적(公的) 예산 지원을 받아가며 공공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도미에는 역사상 위대한 풍자화가로 꼽힌다. '풍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사르카즘(Sarcasme)은 적의 살가죽을 벗겨낸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미에의 대표작 '삼등열차'에선 이런 살의(殺意)가 느껴지지 않는다. 고된 하루 노동을 마치고 삶의 희망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가는 승객들을 바라보는 도미에의 시선은 따뜻하다. 이런 따뜻함이 권력자나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어떤 분노보다 더 아프게 와닿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쟁과 인간의 야만성을 고발한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히틀러나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을 비판하는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서가 아니다.

모든 예술가가 그려내는 게 다 예술일 수는 없다. 작가가 증오와 적의(敵意)를 날것으로 쏟아낸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39개국 작가 115명이 참여하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가 5일 시작된다. 앞서 가는 작품들을 보며 시대의 풍향(風向)을 읽으려고 광주행 KTX를 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