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김대중 칼럼-끌려 다니지 말고 할 말 할 때다

도깨비-1 2014. 8. 26. 13:48

어수선하고 불안한 요즘 세상일… 당국 탓할 뿐 개인 '잘못' 없어
사건·사고 대처도 順理 벗어나며 체제 지지와 반대 대결로 증폭돼
정권이 중심 못 잡아 얕보이니 국민이 나서 주인 의식 보여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요즘 세상일이 너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자고 깨면 세월호특별법 얘기고, 여야의 싸움질이고, 대통령에 관한 얘기뿐이다. 거기다가 군(軍) 장병들의 폭력 사고, 현충원을 점령(?)한 북한 김정은의 조화(弔花), 국회의원 비리 사건 등이 겹치고 덮쳐 그야말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단식 중에 실려 갔다는 세월호 유족 '유민 아빠'가 실은 이혼해 그동안 아이를 돌보지도 않았다는 엊그제 보도는 우리를 너무 힘 빠지게 한다.

이러다가 정말 무슨 일 나지 싶다. 나라가 온통 사고투성이고 사고가 났다 하면 무슨 대책위에, 무슨 책임론에, 무슨 보상 얘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한다. 정부 기구나 민간인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나라 책임과 당국 책임을 내세우며 국민 세금으로 메울 생각뿐이니 정말 나라가, 국민이 무슨 봉이라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개인의 '잘못'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김정은의 조화를 북한에 가서 떠받들고 온 현직 국회의원과 전직 국정원장의 정신 상태는 어떤 것인지, 그것을 허락한 당국의 정신 상태는 어떤 것인지, 아무리 온갖 음모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어떻게 세월호가 국정원 또는 미군에 의해 침몰한 것으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일개 외국 신문이 결혼도 안 한 남의 나라 여성 대통령을 '7시간의 행방불명'으로 엮어 치졸한 상상력을 유발하게끔 됐는지, 어쩌다가 교황이 이 땅에 와서 북한 인민의 인권 한 번 거론하지 않게끔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르겠는 것은 또 있다. 어찌하여 이 땅의 종교 지도자들이 국가 전복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 그것도 재판 중에 있는 자를 선처하도록 탄원서를 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한국의 사법 당국은 수없는 사람이 지목해왔고 그들 스스로도 시인해온 '종북(從北)'을 거론했다고 유죄를 때리는지, 도대체 이 나라의 공직 윤리가 얼마나 타락했으면 지검장 자리에 오른 자가 길거리에서 그 짓을 할 수 있는지ㅡ지금 이 땅은 중병(重病)을 앓고 있는 중환자 신세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에 이성합리, 순리(順理)와 상식의 기운이 쇠잔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사고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모두가 상식에 어긋나고 순리에 벗어나는 일들이다. 사고 발생 자체가 그렇다. 싱크홀, 교통사고, 군 폭력, 가정 폭력, 자살 빈발 등은 우리 사회의 이상 징후다. 그에 대한 대처는 더 걱정스럽다. 문제 해결이 순조롭지 않으면 단체로 드러눕고, 떼쓰고, 악쓰고, 그것도 약하다 싶으면 단식하고, 삭발하고, 그리고 드디어는 개인 역사를 뒤져서 협박하고 인격 매도하는 일이 다반사다. 두려운 것은 이런 일의 진행이 다분히 패턴화(化)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 이상 징후가 우리나라 체제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대립, 정권에 대한 증오와 옹호의 대결을 둘러싸고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상황은 우리가 과연 같은 조상을 섬기며 같은 언어를 쓰는, 동질의 민족인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요즘 우리 사회의 대결, 대립은 단순한 의견 차이나 관점 또는 이해관계의 대립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어느 몰지각한 야당 의원이 적절히(?) 작명했듯이 '원수(怨讐)'끼리의 그것이다. 한쪽의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이 종식돼야 끝나는 게임 같다. 아니, 어쩌면 한쪽이 아주 죽어 없어져야 끝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두렵고 무섭다. 정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야당이 정권 맡아서 한번 해보라고 하고 싶은 심경이다. 하긴 요즘 문재인 의원의 행보를 보면 그가 지난 대선에서 대권을 차지했더라면 지금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을까를 새삼 상상하게 된다.

이런 모든 문제와 현상은 물론 전부 다는 아닐망정 국가 운영을 담당한 세력이 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해 반대쪽으로부터 얕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완고한 지지 세력을 갖고 있다지만 그의 정권과 정치는 국가를 이끌어갈 강력한 리더십과 용기와 의지와 실행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박 대통령의 인사(人事) 사고와 '원맨 정치'는 정권의 경화증을 엿보게 한다. 대통령 비위 맞추기에만 매달린 청와대 비서진의 '충성심',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내각의 존재감은 이 정권이 과연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실세인지를 의심케 한다.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앞으로 3년 반을 이대로 갔다가는 나라는 정말 반 토막 날지도 모른다. 나라의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국민이라도 나서서 직접 매를 들어야 할 상황이다. 양식 있는 국민이 상식과 합리에 따라, 여와 야의 이해관계를 떠나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차원에서 할 말을 하고 나무랄 것은 나무라며 때릴 것은 때리는 주인 의식을 보일 때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일보 2014.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