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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자』와 성인의 도? -왕필 노학(老學)의 의리적 전회-

도깨비-1 2014. 8. 1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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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철학 2010 제21권 2호

 

 

『노자』와 성인의 도

-왕필 노학(老學)의 의리적 전회-

 

김 시 천

 

 

요약문

 

위진(魏晉) 초기에 등장한 왕필의 『노자주』는 현대에 와서 『노자』의 정통 주석서로 간주된다. 왕필은 당시의 현학 사조를 주도한 인물로서, 『노자』의 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한 철학자로 평가된다. 하지만 『노자주』의 언어와 내용을 분석하면 이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왕필은 『장자』의 논리를 원용하여 『노자』를 『주역』의 언어로 대체하고 있으며, 따라서 『주역』으로 『노자』를 해석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노자주』는 『노자』의 원의를 드러내는 해설서가 아니라 왕필 철학 체계의 한 단계를 보여주는 과정적인 텍스트이다. 왕필의 철학은 『노자』 사상의 의의를 ‘숭본식말’(崇本息末)로 평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리적 ‘경학’을 구성하는 토대 논리로 이용한다. 이 때 ‘경학’이란 언어의 자구 해석이 아니라 성인 공자의 도를 회복하는 데에 있으며, 이 정신은 허위적인 인의의 실천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에 대한 자각을 통해 성취된다.

 

궁극적인 것은 말로 다 표현될 수는 없으나 말은 상(象)을 이해하는 수단이며, 상은 성인의 궁극적인 뜻(意) 즉 경전의 ‘의리’를 간취하는 수단이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왕필은 『논어』의 ‘서’(恕)를 공자의 정신을 관통하는 도로 이해한다. 왕필 철학은 『노자』와 『장자』의 언어와 논리를 이용하여 공자의 정신으로 회귀하는 사유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적 전회를 이 논문은 ‘의리적 전회’라고 부르고자 하였다.

 

주 제 : 중국철학, 현학, 왕필, 『노자주』
검색어 : 도가, 유가, 경학, 현학, 의리적 전회, 서(恕)

 

 

필자는 기존에 발표한 논문에서1) 왕필은 『노자』에 기반하는 도가 혹은 신도가가 아니라 역학에 토대를 둔 유가이며, 『왕필노자주』의 기본 성격은 『노자』의 철학적 정신을 드러내는 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를 『주역』의 정신으로, 즉 ‘노학(老學)에서 역학(易學)으로’의 해석의 전환을 시도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필자는 이를 ‘노학의 의리화(義理化)’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리’란 송명 시대의 ‘의리’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멀지도 않다.

신유학에서의 ‘의리’가 이기(理氣) 심성론을 위주로 하는 도덕적 의리의 천명에 있다면, 왕필에게서의 ‘의리’란 상수(象數)와 대비되는 의리로서, 이는 당시에 일어난 청담(淸談)이나 언의지변(言意之辨)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그러한 의리이다. 달리 말하자면 왕필의 의리란 경전을 해석함에 있어 ‘언어적’ ‘논리적’ 태도를 중시하는 관점이다. 『왕필노자주』는 『왕필주역주』만큼이나 이러한 ‘의리적’ 방식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2)

 

앞서 필자는 왕필 철학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위진’(魏晉) 시대가 아닌 ‘한대’(漢代)와의 관계로부터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종종 『왕필노자주』에서 인의를 비판적으로 언급한다는3) 점 만으로 이를 『노자』의 “인을 끊고 의를 버리라”(絶仁棄義)는 것과 관련지어 그를 도가적으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간주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실상 『왕필노자주』를 유가와 도가라는 판정 기준으로만 보아 온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정작 왕필에게서 ‘유가’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왕필에게서 ‘의리적 방법’의 의미란 왕필이 규정하는 ‘유가’로부터의 벗어나 공자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언어의 세계로 이루어진 ‘경학’을 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왕필의 의리란 언어의 문제에 대한 검토이며, 그 실질적인 내용은 근본을 숭상하여 말단을 살리자는 것이다.

 

왕필이 보기에 『노자』의 장점은 바로 ‘숭본식말’(崇本息末)의 논리로 투철하다는 데에 있다.4) 달리 말하자면 근본을 강조하는 공자의 정신으로부터 벗어난 ‘타락한 유가’를 『노자』의 인의 비판을 빌어 바로 잡음으로써 진정한 유가의 정신을 재정립하겠다는 전략적인 방법이 바로 ‘숭본식말’의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도가의 독자적인 사유를 드러내는 ‘유’(有)와 ‘무’(無)는 이에 부수하는 비판적이고 매개적인 논리로서 궁극적으로는 ‘원’(元)이나 ‘일’(一)로 환원된다.5)

 

이하의 논의에서는 왕필이 『노자주』에서 펼치는 논리의 줄타기를 통해 결국 『주역』과 『논어』-이 두 경전은 양웅(揚雄) 이래 공자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이다-로 회귀한다는 점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결국 왕필이 개척한 새로운 경지는 당대(唐代)를 거치면서 송명(宋明) 시대에 개화하는 유가 사상 발전의 중요한 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6)

 

1) 김시천, 「노학에서 역학으로」, 『도교문화연구』, 제23집, 2003 가을호.
2) 왕필의 『노자주』가 『노자』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왕필이 『노자』 해석에서 취하고 있는 이러한 ‘의리적’ 방법은 우리가 오늘날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철학적’ 연구에 잘 부합한다. 20세기 동아시아에서 전통 사상을 ‘철학’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에서 분명하게 선언되었듯이, 형이상학과 논리학 그리고 윤리학이다. 따라서 『노자』하면 왕필이 떠오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왕필이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노자』 주석가라는 평가 자체가 ‘역사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왕필은 <우리 시대의 노자 읽기>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해석의 틀이라는 것이다.

3) 왕필이 ‘인의’를 언급한 곳은 『노자주』에서 5번, 『노자지략』에서 3번이다.
이 가운데 다소 부정적으로 보이는 언급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우 긍정적인 언급 또한 만만치 않게 나온다. 부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곳은다음과 같다.

“凡不能無爲而爲之者, 皆下德也, 仁義禮節是也.”(38.1), 仁義, 母之所生, 非可以爲母.(38.1), “患俗薄而名行․崇仁義, 愈至斯僞, 況術之賤此者乎? 故絶仁棄義以復孝慈, 未渠弘也.”(『老子指略』)

이와 달리 긍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곳은 다음과 같다. 19.1 “仁義, 人之善也.”(19.1),
“夫仁義發於內, 爲之猶僞, 況務外飾而可久乎!”(38.1), “用不以形, 御不以名, 故仁義可顯, 禮敬可彰也.”(38.1), “興仁義以敦薄俗, ”(『老子指略』), “仁義, 行之大者也.”(『老子指略』)
4) 『老子指略 198: 老子之書, 其幾乎可一言以蔽之. 噫! 崇本息末而已矣.
5) 정세근, 『제도와 본성』, 34-5쪽. 정세근은 여기서 ‘무’가 ‘유’의 본원이자 주체로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실상 ‘체’(體), ‘주’(主), ‘일’(一), ‘리’(理), ‘종’(宗)과 같은 개념으로 대치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결국 ‘무’는 ‘유’를 위한 ‘무’이지 그 독자적인 지위는 상실하게 된다

6)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대에 편찬된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가운데 『주역』에 대한 주는 왕필의 주석이 채택되어 당시에 가장 널리 읽혔다는 사실이다.

 

 

1. ‘유가’와 경학

 

철학사에서 한대는 무엇보다 훈고(訓詁)를 중심으로 하는 경학의 시대이다. 경학이란 천지(天地)와 천하(天下)를 포괄하는 세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불변의 원칙들의 세계인 ‘경전’(經典)7)에 대한 해석과 이의 사회적 실현을 도모하려는 학문의 총체를 일컫는다. 이른바 한무제(漢武帝) 때에 ‘독존유술’(獨尊儒術)을 표방하면서 ‘오경박사’(五經博士)가 설치되고 이에 따라 『역』(易), 『서』(書), 『시』(詩),『예』(禮),『춘추』(春秋)에는 뒤에 ‘경’(經)이란 칭호가 붙으면서 가히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게 된다. 특히 경학에서의 ‘사법’(師法)과 ‘가법’(家法)이 정착이 되면서부터 경에 대한 숭앙의 풍조는 일종의 판례에 해당하는 ‘조례’(條例)라는 형식을 통하여 법전화되기에 이르고, 이에 따라 한대의 사회에서 경은 사람들의 의식주를 비롯한 일상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권위를 지니게 된다.8) 달리 말하자면 경학이란 우주와 인간을 통괄하는 질서의 언어이자 그 구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선진 시대의 유학은 이제 선진(先秦)의 제자(諸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보편적 원리의 담지자로서의 지위로 상승한다.
더욱이 후한(後漢)에 이르게 되면 가학(家學)적 전통의 테두리를 벗어나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태학(太學)을 통해 이른바 여러 경전에 능통한 ‘통유’(通儒)가 등장하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하휴(何休), 허신(許愼), 가규(賈逵), 마융(馬融)과 같이 경학을 종합화하려는 학자들이 나오고 급기야 정현(鄭玄)과 같은 경학의 집대성자가 출현하기에 이른다.9) 즉 한 학자가 이제는 여러 경전을 넘나들면서 상호간에 소통되는 공통의 논리를 밝혀냄으로써, 근원적인 하나의 원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서서히 자리잡아가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금고문(今古文) 논쟁, 번쇄한 훈고에 대한 집착, 각종 참위(讖緯)나 상수(象數)의 유행 등은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얽혀 들어가면서 커다란 혼란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왕필이 역학(易學)에서 이루어낸 ‘상수역’(象數易)에서 ‘의리역’(義理易)으로의 전환이라는 사건은 바로 번쇄하고 잡다한 한대 학술에 대한 비판이자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위진 시대와 같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의 정신의 표출이자 새로운 원리를 확립하기 위한 모험이었다. 왕필이 『노자』에 대한 주석에 착수한 것은 바로 이러한 첫 포석이었다. 왕필이 『노자』에 주석하면서 그 대의와 자신의 사상적 입각점을 밝힌 『노자지략』의 다음 문장은, 왕필이 당시의 사상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왕필노자주』를 통해 의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7) 『白虎通疏證』 「五經」 447: 經, 常也. 有五常之道, 故曰五經.

8) 박원재 지음, 『유학은 어떻게 현실과 만났는가―선진 유학과 한대 경학』, 서울: 예문서원, 2001, 171-172쪽 참조.
9) 박원재, 같은 책, 187쪽.

 

 

"그러나 법가는 ‘제동’(齊同)을 숭상하여 형벌로써 단속하려 한다. 명가는 참됨을 정하는 것을 숭상하여 말로 바로잡고자 한다. 유가는 ‘완전한 사랑’(全愛)을 숭상하여 명예로써 진작시키려 한다. 묵가는 절약의 정신을 숭상하여 억지로 그런 기풍을 세우고자 한다. 잡가는 여러 학파의 장점들을 숭상하여 이를 다같이 실천에 옮기려 한다. 저 형벌로써 ‘사람’(物)을 단속하면 꾸밈과 거짓이 생겨난다. 이름으로 ‘사람物’을 정하고자 하면 ‘이서’(理恕)를 반드시 잃고야 만다. 명예로써 ‘사람’(物)을 진작시키면 ‘경쟁 심리’(爭尙)가 일어나게 된다. 교만으로 ‘사람’(物)을 부추키면(立) 배반하고 어그러짐이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여러 가지를 섞어서 ‘사람’(物)에게 행하게 되면 혼란이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모두가 그 자식을 쓰되 그 어미는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정작 보존해야 할 것을 잃게 되니 아직 지키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목표는 같으나 길이 다르고 도달하려는 곳은 같으나 행하고자 하는 것이 서로 어그러지니 이를 배우는 자들이 목표에 대해 갈팡질팡하고 행할 바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장이 ‘법앞에서의 평등’(齊同)인 것을 보면 법가라 하고, 그 주장이 ‘참됨의 판정’(定眞)임을 보게 되면 명가라 하고, 그 주장이 ‘순수한 사랑’(純愛)인 것을 살피면 유가라 하고, ‘절약儉嗇’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묵가라 하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不系)을 보면 잡가라고 한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비추어진 모습에 따라 그에 대해 이름을 바로잡으려 하고 자신의 기호에 따라 그에 대해 자신의 뜻을 정한다. 따라서 어리석고 혼란스러우며 이리저리 따지는 논쟁이 분분하게 된 것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10)"

10) 『老子指略』 196-7: 而法者尙乎齊同, 而刑以檢之. 名者尙乎定眞, 而言以正之. 儒者尙乎全愛, 而譽以進之. 墨者尙乎儉嗇, 而矯以立之. 雜者尙乎衆美, 而總以行之. 夫刑以檢物, 巧僞必生; 名以定物, 理恕必失; 譽以進物, 爭尙必起; 矯以立物, 乖違必作; 雜以行物, 穢亂必興. 斯皆用其子而棄其母. 物失所載, 未足守也. 然致同塗異, 至合趣乖, 而學者惑其所致, 迷其所趣. 觀其齊同, 則謂之法; 覩其定眞, 則謂之名; 察其純愛, 則謂之儒; 鑒其儉嗇, 則謂之墨; 見其不係, 則謂之雜. 隨其所鑒而正名焉, 順其所好而執意焉. 故使有紛紜憒錯之論, 殊趣辯析之爭, 蓋由斯矣.

 

 

왕필은 ‘오가’(五家)에 대해 개괄하면서 각각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우선 왕필이 이해하는 법가의 핵심은 ‘형벌’에 의한 ‘평등’의 실현이다. 또한 명가의 핵심은 ‘언어’를 바로잡음으로써 ‘참을 판정’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명가’에 대해 왕필은 아무런 비판적인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데,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그가 ‘무명’(無名)의 철학자임은 분명한데 그 또한 ‘존비(尊卑)의 명분(名分)’은 긍정하는 유가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11)

그리고 왕필이 보는 ‘유가’(儒家)는 그 이념이 ‘온전한 사랑’(全愛)에 있다. 그리고 방법은 ‘명예’(譽)이다. 그리고 ‘묵가’(墨家)는 ‘절약’(儉嗇)에 있으며 ‘잡가’(雜家)는 이런 여러 학파의 장점을 모두 이행하려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왕필은 이러한 ‘오가’의 주된 주장이 낳는 폐해를 자신의 유명한 논리로 비판한다.

즉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그 자식은 쓰면서 그 어미를 버리는 것”(用其子而棄其母)이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왕필이 언급한 오가 가운데 유가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학문을 ‘가’(家)로 구분하는 것은 이미 그의 선대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전통이다. 사마담(司馬談)이 「논육가요지」(論六家要旨)에서 ‘육가’(六家)를 논한 것이나 반고(班固)가 「예문지」(藝文志)에서 ‘십가’(十家)로 논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반고의 「예문지」에서 채택하는 도서 분류 방식은 주의깊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칠략’(六略)이란
대분류에 육예략(六藝略), 제자략(諸子略), 시부략(詩賦略), 병서략(兵書略), 수술략(數術略), 방기략(方技略)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선진 제자라 부르는 각 학파는 이 가운데 제자략(諸子略)에서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縱橫家), 잡가, 농가(農家), 소설가(小說家)의 ‘십가’로 분류된다.

즉 유가는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여기에는 『맹자』(孟子), 『순자』(荀子), 『증자』(曾子), 『자사』(子思)와 같은 선진 유자(儒者)는 물론 동중서(董仲舒), 공손홍(公孫弘)과 같은 한대의 유자까지 포함된다. 이는 실상 공자와 그 제자 및 후인을 엄격하게 구분하고자 한 의도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왕필이 말하는
‘유가’는 오늘날 공자로 대변되는 유학을 지칭하는 의미와는 구별된다.

 

성인(聖人) 공자가 직접 편찬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문헌들은 「예문지」에서 ‘육예략’에 속하는데12) 여기에는 육경(六經)13)에 더하여 『논어』, 『효경』(孝經) 그리고 『소학』(小學)이 포함된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논어』와 『효경』그리고 『소학』이 후한 이래로 육경과 대등한 중요성을 획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고문학파의 경전 나열 순서를 따르고 있는 「예문지」에서 ‘육예략’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역경』으로서, 반고는 거기에 오상(五常)의 도를 대변하는 오경의 근원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14) 한대 경학의 주요 경전들이 ‘육예략’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은, 이러한 경전들은 어느 특정 ‘학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 들로써 성인 공자의 가르침의 정수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자면 ‘육예략’은 성인 공자의 정신을 대변하는 ‘어미’(母)라면 후대의 ‘유가’는 ‘자식’(子)에 속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학의 중심에 『역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왕필의 인의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 또한 이와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 것이다.15)

 

왕필이 이해하는 성인 공자의 정신은 ‘유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학파를 막론하고 그에 근거해야 하는 세계의 보편적 원리이자 삶의 준칙으로서 이른바 ‘근본’이자 ‘어미’(母)이며, 이것은 『역전』(易傳)이나 『논어』와 같은 공자가 직접 전한 언어의 기록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보편적 원리나 사회의 기본 규범은 경전과 공자의 말에서 찾아야 할 성질의 것이다.

문제는 경전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왜냐하면 경전이란 언어로 이루어 진 것이며, 비록 성인의 뜻이 거기에 담겨있다 하여도 언어가 지닌 본래적 불완전성은 성인의 진의(眞意)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학이 지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경학’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문자의 훈고가 아닌 그 문자에 담겨 있는 성인의 뜻(意)인 것이다. 그래서 왕필은 “뜻을 얻으면 그 말을 잊을 것”(得意忘言)을 강조한다.

 

11) 이에 대한 『왕필노자주』에서의 언급은 다음과 같다. 32.3: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注>: 始制, 謂樸散始爲官長之時也. 始制官長, 不可不立名分以定尊卑, 故‘始制有名’也. 過此以往, 將爭錐刀之末, 故曰‘名亦旣有, 夫亦將知止’也. 遂任名以號物, 則失治之母也, 故知止所以不殆也.

12) 오로지 ‘소학’에 속하는 것만이 공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13) ‘육경’(六經)이란 『역』, 『서』, 『시』, 『예』, 『악』, 『춘추』를 말하는데, 고문학파와 금문학파는 그 배열 순서가 다르다. 고문학파에 속하는 「예문지」는 앞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나 금문학파에서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로 나열하여 그 순서가 다르다.

14) 『漢書』 「藝文志」: 六藝之文: 樂以和神, 仁之表也. 詩以正言, 禮之用也. 禮以明體, 明者著見, 故無訓也. 書以廣聽, 知之術也. 春秋以斷事, 信之符也.
五者蓋五常之道, 相須而備, 而易爲之原, 故曰易不可見則乾坤惑幾乎息矣,言與天地爲終始也.
15) 『論語釋義』에서 「八佾」: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에 대하여 왕필은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당시의 사람들이 근본은 버리고서 말단만을 숭상하였다. 그런데 임방이 예의의 근본까지 생각이 미친 것을 높이 산 것이다.”(時人棄本崇末, 故大其能尋本禮意也. 622). 그리고 이러한 구분 방식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인’(自然爲仁)과 ‘억지로 가장하여 행하는 인’(爲仁)으로도 표현된다.

 

 

2. 의리적 전회: 성인의 도

 

과연 성인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주 이른 시기에 등장하였다. 이미 선진 시대 『장자』 「천도」(天道)에 나오는 윤편(輪扁)의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윤편은 거기에서 바퀴 깎는 방법을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에 비유하여 환공이 읽는 고인(古人)의 책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古人之糟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16) 중국 철학의 역사에서 언어의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선진 시대 명가(名家)의 발흥과 긴밀한 관련을 지니지만, 한대 이후 언어에 대한 문제는 경전을 구성하는 언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17)

왕필이 『주역』을 해석하면서 제시하는 말(言), 상(象), 뜻(意)에 관한 논의는 바로 이러한 논의의 흐름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한대를 거치면서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언어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종속되는데, 왕필은 다시 언어의 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바그너에 따르면, 과연 성인이 전하고자 하는 뜻이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가에 대해 왕필 이전에 전개된 입장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근본주의적(radical)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경전에 기록된 언어만으로는 성인의 뜻은 전혀 이해될 수 없다.

둘째는, 지칭적(referential) 입장이다. 경전에서는 언어가 지닌 한계를 피하기 의해 복잡한 장치들을 동원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전에서 사용되는 말과 글, 상은 지칭적 특질(quality)을 갖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는, 시의적(時宜的) 입장이다. 도(道) 자체는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데 불변의 본성을 찾으려 한 것은 잘못된 이해라 비판하지만 이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동중서에게서 드러나듯이 경학을 정
치적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도의 본성 자체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언어의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바그너는 본다.18)

그러나 한 왕조의 종언과 더불어 한대의 경학은 회의의 대상이 되고, 위진 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언어의 한계에 초점이 모아진다. 다음의 일화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준다.

 

16) 『莊子』 「天道」: 桓公讀書於堂上, 輪扁斲輪於堂下, 釋椎鑿而上, 問桓公曰:
“敢問, 公之所讀者何言邪?” 公曰: “聖人之言也.” 曰: “聖人在乎?” 公曰: “已死矣.” 曰: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桓公曰: “寡人讀書, 輪人安得議乎! 有說則可, 无說則死.” 輪扁曰: “臣也以臣之事觀之. 斲輪, 徐
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喩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 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17) 중국 철학사에서 이 논쟁은 흔히 ‘언의지변’(言意之辯)이라 부른다. 장자로 부터 위진 시대에까지 이르는 전반적인 개괄로는 이재권, 『도가철학의 현대적 해석-중국 고대사상에 대한 언어철학적 탐구』, 대전: 문경출판사, 1995가 있다.

18) Rudolf G. Wagner, Language, ontology, and Political Philosophy in China―Wang Bi's Scholarly Exploration of the Dark (Xuanxue), New York, Albany: State Univ. of New York Press, 2003. pp. 42-3. 이 가운데 ‘시의적’이라 표현한 둘째 입장은 바그너가 본래 ‘시대와 환경의 요구에 부응하는 경전 독해’(a reading of the classics that is adapted to the requirements of the time and circumstances)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간단하게 ‘시의적’(時宜的)이라 표현하였다.

 

 

"하소(何劭)의 「순찬전」(荀粲傳)에서 이렇게 말한다:

순찬(荀粲, ca.212-240)은 자(字)가 봉정(奉情)이라 한다. 순씨 가문의 여러 형제들은 유술(儒術)을 가지고 논의하곤 했는데, 찬만이 유독 도(道)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는 늘상 자공(子貢)이 “공자께서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 말한 것은 들을 수 없었다”고 한 것을 말하면서, “그렇다면 육경(六經)이 보존되어 있다하여도 그것은 겨나 쭉정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형 순우(荀俁)가 힐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역전』(易)에서 또한, 성인께서 상(象)을 세워 뜻을 온전히 드러내고 거기에 계사를 달아 말을 다 드러내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즉 미언(微言)이라해도 어찌 들어서 알 수 없겠는가?” 찬이 대답하여 말했다. “미묘한 이치는 물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상을 세워 뜻을 다 드러낸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뜻을 넘어선 것에까지 통하는 게 아니며, ‘거기에 계사하여 말을 다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문자를 넘어선 말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상을 넘어선 뜻(象外之意)과 계사하여 표명한 말(繫表之言)이니 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19)"

19) 『三國志』 「荀彧傳」:

何劭爲荀粲曰: 粲字奉情. 粲諸兄並以儒術論議, 而粲獨好言道, 常以爲子貢稱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聞, 然則六籍雖存, 固聖人之糠粃. 粲兄俁難曰: “易亦云聖人立象以盡意, 繫辭焉以盡言, 則微言胡爲不可得而聞見哉?” 粲答曰: “蓋理之微者, 非物象之所奉也. 今稱立象以盡意, 此非通于意外者也, 繫辭焉以盡言, 此非言乎繫表者也; 斯則象外之意,繫表之言, 固蘊而不出矣.”

(이 일화는 배송지(裵松之)의 주에 인용되어 있다. 『三國志』 「魏書」, 北京: 中華書局, 1982, 第二冊, 319-20쪽, 注二 참조)

 

여기서 순찬과 순우는 각기 근본적 입장과 지시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우는 「역전」의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해의 가능성을 주장하지만, 순찬은 『논어』의 자공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정한 성인의 뜻은 상이나 말로 전달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논어』에는 이와 관련된 자공의 일화가 또 하나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자공이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안 하시면 저희들은 무엇을 기술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네 계절이 돌아가고 만물이 생장하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20)

『논어』의 이 구절은 이러한 맥락에서는, 성인 공자는 언어의 한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뜻은 언어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피력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문제에 관한 왕필의 입장은, 순우나 순찬의 두 입장의 긴장 관계에서 진행된다. 왕필은 『주역약례』(周易略例) 「명상」(明象)에서
“상이란 뜻을 드러내는 것이고, 말이란 상을 밝히는 것이다. 뜻을 다하는 데에는 상만한 것이 없고, 상을 다하는 데에는 말만한 것이 없다. 말은 상에서 나오니 말을 찾았으면 상을 볼 수 있고, 상은 뜻에서 나오니 상을 찾았으면 뜻을 살필 수 있다. 따라서 뜻은 상으로서 다 표현되고, 상은 말로 다 드러나게 된다.”21)라는 확고한 입장 표명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왕필은 「계사전」에서, “그렇다면 성인께서 전하고자 한 뜻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까?”(然則聖人之意其不可見乎)라는 물음에 대해 공자가 답변하는 가운데 나오는,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22)는 입장을 그대로 긍정하지 않는다. 왕필에 따르면 말은 상을 통해 뜻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23) 달리 말하자면 성인의 뜻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말이 지니는 역할이 긍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왕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왕필은 『장자』의 논리를 적용하여 ‘상을 얻었으면 말을 잊고, 뜻을 얻었으면 말을 잊는다’(得象而忘言, 得意而忘象)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말이란 뜻을 얻기 위한 매개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 없이는 뜻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말이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을 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말과 뜻에 관한 논변의 입장은 ‘상론’(象論)이다. 이 상을 잊음으로써 뜻을 구하게 되고 거기에서 ‘의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24)

적어도 이 논리에 충실하다면 『노자』는 성인의 온전한 뜻(意)을 담고 있지 않다.
여기서 왕필이 어린 시절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20) 『論語』 「陽貨」 19: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21) 『周易略例』 「明象」 609: 夫象者, 出意者也; 言者, 明象者也.
22) 『周易』 「繫辭傳上」 44장: 子曰: 書不盡言, 言不盡意.
23) 정세근, 『제도와 본성』, 177쪽.

24) 『周易略例』 「明象」 609: 忘象以求其意, 義斯見矣.

 

 

"왕필의 부친 왕업(王業)이 상서랑(尙書郞)이 되었다. 그 때 배휘(裵徽)는 이부랑(吏部郞)이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왕필이 그를 찾아가 만났다. 배휘는 그를 한 번 보더니 기이하게 여겨 왕필에게 물었다.
“무(無)라는 것은 참으로 만물이 바탕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즐겨 무를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노자는 끊임없이 무를 말하였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왕필이 대답하였다.

“성인은 무를 체득하였고 또한 무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노자는 아직 유(有)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이 부족한 바였던 무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25)"

25) 「何劭王弼傳」(『王弼集校釋』 639):

父業, 爲尙書郞. 時裵徽爲吏部郞, 弼未弱冠, 往造焉. 徽一見而異之, 問弼曰:

‘夫無者誠萬物之所資也, 然聖人莫肯致言, 而老子申之無已者何?’  弼曰:

‘聖人體無, 無又不可以訓, 故不說也; 老子是有者也, 故恒言無所不足.’

 

 

적어도 이 대화에 따르면 진정한 무(無)의 체득자는 노자가 아닌 공자이다. 무에 대해 어떠한 말을 하든 그것은 진짜 무의 뜻을 드러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무는 공자와 같이 유를 통해 드러난다.

이것은 “사상(四象)이 형체로 드러나지 않으면 대상(大象)을 드러낼 수없고, 오음(五音)이 소리내어지지 않으면 대음(大音)이 이를 수 없는”26) 것과도 같다.

그렇다면 왕필에게서 『노자』가 지니는 의미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왕필이 보기에 적어도 ?노자?는 말과 뜻이 지니는 긴장 관계에 대한 인식에 이르렀다는 점에 있다.

『노자』 1장의 유명한 언명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지을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1.1)

 

"말할 수 있는 도와 이름지을 수 있는 이름은 ‘구체적 사태’와 ‘구체적 사물’을 가리키므로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다”고 또 “이름지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27)"

 

왕필이 여기에서 구사하는 용어 가운데 ‘지사’(指事)와 ‘조형’(造形)28)이란 표현은 주의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왕필이 살았던 위(魏) 나라가 성립하기 직전인 후한(後漢)의 고문(古文) 경학(經學)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용어들은 한자(漢字)를 분류하는 기본 원칙인 ‘육서’(六書)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전래의 한자를 지사(指事), 상형(象形), 형성(形聲), 회의(會意), 전주(轉注), 가차(假借)의 여섯 가지로 나누었는데 이 가운데 ‘지사’와 ‘상형’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26) 『老子指略』: 四象不形, 則大象無以暢; 五音不聲, 則大音無以至.
27)『 王弼老子注』 1.1: 可道之道, 可名之名, 指事造形, 非其常也. 故不可道, 不可名也.
28) 여기에 나오는 “造形”이란 말은 단지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形이란 단지 어떤 모양(form)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이루어내는 행위에도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진흙이 둥근 모양으로 빚어졌을 때(有形) 우리는 그것에 대해 ‘둥글다’(圓)고 말할 수 있는(有名)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젊은이가 제 부모를 업고 아주 조심스럽게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有形) 우리는 마찬가지로 ‘효성스럽다’(孝)라는 말을 할 수 있게(有名)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造形”이란 어떤 사물의 형태적인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이 때의 행위란 영어로 말한다면 ‘behavior’가 아니라 ‘action’에 해당한다. 특히 ‘social action’ 에 강조점이 있는 용어이다. 물론 왕필에게서 이러한 규정을 너무 강력하게 밀고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되는 것은 이른바 ‘형명론’(形名論) 혹은 ‘형명론’(刑名論)이라고 하는 맥락인데, 왕필은 이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形은 刑과 통용되는 말로서, 특히 법가(法家)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 ‘刑名’이 ‘形名’과 통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이다. 여기서 우리는 爲와 形이 비슷하게 인간의 행위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形보다는 爲가 더 넓은 의미이기는 하다.

 

 

"『주례』(周禮)에 제후의 자제가 8살에 소학(小學)에 들어가면 보씨(保氏)29)가 먼저 육서로 가르친다고 한다. (육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가 ‘지사’이다. 지사라는 것은 보아서 알 수 있고 살펴서 나타나는 것으로, 上․下 같은 글자가 이에 속한다.

둘째가 ‘상형’이다. 상형이라는 것은 그려서 그 물체를 이루는 것이고 형체에 따라 구불구불한 것으로, 日․月 같은 글자가 이에 속한다.30)"

 

29) 『주례』에 나오는 말로서 고대의 교사를 가리킨다. 교사에는 ‘사’(師), ‘부’(傅), ‘보’(保)가 있는데 여기서 ‘보’는 나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30) 『說文解字』 敍:

『周禮』八歲入小學. 保氏敎國子, 先以六書.

一曰指事, 指事者, 視而可識, 察而可見, 上下是也.

二曰象形, 象形者, 畫成其物, 隨體詰詘, 日月是也.

 

 

그런데 도대체 왜 허신은 이렇게 한자의 유래로부터 한자를 분류하는 체계를 만들었던 것일까 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지적되어야 한다. 상기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허신이 문자를 이해하는 방식은 지극히 합리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허신은 고문 경학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이러한 작업에 매달렸던 것은 실상 육예(六藝)의 여러 서적들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문자의 의미를 실사구시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논구함으로써 ‘육경’(六經)을 비롯한 수많은 유가의 경전의 의미를 천명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31)

그러나 언어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왕필이 보기에 언어의 자의(字意)에 매인 것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왕필이 앞에서 ‘가도’(可道)와 ‘가명’(可名)을 ‘말할 수 있다’와 ‘이름(규정)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은 이러한 취지에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질은 ‘常’과 대립되는 것이다. 즉 ‘상’(常)의 영역을 언어적 규정성의 세계로 포괄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 경전의 근간이 되는 언어적 고정에 대하여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경전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언어에 의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완성된 체계가 아니며,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의미를 자각하고 실현하려는 인간의 능동적 실천성에 있다고 본 것이다. 말 자체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정신이 중요하기에, 이는 언어적 고정성에 의해 갇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언명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는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도 자체가 지닌 본성으로부터 오는 긴장이고 또한 성인이 전하고자 하는 뜻과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을 매개하는 경전의 언어에서 오는 긴장 두 가지를 함축한다.

 

31) 김근,『한자는 중국을 어떻게 지배했는가-한대(漢代) 경학(經學)의 해부』 (서울: 민음사, 1999) 참조.

 

 

3. 궁극의 언어: ‘무’와 ‘태극’

 

언어의 한계는 도 자체의 본성으로부터 온다. 도는 늘 ‘이름도 형체도 없다’는 점에서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자와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왕필은 도를 무명(無名)으로 이해한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이름을 짓게 되면 모양을 규정하게 된다. [도는] 혼돈으로 이루어져 모양을 갖지 않으므로 도무지 무어라 규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알 수 없다”고 말하였다. 대저 이름은 모양을 규정하는 것이고, 자(字)는 [사물에 대해] 긍정하는 바를 지칭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란 모든 사물이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에서 취한 것이다.32)"

32) 『王弼老子注』 25.4-5: 名以定形. 混成無形, 不可得而定, 故曰 ‘不知其名’也. 夫名以定形, 字以稱可. 言道取於無物而不由也.

 

 

이에 따르면 도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름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노자』에서 도와 대등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용어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만물이 그것을 말미암는다는 데에서 취한 것이다.

‘현’(玄)이란 것은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나온다는 데에서 취한 것이다.

‘깊다’(深)는 것은 그 심오한 것은 아무리 살핀다해도 궁구될 수 없음에서 취한 것이다.

‘크다’(大)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감싸고자 하여도 그럴 수 없음에서 취한 것이다.

‘멀다’(遠)는 것은 아득하여 미칠수 없다는 데에서 취한 것이고,

‘작다’(微)는 것은 그것이 그윽하고 작아서 눈으로 볼 수 없음에서 취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道)․현(玄)․심(深)․대(大)․미(微)․원(遠)이란 말(言)에는 각각 나름의 의리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그 궁극적인 것을 온전하게 표현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끝 없는 것을 포괄(彌綸)하니 작다고 이름할 수 없고, 미묘하여 형체가 없으니 ‘크다’고 이름할 수 없다.

그래서『노자』에서는 “자(字)로 도라고 한다” “일컬어서 현이라 한다”고 한 것이니 이는 모두 이름지은 것이 아니다.33)"

33)『老子指略』:

夫道也者, 取乎萬物之所由也;

玄也者, 取乎幽冥之所出也;

深也者, 取乎探賾而不可究也;

大也者, 取乎彌綸而可及也;

遠也者, 取乎綿邈而不可及也;

微也者, 取乎幽微而不可覩也.

然則道․玄․深․大․微․ 遠․之言, 各有其義, 未盡其極者也.

然彌綸無極, 不可名細; 微妙無形, 不可名大.

是以篇云: ‘字之曰道’․‘謂之曰玄’, 而不名也.

여기서 ‘미륜’(彌綸)이란 『周易』의 「繫辭傳」 上4, “易與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에서 온 말이다. 여기에서도 왕필은 易學의 용어로 『노자』의 개념들을 대치하고 있는 점을 보여준다.

 

왕필은 여기서 ‘도’․‘현’․‘심’․‘대’․‘미’․‘원’ 등은 궁극적인 것을 드러내는 이름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 임을 강조한다. 그것들은 마치 ‘도’가 이름(名)이 아닌 ‘자’(字)인 것처럼 이름을 넘어서는, 형체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을 ‘지칭하는’ 정도의 역할 밖에는 지니지 못한다. 이름으로서의 ‘도’와 이름할 수 없는 ‘상도’(常道) 사이의 긴장 관계는 궁극적 실재를 언어로 포착하려 하나 본래부터 그럴 수 없는 거리에서 온다. 이것은 성인의 뜻을 얻기 위해서는 성인의 말에 의존해야 하지만 그 뜻은 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뜻과 말 사이에는 긴장의 관계가 상존한다.

 

이러한 긴장적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나’(一)와 ‘무’(無)의 관계이다. 앞서 인용하였던『노자』42장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에 대한 왕필의 주석은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모든 사물과 모든 모양 그것들은 하나로 돌아간다. 무엇을 말미암아 하나에 이르는가? 무(無)를 말미암아서이다. 무를 말미암아서 하나가 되니 하나는 무라 말할 수 있는가? 이미 그것을 하나라고 일컬었으니 어찌 말(言)이 없을 수 있는가? 말이 있고 하나가 있으니, 여하튼 둘이 아닌가? 하나가 있고 둘이 있으니 마침내는 셋을 낳게 된다. 무로부터 유로 나아갔으니 수는 여기에서 다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도의 부류가
아니다.34)"

34)『王弼老子注』 42.1: 萬物萬形, 其歸一也. 何由致一? 由於無也. 由無乃一,一可謂無? 已謂之一, 豈得無言乎? 有言有一, 非二如何? 有一有二, 遂生乎三. 從無之有, 數盡乎斯, 過此以往, 非道之流.

 

 

왕필에 따르면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이다. 그리고 그 ‘하나’로 돌아가는 것은 오로지 ‘무’를 말미암아서 갈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무가 곧 하나인가? 왕필은 바로 이 자리에서 ‘무로 말미암아 돌아가게 되는 하나’와 ‘말로 표현되는 하나’ 사이의 긴장을 지적한다.
다시 말하자면 ‘무로 말미암아 돌아가게 되는 하나’는 말(言)로 담아 낼 수 없는 것이며 이미 말로 담아내고자 할 때 그것은 이미 ‘유’(有)가 되어버림으로써 궁극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극히 합리적인 논변에 의해 이루어지는 ‘무’와 ‘일’ 사이의 긴장은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오로지 이 ‘무’는 ‘일’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35) 그렇다면 왕필에게서 ‘무’란 무엇인가?

 

왕필 철학에서 도는 무로 해석되는데 또한 그는 “무를 쓰임으로 삼는다”(以無爲用), 즉 무를 쓴다고 말한다. 도대체 왕필은 어떻게 무를 쓴다는 것인가?

우리는 먼저 왕필이 생각하는 무의 쓰임을 말하기 전에 무라는 말의 성격부터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무라는 용어는 대단히 기묘한 말이다. 그것은 어떤 말이든 앞에 붙어 쓰일 수가 있다.

무명(無名), 무형(無形), 무지(無知), 무욕(無欲), 무위(無爲), 무물(無物), 무유(無有)36) 등은 물론 심지어 무음(無陰), 무양(無陽)37)이라는 말까지 가능한 “도무지 통하지 못할 것이 없는”(無不通)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왕필이 주목하는 것은 ‘무’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무의 기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의 인용에서 말하고 있듯이 “무를 말미암는다”는 것은 만물이 무를 통해 ‘하나로 돌아간다’(歸一)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과 모든 모양 그것들은 하나로 돌아간다. 무엇을 말미암아 하나에 이르는가? 무를 말미암아서이다.” 또한 왕필은 이렇게 말한다.

“높음은 낮음을 토대로 삼고, 귀함은 천함을 근본으로 삼고, 유는 무를 쓰임으로 삼으니 이는 그것이 되돌아가기 때문이다.”38)

이렇게 무는 모든 사물들이 그것을 통해 되돌아가게 하는 쓰임새를 갖고 있다. 유와 무 가운데 유에 비해 무가 더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무를 통해서만이 모든 것이 어떤 궁극의 하나에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는 궁극적인 그 무엇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그러나 궁극 자체라고는 할 수 없다. 단지 ‘무’는 그 궁극의 어떤 것을 암시하고 매개하는 환원적 기능을 할 뿐이다. 사실 왕필에게서 이러한 논
리는 도(道)와 물(水)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래서 왕필은『노자』8장의 ‘故幾於道’에 대해 “도는 무이지만 물은 유이다. 그래서 ‘가깝다’라고 말한 것이다”39)

 

35) 『王弼老子注』 47.2: 無在於一.

36) 이 용어는『노자』40장에 나오며 왕필은 이 용어를 ‘현’(玄) 즉 도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 『王弼老子注』 1.5: 玄者, 冥黙無有也.
37) 이 용어는 정확하게 말하면 한강백(韓康伯)이 사용한 말이다. 『王弼周易注』 「繫辭上」, 541.
38) 『王弼老子注』 40.1: 高以下爲基, 貴以踐爲本, 有以無爲用, 此其反也.
39) 『王弼老子注』 8.2: 道無水有, 故曰幾也.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논리적 순환에 빠지게 된 것인가? 언어는 그것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한계로 인하여 궁극적인 것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왕필은 다시 한번 논리를 진전시킨다.

우리가 비록 언어의 한계로 인하여 말은 상을 빌어서 그 뜻을 다할 수 있는 것이지만, 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무(無)를 온전히 체득한 공자가 유(有)를 통해서 말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노자』의 경우에는 수없이 많은 ‘도’․‘현’․ ‘심’․‘대’․‘미’․‘원’ 등의 궁극적인 것에 가까이 가 있지만 그것에 합치하지 못하는 ‘가까운’(幾) 것으로 가득하지만, 『주역』에는 비록 유를 빌지만 그 궁극을 표현하는 ‘말’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로소『주역』의 ‘태극’(太極)에 도달하게 된다.

 

 

"천지의 수를 연역할 때 의지하는 것은 50이지만 그 가운데 쓰이는 것은 49이고 그 나머지 하나는 쓰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하나가 쓰이지 않음으로 해서 다른 49의 쓰임으로써 통하게 되고, 또한 그것이 수가 아
니기에 다른 수들이 완성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주역』에서 말하는 태극일 것이다. 49란 숫자의 끝이다. ‘무’는 무로써 밝힐 수가 없
기에 반드시 ‘유’에 의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사물의 끝에서 반드시 그 유의 으뜸되는 것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왕필에 따르면 ‘무’는 제 스스로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오로지 유일 뿐이며, 또한 궁극의 것이란 언어로 포착될 수 없기에 따라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유를 빌어서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성인이 전하고자 하는 뜻은 상을 필요로 하고, 그 상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성인이 전하고자 하는 뜻은 분명 ‘경전’에 기록된 바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서는 문자적, 언어적 의미에 멈출 것이 아니라 성인의 뜻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주역』의 ‘태극’이란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논리적 맥락은 바로 그러한 ‘궁극의 언어’에 대한 암시이다. 경전에 담긴 이러한 ‘궁극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을 때 경학은 근본에서 떠나 말단을 좇게 되거나, 그 자식은 쓰되 어미를 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노자』는 비록 성인 공자처럼 무의 궁극을 얻지 못하였기에 가까이 가 있을 뿐이지만, 말과 뜻의 긴장, 본(本)과 말(末)의 전도에 대해서는 성인에 가까이 가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4. 숭본식말: ‘위인’과 ‘이서’

 

왕필에게『노자』의 가장 커다란 의의는,『노자』가 ‘숭본식말’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자지략』에서 왕필은『노자』의 의의를 이렇게 평가한다.

 

 

"『노자』라는 책의 요지는 거의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 오호라, 숭본식말(崇本息末)일 따름이로다!

그 말미암는 바를 살피고 그 귀착되는 바를 찾아보면, 말이 본래의 뜻에서 멀지 않고 일은 으뜸되는 것을 잃지 않게 된다. 글은 비록 오천자이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이고, 뜻이 비록 넓고 풍부하지만 많은 것이 다 같은 부류이다.40)"

40)『老子指略』 198:

老子之書, 其幾乎可一言而蔽之. 噫! 崇本息末而已矣.

觀其所由, 尋其所歸, 言不遠宗, 事不失主. 文雖五千, 貫之者一; 義雖廣瞻, 衆則同類.

 

 

이에 따르면 왕필이『노자』에서 파악하는 주된 내용은 ‘숭본식말’이다.

숭본식말이란 말 그대로 “근본을 받듬으로써 말단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왕필이 당시의 사상계에 대해 비판하였던 것을 살펴보았다. 왕필은 다섯 가지 학파를 나열하면서 이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오류는 모두 근본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왕필은 ‘유가’ 또한 여기서 예외로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필에게 ‘유가’란 공자의 제자와 후학으로부터 한유(漢儒)까지가 포함되는 대단히 넓은 개념이지만, 이들은 모두 성인 공자의 근본 정신(本)에서 벗어난 것으로 본 것이다.

『노자』의 인의 비판은 바로 이들을 향한 것이지 ‘육경’(六經)과 공자의 뜻(意)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왕필
은 본 것이다. 공자의 가장 생생한 말을 담고 있는『논어』의 경우 '인’(仁)은 109회, ‘의’(義)는 24회가 나오지만, ‘인의’(仁義)가 연용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왕필에게서 ‘인의’가 꼭 부정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왕필이 ‘인의’를 언급한 곳은『왕필노자주』에서 5번,『노자지략』에서 3번이다.41)

이 가운데 다소 부정적인 언급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긍정적인 언급 또한 있다. 왕필에 따르면 인의(仁義)는 사람의 뛰어난 덕성(『왕필노자주』 19.)이고 위대한 행동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것, 어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본이나 어미가 낳는 자식(『왕필노자주』 38.1)에 해당한다. 따라서 비록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인의도 있지만 이 또한 억지로 하는 경우가 되기 쉬우며, 당시와 같이 가식적인 인의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왕필노자주』 38.1)고 비판한다. 이는 특히 ‘인의’가 관리의 선발과 인사의 평가 방법으로 사용되는 ‘형명’(形名)과 결합함으로써 더욱 그러한 행동을 가장하는데(顯彰) 골몰하는 사회 풍조가 만연한 것과 관련된다. 그래서 왕필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41) “凡不能無爲而爲之者, 皆下德也, 仁義禮節是也.”(38.1), 仁義, 母之所生, 非可以爲母.(38.1),

“患俗薄而名興行․崇仁義, 愈致斯僞, 況術之賤此者乎? 故絶仁棄義以復孝慈, 未渠弘也.”(『老子指略』)

“仁義, 人之善也.”(19.1), “夫仁義發於內, 爲之猶僞, 況務外飾而可久乎!”(38.1), “用不以形, 御不以名, 故仁
義可顯, 禮敬可彰也.”(38.1), “興仁義以敦薄俗, ”(『老子指略』),

“仁義, 行之大者也.”(『老子指略』)

 

 

"강함을 미워한다는 것이 곧 강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강해지려고 하면 오히려 강함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노자』에서 “인함을 끊어라”라고 한 것은 불인(不仁)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아
니다. 억지로 인한 척 하려 하면 오히려 위선이 생겨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억지로 다스리려고 하면 오히려 어지러워지고, 편안함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오히려 위태로와지는 것이다.42)"

42)『老子指略』 199:

夫惡强非欲不强也, 爲强則失强也; 絶仁非欲不仁也, 爲仁則僞成也. 有其治而乃亂, 保其安而乃危.

 

 

여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왕필이 인의를 비판하는 까닭은 ‘불인’(不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인한 척 하는’(爲仁)는 당시의 사회 풍조가 비판의 핵심이다. 이러한 방식의 인의 비판은 왕필을 도가로 보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였지만, 실상 『노자』와 『논어』를 화해시키는 논리로서도 늘 이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왕필의 논지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왕필의 입장에서 볼 때, 공자는 『논어』에서 인과 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공자는 오히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필이 말하는 본말(本末)이 무엇인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 같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유무를 본말의 관계로 본다. 그러나 단순히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왕필노자주』 1장의 주에서 “유명(有名)이 어미(母)이고 무명은 처음(始)”이다. 그런데 왕필은 앞 쪽의 인용에서 보듯이 “어미는 근본이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근본은 무위에 있고 어미는 무명에 있다”43)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근본과 어미는 분명 동격에 속하는 개념이다.

43) 『王弼老子注』 38.1: 本在無爲, 母在無名.

 

『노자』 52장에 “천하에 시작이 있으면 이로써 천하의 어미로 삼는다”(天下有始, 以爲天下母)는 말이 있다. 왕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어미는 근본이고 자식은 말단이다. 근본을 얻음으로써 말단을 안다.
근본을 버리고서는 말단을 이룰 수 없다.44)"

44) 『王弼老子注』 52.1-2: 善始之, 則善養畜之矣. 故天下有始, 則可以爲天下母矣

...母, 本也. 子, 末也. 得本以知末, 不舍本以遂末也.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한다. 왕필이『노자』에서 발견하는 ‘숭본식말’의 논리는, 새로운 천하의 질서가 도래하도록 하기 위한 정치의 방법이라는 점이다. 그럴수록 왕필은 근본으로 돌아갈 것을 제창하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왕필에게서 모든 것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무를 통한 근본으로의 환원’을 논의해 보았다. 왕필이 유(有)에 대해 무(無)를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였던 것은 근본으로서의 ‘하나’(一)에로 돌아가기 위한 우회의 방법이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공자의 말 속에서, 경전의 언어 속에서 성인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을 회복하려는 의리적 방법을 경유한다.

그렇다면 왕필에게서 그러한 논리적 우회와 숭본식말을 통해 도달하려는 ‘궁극의 것’은 무엇인가?

『왕필노자주』에서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주역』과 『논어』 속에서 마주하게 될 예견만을 얻게 된다.『노자주』 38장에서 왕필은 이렇게 예견한다.

 

 

"덕(德)의 본질은 얻음에 있다. 이것은 덕이 늘 얻기만 하지 잃음이 없고 이롭기만 하지 해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덕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덕을 얻는가? 도를 통해서 얻는다. 또 사람은 무엇을 통해 덕을 실현하는가? 무를 사용해서이다. 무를 쓰게 되면 싣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을 사람(物)의 경우에 적용시켜 보면, 만약 그들에게 무를 쓰게 되면 어느 한 사람도 경유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들에게 유를 쓰게 되면 누구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천지가 비록 광대하다 하여도 무로 그 마음을 삼는 것이요, 성인은 비록 위대하다 하여도 허정(虛靜)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복괘(復卦)를 보면 천지의 마음이 드러난다”고도 말하고, “지일(至日)에 이를 잘 생각해 보면 선왕(先王)의 지극함을 보게 된다”고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신의 사사로움을 없애버리게 된다면 사해(四海)의 모든 백성들이 다 우러러 볼 것이요 멀고 가까운 모든 나라가 다 조공하러 오게 될 것이다.45)"

45)『王弼老子注』 38.1:

德者, 得也. 常得而無喪, 利而無害, 故以德爲名焉.

何以得德? 由乎道也. 何以盡德?

以無爲用. 以無爲用, 則莫不載也. 故物, 無焉, 則無物不經;

有焉, 則不足以免其生. 是以天地雖廣, 以無爲心; 聖王雖大, 以虛爲主.

故曰以復而視, 則天地之心見; 至日而思之, 則先王之至覩也.
故滅其私而無其身, 則四海莫不瞻, 遠近莫不至.

 

 

이 문장은 그동안 논의해 온 『왕필노자주』의 핵심을 압축하여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왕필이 말하고자 하는 ‘도’가 우주와 인사를 꿰뚫는 천지의 도이자 선왕의 도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다. 바로 이 도를 통해 통치자는 덕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무를 근본으로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무란 천지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거기에서 우리는 성인이 전하고자 했던 ‘하나’와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삼라만상의 변화에서도 불변하는 우주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왕필이 여기서 암시하는 내용은 『주역』복괘(復卦)의 「단전」(彖傳)에 대한 주에서 그대로 찾아 볼 수 있다.

 

 

"복(復)이란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일컫는다. 천지(天地)는 바로 그 근본으로 마음을 삼는다. 그래서 무릇 움직임이 그치게 되면 고요해지니 고요함은 움직임과 짝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그치면 침묵하게 되지만 이 침묵이 말과 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즉 천지가 비록 거대하여 온갖 만물을 풍성하게 품어주고, 우뢰가 치고 바람이 불어 삼라만상의 변화가 그치지 않지만 적막하고 고요하여 지극한 무가 바로 천지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움직임-복괘(復卦)의 초구(初九) 양효(陽爻)-이 저 땅 속(初九의 자리)에서 쉬고 있는 복괘에서야말로 천지의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천지가 무가 아닌 유로 마음을 삼는다면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공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46)"

46)『王弼周易注』 「復卦彖傳」 336-7:

復者, 反本之謂也. 天地以本爲心者也. 凡動息則靜, 靜非對動者也;

語息則黙, 黙非對語者也. 然則天地雖大, 富有萬物, 雷動風行, 運化萬變, 寂然至無是其本矣.

故動息地中, 乃天地之心見也. 若其以有爲心, 則異類未獲具存也.”

다만 여기서 「상전」(象傳)에 대한 주에서는 ‘寂然至無’가 ‘寂然大靜’으로 바뀌어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주의를 요한다.

 

 

결국 왕필은 『노자』라는 문헌에서 무를 통해 근본으로의 회귀를 강조하고, 또한 모든 것을 근원에로 돌릴 수 있는 무의 작용에 의지하여 『주역』의 논의로까지 논의를 유도한다. 『노자』가 성인의 뜻을 오인한 잘못된 ‘유가’를 비판하는 우회적 수단이었다면, 『주역』은 성인의 도를 구할 수 있는 경전이다.

『주역』의 복괘에서 우리는 왕필이 마주하고자 했던 궁극의 것, 즉 천지의 마음, 성인의 마음과 만나게 된다. 이 ‘마음’이야말로 가장 궁극적인 하나이며, 우주의 질서와 인간 세상에 질서를 가져오는 최고의 궁극자이다. 그래서 이 마음은 백성의 마음과도 통하는 것이다.

 

 

"백성에게는 마음이 있으니 나라가 다르고 풍속이 다르다해도 왕후(王侯)들 가운데 하나를 얻은 자라야 임금이 된다.47)"

47) 『王弼老子注』 42.1: 百姓有心, 異國殊風, 而王侯得一者主焉.

 

 

여기에서 모든 것은 하나로 모아진다. 왕필이 비판하고자 했던 ‘유가’는 이러한 성인의 도, 성인의 마음, 천지의 마음, 백성의 마음을 외면하였고, 따라서 이것은 근본에서 벗어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를 왕필은 ‘이서(理恕)의 상실’이라고도 말한다. 왕필에 이르러 세계와 인간의 근원적 질서로서의 ‘리’(理)가 출현하게 된다. 이처럼 왕필에게서 ‘리’는 성인이 도에 상응하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쓰인다.48)

그리고 이 ‘리’는 무엇보다도 공자가 말했던 ‘서’(恕)이다. 왕필은 “증자가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의 도는 충서일 뿐입니다.’”(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論語』 「里仁」)란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을 하고 있다.

 

48) 예를 들어 『王弼老子注』 42.2: 人之所敎, 我亦敎之.에 대한 왕필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我之, 非强使人從之也, 而用夫自然. 擧其至理, 順之必吉, 違之必凶. 故人相敎, 違之自取其凶也. 亦如我之敎人, 勿違之也.에서 이 ‘至理’는 상당히 고양된 추상적 의미를 보이고 있다. 왕필의 이러한 ‘理’의 철학은 오래 전에 이미 신유학의 선구로 평가받은 바 있다. A Source Book in Chinese Philosophy, translated and compiled by Wing-tsit Chan,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3, p. 315; Wing-tsit Chan, Neo-Confucianism,Etc.: Essays, compiled by Charles K. H. Chen, Hong Kong: Oriental Society,
1969, pp. 57-60. 최근의 보다 구체적인 논의로는 다음이 있다. Alan K. L. Chan, 앞의 책, pp. 47-64. 鄭世根, 「王弼論‘理’與‘心’」(『道家文化硏究』, 第十九輯, 北京: 三聯書店, 2002) pp. 44-50.

 

 

"‘충’(忠)이란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요, ‘서’(恕)란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는 것이다. 제 자신조차 제대로 돌이켜 보지 아니하고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으며, 자신의 ‘서’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서 이치의 극치를 다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치의 극치를 다 헤아릴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극치란 둘 일 수가 없으므로 [성인 공자께서는] ‘하나’(一)라고 하신 것이다.

제 자신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비슷한 류를 헤아려 이를 온전히 실현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는 것으로 한 마디 말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은 아마도 ‘서’뿐일 것이다.49)"

49) 『論語釋疑』 622:

忠者, 情之盡也; 恕者, 反情以同物者也. 未有反諸其身而 不得物之情, 未有能全其恕而不盡理之極也.

能盡理極, 則無物不統. 極不可二, 故謂之一也.

推身統物, 窮類適盡, 一言而可終身行者, 其唯恕也.

 

 

여기서 우리는 왕필의 도가 궁극적으로는 『논어』에서 공자가 말하는 충서의 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도이며 다시 일이며 나아가, 인의예지를 낳는 어미이자 근본인 리로서의 ‘서’ 곧 ‘리서’(理恕)로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결국 그의 세 저술 즉 『노자주』, 『주역주』 그리고 『논어석의』를 연결하면서 하나의 계통을 그려준다. 결국 그가 말하는 ‘도’는 『노자주』를 통해 무의 지칭으로서의 도에서 일로, 다시 이 일은 태극으로서 자리잡으며, 마지막으로 『논어석의』에서는 ‘理恕’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인욕(人欲)의 사(私)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情)을 인의예지의 성(性)으로서의 천리(天理)로 규제하여야 한다는 신유학 심성론의 논리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왕필은 “인간의 정을 본성이 되게 한다”(性其情也)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왕필의 『노자』 해석의 방법은 하상공의 기론적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그 방향을 달리한다. 적어도 우리가 송명 시대의 신유학적 의리학의 두 가지 성격이 그 도덕적 성격과 논리적 성격이라는 차원에서 ‘의리적’(義理的)이라 이해한다면 왕필의 『노자』 이해 또한 ‘의리적’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왕필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도와 리란 『노자』의 우주론적 혹은 기론적 도로부터 전환하여 오히려 『주역』과 『논어』에 나타나는 대인(大人) 또는 성인(聖人)의 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왕필의 이러한 ‘의리적’ 성격은 『주역』의 세계관에 기초하면서 『논어』에 나타난 공자(孔子)의 충서(忠恕)에 기반하는 의리학이라 말할 수 있다. 마치 이는 송명의 신유가들이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이기론(理氣論)적 논리에 기반하여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처럼, 이른바 당시 유행하던 사상적 사회적 배경 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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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투고일 2010년 05월 28일 / 심사일 2010년 06월 11일 / 심사완료일 2010년 06월 20일

 

 

 

Dao-de jing and the Way of the Sage in the Philosophy of Wang Bi

 

Kim, Si-Cheon

 

In a different way, Wang Bi’s Philosophy focuses on the reestablishment of Confucius’s tao, who holded a prominent position than Laozi in the intellectual discourse of that period. While Wang Bi is Taoistic in his argumentation, he is a Confucian in his social and political ideal, which based on Confucius’s Confucius’s Analects and the Book of Changes. The word-expressions of his commentary on Laozi reveal that the key-concepts of Taoism would be substituted by the terms of Confucius’s Analects and the Book of Changes: ‘Nothingness’ by the ‘One’ and the ‘Supreme Ultimate’, ‘Benevolence’ by ‘Compassion’, the ‘Sage’ by the ‘Great Man’, etc. This Understanding of Wang Bi’s Commentary on Laozi is in conformity with his Commentary of the Book of Changes: the ethico-logical way of interpreting.

 

 

Subject Sphere : Chinese Philosophy, Taoism, Confucianism, Dark learning

Key Words : Laozi, Wang Bi, the Book of Changes, the Way of the Sage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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