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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革의 두 훼방꾼

도깨비-1 2014. 5. 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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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革의 두 훼방꾼

 

反개혁적인 舊세력도 문제지만 국가 파괴 기도 과격파가 더 해악
植物 대통령 바라는 직업 시위꾼… 이번 참사서도 非인간성 재확인
우리 사회 主流는 良識 갖춘 시민… 이들 위한 改革 리더십 발휘해야

입력 : 2014.05.13 05:31 / 조선일보

류근일 | 언론인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은 그 이전의 한국과 버전(version)이 전혀 다른 한국이어야 한다. 이 변화는 수구(守舊)도 혁명(革命)도 아닌 개혁(改革)의 길, 진화(進化)의 길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이 '관료 기득권+악덕 비즈니스+정치꾼'들의 놀이터였다면, 앞으로 한국은 정당한 규칙대로만 굴러가는 나라라야 한다. 세월호 참사도 결국은 모든 당사자가 정해진 규칙대로 하지 않아 일어난 비극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화는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을 순리대로 바꾸려고 해도 그 과정엔 항상 두 종류 훼방꾼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하지 말라"는 구(舊)세력의 반발이 그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개혁보다는 타도를 하자"는 급진 과격파의 오버(over)다.

우리도 구세력의 저항은 만만찮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일 때는 "관료 개혁, 공기업 개혁…" 하고 큰소리쳤지만 집권 후엔 뒷걸음질쳤다. 관료의 반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건 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이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의 뜻이 확고하고, 확고한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힘이 실린 장관들이 수하들에게 "나를 따를래, 죽을래?" 하고 칼자루를 휘두르면 못 할 것도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럴 용의가 있는가? 있어야 한다. 그럴 용의가 없으면 참아줄 국민이 더는 없다.

그러나 정작 더 위험한 개혁의 장애물은 급진 과격파의 지나침이다. 이들은 왜 개혁에 반대하는가? 개혁이 혁명의 김을 빼버리기 때문이다. 역사상 모든 변화 과정엔 이런 '고칠 것이냐(개혁), 깨부술 것이냐(혁명)'의 노선 투쟁이 필연적으로 있어 왔다. 세월호 시국에도 이 노선 차이는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일어서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할 것이다.

깨부수자는 쪽은 선동한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라' '우리의 피를 요구한다' '무능 정부가 타살한 너희' '살인자 박근혜는 하야하라' '세월호 침몰=박근혜 침몰(일부 재미 교포의 뉴욕타임스 광고 문안)'.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도 아니면서 유가족 틈에 끼어드는 이 '직업적 외인부대'의 노림수는 뻔하다. 대통령을 식물로 만들고, 정부를 시체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치자는 쪽에서 생각해 보자.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서울광장을 '광우병 군중'으로 메우고, 대통령을 정치적 단두대에 세우기로 한다면 그게 과연 적실(適實), 적합(適合), 적정(適正)의 기준에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의 대국적 책임을 논하는 것과 대통령을 향해 대뜸 "살인자는 하야하라"고 대드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삼풍 참사 때의 김영삼 대통령, 씨랜드 참사 때의 김대중 대통령, 대구 지하철 참사 때의 노무현 대통령, 천안함 폭침 때의 이명박 대통령, 9·11 테러 때의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도 일정한 질책은 몰라도 그런 막가는 단죄(斷罪)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왜 유달리 그러나?

우리가 인간적 차원에서 더 침통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그런 '깨부수자'가 드러내고 있는 비(非)인간적인, 너무나 비인간적인 얼굴이다. 아무리 이념 투쟁, 정치 투쟁, 권력 투쟁이 중요하기로서니 저 못다 핀 영혼들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깨부수자'의 불쏘시개로 써먹어야만 하는 건지, 그 천박한 '투쟁 지상(至上)주의'가 가슴을 헤집는다.

우리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인간 보편의 착한 정서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TV에서 한 희생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물에서 나온 잠수사는 기진맥진해 입에서 거품을 뿜었다. '고맙다'고 했더니 그는 또 물속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어떤 희생자 아버지는 '다이빙 벨 전도사'에게 이렇게 꾸짖었다. "인생을 그렇게 사는 거 아냐. 양심 있으면 다신 오지 마." 유가족들은 비싼 장례용품도 사양했다. 이게 인간 보편의 착한 정서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이런 잠수사, 어머니,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양식(良識)이요, 주류(主流)다. 이들이 건재하는 한 광우병 향수도, 구세력의 안간힘도 대한민국을 어쩌진 못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주류를 바라보고 이들에게 맞춰서 개혁 리더십을 발휘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