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밥벌이의 고단함, 그 이름 '아버지'

도깨비-1 2014. 5. 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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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고단함, 그 이름 '아버지'

 

입력 : 2014.05.07 07:34 /조선일보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지금도 남편은 악몽을 꾼다. 흔들어 깨우면, 언제나 같은 꿈이란다. 직원들 월급날은 코앞인데, 회사통장의 잔고는 거의 바닥이 나있는 꿈.

이미 10여년 전에 은퇴했지만, 때로는 끔찍했었나 보다. 사업이… 밥벌이가… 도무지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 가족들은 몰랐었다.

남편은 “젊은 시절로 (절대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요즘이 가장 좋단다. 이제 밥벌이로부터 해방되니 그저 좋은가 보다. 빈손으로 출발, 이 대학 저 대학으로 뛰어다니는 시간강사로 시작해 인생 중반에 사업을 하고 지금에 오기까지 참으로 고단했었나 보다. 하나뿐인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부턴 부쩍 편해 보인다.

어렸을 땐 엄마가 세상의 전부일 줄 알았다. 아버지는 그저 밥 벌어 오는 사람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비로소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절절하다. 특히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5월에. 이미 저 세상 분이 된 후에야.

자식 다섯,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으니 고생 많이 하셨다. 청와대 대변인을 그만 둔 다음날, 그러니까 올해 1월 1일, 가장 먼저 찾아간 곳도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곳이었다. 살이 저미도록 추웠다. 찬 소주 한잔 올리고 돌아서는 마음이 더없이 황망했다. 한 겨울 무덤가엔 푸른 떼도, 할미꽃도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땅과 플라스틱 조화뿐.

어느 ‘페친’이 글을 올렸다.

태평양 연안에
천축잉어라는 바닷고기가 있습니다.

암놈이 알을 낳으면
숫놈이 그 알을 입에 담아 부화시킵니다.
입에 알을 담고 있는 동안~
수컷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점점 쇠약해지고,
급기야 알을 부화하는 시점에는 기력을 다 잃어
죽고 맙니다.

숫놈은 죽음이 두려우면
입안의 알들을
그냥 뱉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숫놈은 죽음을 뛰어 넘는 사랑을 선택합니다.

이 땅에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누구 하나
위로해주지 않는
그 무거운 자리!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어깨를
단 한번도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습니다.
왠지 부끄럽고
미안하고 마음이 시립니다.

이제 누구의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내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아버지께 사랑을 고백해보세요.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남자들이여~

가정에서 내 자리가 적어지고
사회에서 어깨의 짐이 무거워지고
하루 하루의 삶이 막막하고 힘들어도~

당신은 믿음직한 아들이었고
든든한 남편이었으며
위대한 아버지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들. 진도 앞바다를 떠나지 못하며 통곡하고 있다. 고단한 밥벌이로 자식 얼굴 한번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아버지들이다. 땟거리 떨어질까 두려워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버지들이다.

얼마나 원통하고 절통하고 후회가 밀려올까? 마치 내 아버지가 당신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누리지 못했던 것처럼.

비단 아버지들뿐일까?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지난 1일,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의 어머니가 “아들아! 밥 먹어라”며 사고현장 바다에 밥을 뿌리는 사진<아래>을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어머니 모습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며 밥을 떠서 바다에 뿌리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하며 밥을 떠서 바다에 뿌리고 있다. /뉴시스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 그 놈의 밥.밥.밥.”

영어 단어 ‘family'의 어원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의 첫 머리글자라는 말이 있다. 진도 뉴스를 차마 더이상 볼 수 없다. 애써 TV 뉴스를 외면한 채 가족끼리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어머니! 아버지! 아이고 내 새끼!… 그리고 밥. 밥벌이의 고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