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책임의식 무장한 市民層이 해답이다

도깨비-1 2014. 5. 7. 10:35

 

책임의식 무장한 市民層이 해답이다

입력 : 2014.05.01 05:30 | 수정 : 2014.05.01 07:17 /조선일보

 

 

김기철 문화부 차장
김기철 문화부 차장
나라 밖으로 나가면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귀국 비행기를 타자마자 승무원은 한국 신문을 건넸다. '나는 괜찮아요, 괜찮아야지….'아버지들이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에도 마음대로 울지 못한다는 참혹한 기사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뉴스는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더 타임스를 비롯한 영국 신문들은 1면부터 세월호 침몰 뉴스를 상세하게 전했다. BBC는 진도와 안산까지 특파원을 보내 우리 아이들이 겪은 기막힌 사고 소식과 자식들을 기다리며 팽목항을 서성거리는 부모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전했다. 100년 전 타이태닉호 침몰 때 '여자와 아이 먼저'라는 구조 원칙을 보여준 영국이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승객 구조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다가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신사의 나라'로선 승객을 팽개치고 먼저 구조된 선장과 승무원들을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취재차 찾은 영국 에든버러는 18세기 중반 '북유럽의 아테네'로 불릴 만큼 학문과 사상이 발전한 계몽운동의 중심지였다. 법률가와 교수·목사 등 전문 직업인들이 주도한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은 미국 독립운동을 이끈 벤저민 프랭클린까지 에든버러에 달려오게 만들 만큼 소문이 자자했다. 에든버러성과 홀리루드성을 잇는 구(舊)시가 로열 마일엔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와 도덕철학자 데이비드 흄, 목사이자 수사학자 휴 블레어가 담소하며 걸어가는 모습이 흔히 목격됐다고 한다. 휴 블레어가 이끌던 세인트 자일스교회 건너편엔 지금도 데이비드 흄 동상이 당시의 지적 활기를 증언하고 있다.

흄의 대표작 '잉글랜드의 역사'는 18세기 문명 대국 영국을 가능케 한 원동력을 시민 계층의 덕목(德目)에서 찾는다.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예절, 교양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영국의 융성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에든버러성과 세인트 자일스교회, 에든버러대학 등 시내 곳곳에선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숨진 지도층과 시민들의 이름을 기록한 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 서구의 웬만한 도시와 교회,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 직업윤리와 공직(公職) 의식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줬다. OECD 회원국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자부심도 한순간에 무색해졌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는 앞으로 몇 배, 몇 십 배가 될지 모른다. 비행기에서, 기차에서, 또는 화재 현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어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라고 아이들에게 일러줘야 할 판이다. 이런 신뢰의 부족 때문에 더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다.

흄이 영국 시민사회의 도덕과 교양을 주목한 것처럼 철저한 책임 의식과 윤리로 우리 사회를 밑바닥부터 개조하지 않으면 선진국의 꿈도, 민주주의의 이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로 자신과 가족의 안전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신 나간 선장이나 탐욕스러운 선주(船主), 무능한 정부를 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세월호'를 성찰하는 지식인 '데이비드 흄'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