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17 21:17 수정 : 2014.04.18 08:50 /한겨레
여객선 침몰 대참사
해경, 사고 초기 탈출 지시 못하고 선실 진입 주저
안행부, 근거없는 낙관에 청와대 적극 대응 못해
해난사고 전문 해수부는 역할 정리 안돼 ‘어정쩡’
300명에 가까운 승객이 숨지거나 실종된 전남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는 현장 공무원들의 안이한 초동 대처와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 재난관리 지휘 체계의 혼선 등이 겹쳐 화를 키우고 사태 수습을 어렵게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17일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세월호의 한 승무원은 사고가 난 16일 오전 8시55분 해수부 산하 제주해양관리단 해상교통관제센터 쪽과의 교신에서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가 많이 넘어갔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컨테이너도 넘어가고, 사람들 이동이 힘듭니다”라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고명석 해양경찰청 장비기술국장은 17일 배경 설명 브리핑에서 “(사고 당일) 오전 9시30분에 헬기와 함정이 도착했는데 그때 벌써 (배가) 50~60도 기울어진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쪽으로 물건이 쏟아지고, 사람도 한쪽으로 쌓이게 된다. 거기를 벗어나 창문으로 탈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희생자가 많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고 국장의 설명이다.
교신 기록과 초기 상황 보고 등을 통해 사고 초기부터 선박 침몰을 앞둔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해경이나 안행부, 해수부 등 정부 부처 어느 곳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주고 선박에서 빨리 탈출시켜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사고 수습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오전 내내 ‘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고 낙관하며 상황을 오판했다. 청와대도 사고 초기 정확한 상황을 보고받지 못한 탓에 좀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장 구조팀은 선실 진입은 물론 탑승객의 3분의 1도 구조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탑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보고 때문에 ‘선실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게 하라’고 16일 오전 해경에 지시했다. 16일 낮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상황 보고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배가 전복된 뒤에야 구조선박과 헬기 등 구조장비를 2배로 늘렸다. 오전 10시 해경·군·소방방재청 등에서 헬기 16대, 선박 24대가 출동했다가 오후 3시에 헬기 31대, 선박 60척이 출동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10시31분 이미 선박은 뒤집혀 선체가 물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직 생사 확인이 안 된 상당수 승객이 여객선이 전복되기 직전까지 배 안에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사태 초기 잠수훈련을 받은 해경특공대를 투입해 선체 내부에서 구조 활동을 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을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정부 부처 간 지휘 협조 체계의 혼선도 드러났다. 16일 내내 해양경찰청을 관할하고 해난 사고 전문가가 많은 해수부와 재난관리 주무 부서인 안행부의 임무와 역할이 정리가 안 돼 혼선을 빚었다.
목포/안관옥 기자, 음성원 석진환 권혁철 기자
e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