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權과장은 光州의 딸" 발언의 얄팍함
김 형원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 2013. 04. 25
"당력(黨力)을 총동원해 '광주의 딸' 권은희 과장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지난 21일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권은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권 과장이 국가정보원 여직원 대선(大選) 개입 의혹 수사 과정에서 상부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한 직후였다.
'광주의 딸' 발언은 즉각 역풍(逆風)을 일으켰다. 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은 "도대체 거기서 '광주의 딸'이 왜 나오나"라고 반발했고, 새누리당도 "결국 민주당이 이 사건을 통해 이뤄내려는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국민은 다 알게 됐다"고 비판했다. 당 내부에서조차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 비대위원장은 발언 사흘 만인 24일 '권은희 경정님께'라는 글에서 "광주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거나, 지역감정을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당신의 그 숭고한 사명감과 순수한 열정이 본인의 몇 마디 말로 폄훼되거나 곡해되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세간에서 문 비대위원장의 애초 발언은 권 과장에게 "우리가 뒤에서 받칠 테니 끝까지 밀고 가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읽혔다.
'광주의 딸' 발언이 비판받은 건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민주당이 권 과장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12월 11일 이 사건이 터졌을 때 기자는 국정원 여직원이 사는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 현장에 있었다. 오후 8시쯤 권 과장과 경찰관들이 도착하자 민주당 사람들은 "증거를 없앨 수 있는데 왜 문을 따고 들어가지 않느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권 과장이 "의혹만으로 강제수사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자, 일부 민주당 인사는 "왜 수사과장이 대답하느냐, 서장 불러"라며 호통을 쳤다. 민주당 인사들은 걸핏하면 권 과장을 불러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들은 "정치권에서는 '진실 규명'과 '정치 공세'가 종이 한 장 차이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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