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최보식 칼럼] 몰염치

도깨비-1 2013. 3. 15. 14:08


[최보식 칼럼] 몰염치

안철수씨를 향해 그토록
꼬리를 치고 찬양했던
좌파 진영의 돌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의 등 뒤에 匕首를
꽂기로 작정했다면…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2013. 03. 15.
 

   나는 '정치인' 안철수씨에 대해 쭉 비판적이었다. 이제 야권 일각에서도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한때 그들의 '구세주'였던 안씨를 향해 일제히 총구(銃口)를 돌리고 있다. 이런 동조자들이 늘어나 흐뭇해지기는커녕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안씨의 '고립'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가 아닌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丙)을 택하면서 자초했다. 시중 여론은 노 전 의원 편인지 모른다. 도청된 '삼성 X파일'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그가 의원직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세상의 정의(正義)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삼성으로부터 '떡값' 받은 걸로 언급된 검사들은 놔두고, 이를 세상에 알린 의원은 유죄가 됐다니.
   실정법에 근거해야 하는 법원의 고민도 있었다. 그는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고, 법적 공방의 최종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이런 사연이 있는 지역구에 안씨가 실리적인 계산으로 차고 들어왔으니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의 기득권을 노 전 의원이 계속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로서는 자신이 의원직을 빼앗겼으니 '일심동체'인 부인이 되찾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었다. 부인의 당선으로 '사법부에 의해 무너진' 정의가 바로 세워지고, 자신의 행위가 옳았음이 입증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로서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부인을 '전략 공천'했다. 그는 "사회운동을 해온 내 아내가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여서 공천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때까지 심정적으로 동조해온 사람들조차 그를 낯설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노원병이 그의 사유지이고 부부끼리 주고받는 가족 재산이라도 되는가. 또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식이 이런 선거로만 이뤄져야 하는가, 삶의 다른 모습이나 사회 활동을 통해 보여줄 수는 없는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말이다.
   한때 감방에 갇힌 대중정치인들이 "내가 떳떳하다는 걸 유권자들이 심판해줄 것"이라며 자신의 지역구에 부인을 대신 출마시키던 '1990년대식 정치 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내용은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 뛰어든 안철수씨가 남의 위기를 틈타는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새 정치가 이런 것이냐. 그야말로 안(安)하무인"이라고 격앙했을 때 그 자신을 돌아보지는 못했던 게 틀림없다. 지역구를 부인에게 건네준 그는 '새 정치'를 하고 있는 걸까. 주변의 보수 인사들조차 "합리적인 진보 정치인으로 알고 있었던 그에게도 이런 구태가 있었구나"고들 안타까워했다. 그러니 부인의 선거를 통해 이긴들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구 선택은 출마자 개인이 판단하는 것이다. 안철수씨가 노원병에 출마하기 위해 누구누구의 재가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가. 선거 때마다 급조되는 '야권 연대'에 그가 동의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데도 이기기 위한 방편만으로 단일화를 써먹는 것이 '새 정치'일 수도 없다.
   대선 패배 후 잠잠했던 좌파 진영의 정치 훈수꾼들이 안씨를 향해 "탐욕" "횡포" "기회주의"라며 포문을 열고 있다. 나꼼수의 한 멤버는 "결점을 공개하지 않아 완벽한 인간으로 주접을 떨다가 '노원병'의 신(神)이 되고자 하는 '노원병신'"이라고까지 말했다. 때맞춰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양보 조건으로 자신을 '미래 대통령'으로 불러달라고 했고 그 속기록을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잔수(手)'는 불쾌한 느낌을 준다.
   안씨는 대선 때 야권 후보의 단일화에 협조했다. 내막이야 어떻든 그가 양보하고 물러났다. 그때 안씨가 출마했다면 야권은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그런 빚을 진 민주당이 자신의 구도(構圖)대로 안씨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아예 싹부터 잘라버리겠다며 덤벼드는 듯한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안씨에 대한 우파 진영의 거부감은 일관된 면이라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정치 바람을 탈 때부터 그의 '실체'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때 그를 향해 그토록 꼬리를 치고 찬양했던 좌파 진영의 돌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씨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한다면 이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급할 때는 그에게 매달렸지만 이제 정치적 계산이 달라져 그의 등 뒤에 비수(匕首)를 꽂기로 작정했다면 이는 하류 건달패의 처신보다 못한 것이다.
   안철수씨에 대한 내 관점은 변한 게 없다. 다만 야권의 몰염치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긴 어려웠다. 이는 미풍양속을 해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