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아침논단] 대통령의 '추락'

도깨비-1 2012. 3. 5. 10:46


[아침논단] 대통령의 '추락'

 

이명박 정부 失政 많지만
욕설 일삼고 정책 발목잡는
안티세력이 더 큰 문제
'실패한 정권' 낙인찍으려
나라 결딴나도 상관 않는 듯
비판하더라도 지킬 건 지켜야


 박지향 서양사학과 교수/ 조선일보 2012. 03. 05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위상은 '추락'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현직 판사가 '가카새끼'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비슷한 경로를 겪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나. 멀리 가지 말고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의 공과(功過)를 한번 짚어보자.
   김영삼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군(軍)의 정치적 개입을 뽑아버린 것과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것이었다. 하나회가 붕괴된 후 우리 정치에서 군대는 변수가 되지 못했고, 금융실명제는 '차떼기'와 '돈 봉투'의 실체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 밖의 업적은 초라해 보이고 외환위기라는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측근 관리도 부실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전 정권에서 넘겨받은 외환위기를 극복하여 경제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주고 얻어낸 대가라는 비난은 있지만 한반도 남·북 지도자들이 얼굴을 맞대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록될 일이다. 그러나 퍼주기로 끝난 채찍 없는 당근 일변도의 대북정책은 대단히 잘못됐고, 그의 임기 중에 지하에서 올라온 종북(從北)주의자들의 위세는 지금도 꺾일 줄 모른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정리하면서 제기된 여러 의혹은 아직도 가십거리가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정치사에서 길이 기억될 인물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분열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키는 잘못을 저질렀다. 만약 그가 '코드 정치'를 하지 않고 모두 함께 가자는 통합(統合)을 내세운 정치를 했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려한 사후(死後) 부활은 우리 정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징표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이 가장 원한 것은 경제 문제의 해결이었다. 그러나 서민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물론 그것이 유독 이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다. 2008년에 들이닥친 세계적 경제위기의 극복이나 경제가 지구화하면서 이루어지는 구조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빈부격차는 모든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이다. 그렇지만 시장경제와 정부통제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은 예전 그룹 총수의 눈치를 보던 CEO가 이제는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인사관리와 자기관리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후보시절부터 따라다니던 여러 의혹은 인척과 측근의 비리로 실체화했고 사재(私財) 환원의 결단까지 빛바래게 한 내곡동 사저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나꼼수' 같은 '너절리즘'의 곰팡이가 창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 추락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뭐니 뭐니 해도 취임 초부터 그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 막강한 안티(Anti) 세력일 것이다. '고소영' 인사가 조성한 분위기는 광우병 파동을 증폭시켰고 그렇게 결집된 안티 세력은 줄곧 이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한·미 FTA까지 극렬히 반대한다. 국민 다수가 민주적으로 선출한 대통령의 권위를 부인하는 안티 세력이 집요하게 대통령의 정무수행에 딴지를 거는 사태의 심각성은 이제 우려할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는 노무현 정부부터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까지는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부터 '놈현' '노구리' 같이 비하하는 표현이 난무하더니 요즘에는 '쥐××' '가카새끼' 같은 적나라한 욕설로까지 격화했다. 이 싸움의 목표는 어떻게든 정부가 하는 일을 방해하여 '실패한 정권'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정권을 빼앗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는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아니, 반대편의 성공을 보느니 차라리 나라가 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막가파적 태도는 현 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다.
   이제 우리 모두 이런 반(反)국가적 행위는 용납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저급한 언어를 내세워 다중(多衆)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나라의 격(格)을 떨어뜨리는 사람들도 사라져야 한다. 국민들도 자신이 지지했든 안 했든 간에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의 권위를 존중해주는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비판은 하되 절도와 절제를 지켜야겠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나라 잘되는 게 우선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