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대기업·공기업만 가려고 하는 젊은 세대
생산현장, 사람 없어 난리인데
기대수준 너무 높은 청년층
깊은 생각 없이 '남 탓'만
무조건 그들 비위 맞추기보다
사회 지속가능하게 개혁하고
잘못 꾸짖는 어른도 있어야
강규형 -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역사학 / 조선일보 2012. 2. 13
대기업 최고위 임원께 직접 들은 얘기다. 지인이 아들의 취직을 부탁했는데 도저히 사무직으로 뽑을 수 없는 실력이었고, 취직한다 해도 몇 년 못 가 회사를 그만둘 것이 확실해서 대신 연봉도 더 받고 근무연한도 긴 생산직을 추천했더니 부자(父子)가 다 거절하더란다. 중소기업과 생산현장은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인데 대학물 먹었다고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직장만 찾는 태도는 분명 문제다. 인기 공기업에서 10명 채용공고를 냈더니 무려 58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사회병리(病理) 현상이다. 반면 한국에서 평균소득 최고를 자랑하는 도시가 생산직 노동자 일자리가 많은 울산과 거제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청년 실업'으로 인한 분노는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할 측면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청년층의 기대수준 폭발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 최고 부국(富國) 중 하나인 독일의 대학진학률이 39%인 데 비해 한국은 무려 80%가 넘는다. 세상의 어떤 정권이나 체제도 이런 사회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대학진학률을 높여놓은 과거 교육정책의 처절한 실패는 바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기성세대의 다른 잘못 중 하나는 열심히 일하고 돈 벌기에 바빠서 가정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니, 가정에서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버릇없이 행동한다.
축적된 분노는 자신보다 남을 탓하는 세상을 만든다. 며칠 전 한 유명 아나운서는 자신의 입사시험 낙방 경험을 유머를 섞어 공개했다. 어느 시험에선 최종합격자 두 사람이 명문대 출신이라 "학벌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했고, 다른 시험에선 지방대 출신이 붙는 것을 보고 낙방 이유가 "대한민국의 조직적인 비리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진정한 낙방 이유는 낮은 토익 점수였다고 한다. 그는 이후 도전에 성공하고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 MC 중 한 명이 됐다.
잘되면 내 탓이요, 잘 안 되면 남·집안·조상·운수, 나아가 친일파(親日派) 탓이라는 핑계를 댄다. 인터넷 공간에는 "잘사는 사람들은 다 친일파 자손"이라는 1980년대식 구닥다리 허구가 판친다. 이는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지만 젊은 층에서 특히 심하다. 하지만 남 탓하는 사람치고 잘되는 법이 별로 없다. 운(運)도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
IT 환경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과도한 인터넷 사용은 인지(認知)를 담당하고 충동을 절제하는 전두엽과 전(前)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괴담과 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 일부 청년들은 SNS에서 천방지축 행동하며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다. 저명한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가 얘기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현이 우려된다. 중우(衆愚)정치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정치권도 청년들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촛불정신'을 계승하자는 민주통합당은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당도 문제다. 최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인재영입분과위는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청년실업자 및 경력단절 여성에게도 비율대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도록 건의했다. 경악할 만한 권고다. 청년실업자 중 누구를 뽑아야 대표성이 확보될 것이며, 실업자 몇 사람을 국회의원 시켜준다고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나? 그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실업이 무슨 자격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한국은 미래세대를 위해 진정한 변화를 할 것인지, 아니면 사탕 몇 개 나눠주는 식의 임기응변적 선심(善心)을 쓸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값싼 위로나 아첨, 무작정 퍼주기 식 지원은 그들을 궁극적으로 더 큰 어려움으로 인도할 것이다. 국민연금만 해도 이대로 두면 그들이 혜택을 받을 21세기 중반쯤 고갈되기 시작해 결국 빈 창고가 될 것이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이런 것을 합리적으로 개혁해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임금피크제 같은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혁신적인 개혁이 더 효과적이다. 이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청년세대도 기성세대와 사회를 저주하기에 앞서 앞 세대가 가졌던 성취와 한계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점에 대해선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옳다.
미래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들을 위해 더 공정하고 더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미래세대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한편, 그들의 잘못된 언행에는 죽비 소리같이 꾸짖을 수 있는 어른이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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