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없는 척' '위하는 척' 둘 다 역겹다
박은주 문화부장/ 2012. 01. 28.
"그분 요즘 샤넬 가방 안 들고 다니던데요. 그 집 샤넬과 에르메스는 몇 년 동안 장 속에 콕 처박혀 있을 예정이래요." 소박한 이미지의 인기정치인 A씨의 부인을 두고 '강남 여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 형 공연 갈 때는 소속사에 BMW 세워 두고, 국산 승합차 타고 가요. 이미지가 있는데 외제차 타고 다니긴 좀 그렇잖아요."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연예인 B씨의 매니저에게 들은 말이다.
사랑을 받는가 손가락질을 받는가 하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연예인과 정치인은 대중에게 이미지를 팔아 권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소박한, 수더분한, 친근한 '이미지'는 득표에 중요하다. 그렇게 보이려고 그들은 '생활 연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외손녀 패딩 점퍼가 논란이 됐다. 솜 채운 점퍼 하나가 300만원이나 한다는 소문에 대통령은 단박에 거짓말쟁이, 위선자가 됐다. 연예인들이 많이 입고 나와 유행이 된 몽클레어 점퍼 어린이용은 7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결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점퍼는 아니다.
대통령 가족이 검박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흐뭇한 일이다. 그런데 좀 솔직해지자. 요즘 백화점에 가면 초고가 유모차 숫자가 장바구니 숫자와 비슷할 정도다. 그걸 구입하는 부모들 상당수가 평범한 월급쟁이다. 대통령도, 아이 아버지도 부자다. 못 사주는 사람이야 속상하지만, 그런 옷을 입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밉다 한들, 외손녀 옷을 갖고 '이명박 거짓말쟁이'라 몰아붙이는 건 요즘 우리나라 부모의 평균 소비수준을 따져 보면 과도하다. 더 치사한 건, 이명박 손녀의 패딩을 덮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손녀의 버버리로 대응하는 네티즌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졌지 언제 "나 아직도 서민이다"고 주장했었나 말이다.
명품 논란은 '진보' 소설가인 공지영씨에게도 일어났다. 그녀가 미국에 들고간 가방이 고가의 샤넬이라는 주장이 트위터에 올라왔고, 공씨는 샤넬이 아니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공지영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샤넬을 왜 못 드냐"는 자본주의적 논리의 옹호 글이 올라왔다. 지지자들은 '민중지향적 글쓰기'와 '샤넬'의 거리감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 작가가 샤넬을 들건 타월을 들건 상관할 바 아니라면, 이명박 손녀의 패딩이나 노무현 손녀의 버버리도 논란거리가 아니다.
논란이 된 대통령들의 잘못은 '생활연기'를 못한 거다. "할아버지 재래시장 가니까 너 빨리 시장 옷 입어라!" 그런데 그랬다면, 그게 더 위선이다. 그런 게 진짜 정신적 '코스프레'(만화·영화 주인공 옷 입기 놀이)다.
올 총선과 대선 후보들은 이 정신적 코스프레로 국민을 속이려 들 것이다. "저는 분단과 한반도 긴장을 조장하는 보수의 숨통을 끊겠습니다"며 통일전사(戰士) 노릇을 하는 후보는 자신의 '종북주의'를 고백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를 죽여야 내가 사는 무한경쟁주의를 학교로부터 몰아내겠다"고 말하는 후보는 자기가 명문대 나와 누릴 거 다 누렸다는 얘긴 쏙 빼놓을 거다. "파이가 커져야 국민에게 돌아가는 몫도 많아진다"며 성장논리를 여전히 주장하는 이 역시 재벌중심 정책을 어떻게 개혁할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 것이다.
봄이 되면 '가짜 소박함' '가짜 통일주의자' '가짜 개천용(龍)'이 우후죽순처럼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도대체 우리 유권자는 언제까지 이 가짜들 코스프레에 놀아나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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