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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스타'가 아니라 '영웅'을 꿈꾸게 하라

도깨비-1 2011. 10. 7. 15:18


[태평로] '스타'가 아니라 '영웅'을 꿈꾸게 하라

 조정훈 스포츠부장/ 조선일보 2011. 10. 07
 

   전화기 너머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92세 노인이 맞나 싶었다. 김 고문은 대한체육회와 한국체육학회가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 고(故) 손기정 선생과 함께 선정됐다. 하지만 김 고문은 지난달 22일 열린 헌액(獻額)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스포츠 관련 행사라면 빠지지 않았던 김 고문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아들만 대신 보낸 이유가 궁금했다. 김 고문은 "역도 하다가 허리를 많이 다친 탓인지 얼마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잘 걷지 못한다"며 "그 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한 것도 없는 늙은이한테 '스포츠 영웅'이라고 하는 건 과분한 대접"이라고 했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김성집 고문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살아있는 역사(歷史)다. 1948년 런던올림픽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무대 시상식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선보인 인물이다. 스물아홉살 영웅(英雄)은 그때도 "최선을 다하였으나 여러분의 기대에 어그러져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서울 종로2가에서 서울역까지 가두행진을 할 때 길가에 늘어서서 "이기고 돌아오라"던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기억했던 까닭이었다. 항일(抗日)수단으로 역도를 보급하던 스승 서상천의 영향으로 역도에 입문한 김 고문은 당초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노리고 있었다. 선발전에서 우승했지만 조선 출신 선수를 가급적 배제하려 했던 일본체육회의 방해로 최종 명단에서 빠졌고, 1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올림픽 2연속 동메달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그는 은퇴 후 체육 행정가로 변신했다.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시절엔 고(故) 민관식 대한체육회장과 함께 태릉선수촌 건립을 주도했다. 1976년부터 18년간 태릉선수촌장(長)을 맡으며 한국스포츠의 부흥을 이끌었다. 흐트러짐 없고 수도자처럼 절제된 생활을 했던 까닭에 생긴 별명이 '걸어다니는 시계(時計)' '태릉의 기인(奇人)'이었다. 훈련을 빼먹거나 요령을 부리면 여지없이 불호령을 내렸던 그를 국가대표 선수나 코치들은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대쪽같은 성격의 김 고문은 많은 일화(逸話)를 남겼다. 1990년대 말 고려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주겠다고 했지만 "그냥 운동선수로 남아야 김성집"이라며 끝내 고사했다. 외국출장을 다녀올 때도 그 흔한 쇼핑을 하지 않았다. 출입국 검사 때 빈 가방으로 제일 먼저 통과하는 인물이 그였다.
   우리는 '스타의 홍수(洪水)'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판이나 연예계에는 입만 벙긋해도 화제가 되는 스타들이 즐비하다. 스포츠 분야에도 스타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라고 해서 모두가 영웅이 되는 게 아니다. 젊은 세대의 롤(role) 모델이 될 만하고, 사회통합과 국위(國威)선양에 기여한 인물이라야 진정한 스포츠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우리 국민들이 좌절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마다 용기와 꿈을 심어준 스포츠 영웅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스포츠 영웅을 인정하고 대접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 선정 사업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좀 더 내실(內實)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을 오롯이 되살려 다음 세대가 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스타보다는 영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은 나라, 그게 바로 선진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