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최보식 칼럼] 박원순의 '거울'을 들여다보다

도깨비-1 2011. 10. 7. 15:13


[최보식 칼럼] 박원순의 '거울'을 들여다보다

시민들이 힘이 더 강해져 몹쓸 정치인에게
'요놈, 한 대 맞아!' '요건 이렇게 해!' 때려가면서 키워야 해

 

     조선일보 / 2011. 10. 07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해 물으면 "추악한 좌파" "위선적 인간" 등 격한 반응을 쏟아낸다. 우파 진영은 못마땅하고 싫은 감정에만 휩싸여 있다. 감정이 앞서면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가 일관된 삶을 살아온 것은 인정해야 한다. 시민들 생활 속으로 들어가 '혁명(革命)'을 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이를 위해 맨바닥에서 보여준 열정과 헌신은 평가할 만하다. 설령 좌파일지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할도 했다."
   이런 말을 우파 면전에서 하면 벌떡 일어날 것이다. 그가 대기업에서 어떻게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는지, 그 액수에 따라 살살 눈감아줬는지, 부인의 인테리어 회사가 어떻게 일감을 따냈는지, 그게 '저질 조폭'과 다를 것이 무엇인지 역설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이런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의 태도에 더욱 분개할 것이다. 어쩌면 끝까지 자신만은 깨끗한 인물로 믿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나, 그런 인간을 자신의 영웅인 양 "석방하라"고 지금도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좌파들에게서 박원순 후보의 모습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의 이중성에 대해선 할 말이 더 남았을 것이다. 법조인인 그가 법에 어긋나는 '낙천·낙선운동'을 벌일 때는 "악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다른 상황에서는 "왜 법대로 안 하느냐"고 떠들었다고도 말할 것이다. 또 정치중립이어야 할 시민단체의 순결성을 더럽힌 장본인으로 그를 지목할 게 틀림없다.
   우파 진영이 박원순 후보에게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친일(親日)부역세력이 만든 정권"이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해온 점이다. 그가 종북(從北)세력과 결탁된 걸로 의심한다. 한 인사는 "그의 소탈한 인상에 속으면 안 된다. 그 속에 우리 기성사회에 대한 증오를 감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으로 본색을 위장했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박 후보는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지금은 우파의 이런 절박한 외침도 그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받아들이기 싫겠지만, 우파 인사들의 대중 설득력은 거의 바닥이 났다. 오히려 우파에 대한 젊은 층의 냉소만 보탤 뿐이다.
   우파가 현명하다면, 한낱 그를 갉는 데만 골똘해서는 안 된다. 왜 우파에서는 그와 같은 인물이 만들어지지 않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를 둘러싼 어떤 힘이 민주당의 거대조직을 이기게 했는지, 젊은 친구들이 그의 '피리소리'에 왜 덩달아 춤추며 따라가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바람에 쉽게 휩쓸리는 경박한 세태를 원망하는 것은 잠깐으로 그쳐야 한다.
   무엇보다 박원순의 '거울'에서 우파는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위기는 늘 내부에서 시작된다. 10년 만에 만든 우파 정권도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는 걸 사람들은 알게 된 것이다. 정의로움, 비판세력에 대한 포용력, 약자 편에 선 따뜻한 마음, 젊은 세대를 위한 양보를 본 적이 없고 감동한 순간이 없었다.
   정권을 책임지는 인사들치고 '가치'를 위해, 옳은 길을 위해 몸을 던졌던 이도 기억하지 못한다. 돈과 안락(安樂), 탐욕, 부패를 마치 우파의 상징처럼 만들어 놓았다. 먹는 사람만 입이 터지도록 말아먹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만 임기 내내 화색이 돌 뿐이다. 나이의 위세만 따져 노장(老壯)들이 앞줄에 서니 우파의 '신진(新進)'은 나올 턱이 없다. 이제 한나라당이나 우파 인사들은 걱정이 앞서겠지만, 상당수 대중은 그런 걱정에 코웃음 치고 납득하지 못한다. 과연 자신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날 박원순씨가 야권 단일후보가 됐을 때, 나는 시인 김지하의 냉소적인 말과 표정을 떠올렸다.
   "시민들이 힘이 더 강해져 몹쓸 정치인에게 '요놈 새끼, 한 대 맞아라!' '요건 이렇게 해!' 때려가면서 키워야 해. 시민들이 강하면 정치하는 놈이 조심하고 태도를 바꾼단 말이야. 이제까지 시민이 약하니까 그것들이 제멋대로 논 거야. 철학도 없고 공부도 안 하고. 언젠가 개혁모임 한다는 젊은 국회의원들에게 강연했는데 하나도 모르겠대. 나중에 내가 씩 웃으며 '공부들 하라고. 아니면 국회의원 배지 얼마 못 달아' 했어."
   이미 16년 전에 나눈 대화였다. 그 상황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중이다. 우파에게 더 우울한 전망은 위기는 이번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