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시론] 압축성장은 가능해도 압축복지는 불가능하다

도깨비-1 2011. 9. 5. 14:37



[시론] 압축성장은 가능해도 압축복지는 불가능하다


 -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교수/ 조선일보 2011. 09. 05

   결국 서울의 모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세금으로 똑같은 급식을 주자는 안이 시행되게 되었다.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기본바탕으로 5년간 164.7조원짜리 초대형 복지패키지를 내놓았다. 민주당의 복지 방향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 거대한 재원(財源)의 조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경제구조의 변화와 복합리스크의 증대를 고려할 때 복지논쟁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논쟁이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논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사회의 복지논쟁은 생산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복지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외국 사례이다. 복지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제도를 예로 들면서 한국의 복지수준이 한참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의 성장과정, 경제와 인구규모가 북유럽 국가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복지확대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서구에서도 복지제도의 혜택을 축소하고 있으며, 남유럽 국가들은 과다한 복지 때문에 재정위기가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주장도 빵을 겨우 한 개 먹은 사람에게 빵을 너무 많이 먹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충고처럼 보인다.
   복지논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대한 이분법적 논쟁이다. 다른 나라의 복지시스템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복지제도도 보편적 제도와 선별적 제도가 혼재되어 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마치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면 '착한 복지'요, 선별적 복지를 주창하면 '나쁜 복지'로 몰아붙이는 황당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핵심적인 이슈는 복지를 확대할 것인가의 여부도 아니고 어느 나라의 복지시스템을 따라갈 것인가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적인 상황하에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떤 속도로,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복지를 확대해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잊힌 단어인 '성장'과 뜨고 있는 단어인 '복지'의 선(善)순환 구조의 확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복지제도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가치를 실현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다른 어떤 복지보다 근로연계형, 근로촉진형 복지제도의 구축이 중요하다.
   한국이 압축성장처럼 압축복지에 매진한다면 치유하기 어려운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복지제도는 한번 도입되면 없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의 삼각 쓰나미가 닥칠 날이 10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샴페인에 미리 취해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복지지출 설정을 위해 연간 복지지출 증가율의 상한을 '경상 경제성장률+α'로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는 결식아동들이 많다. 아파서 빈곤의 나락에 떨어진 이웃도 적지 않다. 이들의 아픔을 우선 돌보지 않고 모든 사람의 복지를 획일적으로 높이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발상이야말로 비복지적이다. 어려운 아이와 이웃들을 먼저 챙기는 복지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성장과 복지에 관한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 우리는 보편적 복지의 치명적 유혹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을 먼저 살피는 복지확충의 길을 가야 한다. 비록 그것이 인기투표를 하면 채택될 수 없는 방안일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