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조선데스크] 노숙인이 없어지려면

도깨비-1 2011. 8. 26. 11:15


[조선데스크] 노숙인이 없어지려면


 - 김동석 사회부 차장/2011. 08. 25 조선일보

 

   노숙인들의 재활(再活)을 위해 발행되는 잡지 '빅 이슈' 한국 본사는 서울 영등포 청과물시장 2층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취재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시장골목을 한참 헤매야 했다. 낡은 의자와 탁자, 인쇄물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이들의 사무실은 1980년대 대학 학생회 모습을 연상시켰다. '서울형 사회적 기업'인 이곳에서 20~30대 직원들이 박봉에도 열성적으로 노숙인들을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빅 이슈'는 지난 1991년 영국에서 노숙인 자활을 위해 창간된 잡지로, 지금은 영국·일본·남아공 등 10개국에서 발매되고 있다. 한국에는 지난해 7월 처음 들어왔으니 이제 1년이 갓 넘었다. 3000원인 잡지 한 권을 팔면 1600원이 판매원(노숙인)에게 돌아가는 구조로, 많은 노숙인들이 이를 통해 재활에 도전하고 있다.
   '빅 이슈' 직원들 소개로 노숙인들을 만나면서 직업이 인간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스로 몇 년이나 노숙을 했는지도 기억 못 하던 사람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푼돈을 모은 것을 계기로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직업은 살아가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직업 자체가 삶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당시 만났던 한 노숙인은 "한 달 일해서 20만원의 수입을 손에 쥐었을 때 감격의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는 수입을 꼬박꼬박 은행에 넣고 있었다. 사업이 망해 거리로 나앉은 다른 노숙인은 "친구들에게 용돈 얻어서 하루에 소주 2~3병 마시고 버틴 날을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번에 판매원 일을 시작하고 나서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술 대신 밥을 먹는다는 건 인간적인 삶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노숙인들을 돕는 이 잡지의 직원 한 명은 "노숙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노숙인이 처음 직업을 갖게 되면 3개월 정도 버티다가 포기합니다. 하지만 다시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 6개월, 1년을 버텨요. 그렇게 되면 사회로 돌아갈 기반이 마련되는 거죠." 그는 펌프질할 때 처음에 물을 붓는 것처럼 한 달에 10만원, 20만원이라도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사람이 달라진다고 했다. 지금까지 노숙인 대책이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최소한의 생존(生存)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직업을 갖도록 하는 재활 프로그램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역은 22일부터 역사(驛舍) 내 노숙인 퇴거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노숙인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건 물론이고 안전 문제도 일으키는 만큼 서울역의 조치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적인 대책은 아니다. 쫓겨난 노숙인들은 어차피 다른 역이나 지하도 주변으로 몰려가게 돼 있으며, 감시가 느슨해지면 다시 서울역을 찾게 될 것이다.
   결국 노숙인들을 서울역에서 영원히 추방하려면 이들이 직업을 갖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독려하는 수밖에 없다. 직업이 생긴 노숙인들은 다시 와달라고 부탁해도 서울역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