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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양을 다시 생각한다

도깨비-1 2011. 6. 26. 22:44


[태평로]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양을 다시 생각한다

   이한우 기획 취재부장/2011. 06. 25. 조선일보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작년 봄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양을 떠올렸다. 당시 그의 행동을 두고 "용기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미숙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다. 필자는 후자 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짜고짜 반값등록금을 부르짖고 여야(與野) 지도부까지 경쟁적으로 학생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니 김양에 대한 생각이 "미숙하긴 했지만 진정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김양은 대학의 교육외적 문제인 등록금을 고민하다가 자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다. 대학의 본질 문제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그의 최종 판단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김양은 진지하게 대학의 본질을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대학생이 된 김양에게 대학은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였다. 누가 이 지적을 부정할 수 있을까? 대학에서 학문(學問)이 실종된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양은 말했다.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다시 읽어 보니 이 대목이 가슴을 때린다. 청년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질타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 당국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표(票) 좀 얻겠다고 경쟁적으로 반값등록금 추진을 선언한 정치권의 지도자들은 김양이 온몸으로 던진 물음에 답을 찾으려 노력했어야 한다. 물론 대학등록금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비싸고 가계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낮춰가는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행정'의 문제일 뿐이다. 어떻게 해서 등록금을 반으로 낮췄다고 하자. 그러면 학생들은 "시위했더니 반값으로 낮춰주더라"면서 다시 반값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 정치권과 교육행정 당국은 어떤 논리로 이미 '떼'의 힘을 알게 된 학생들의 주장을 반박할 것인가?
   대학등록금이 반값이 되고 반의반값이 돼도 김양이 던진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염치(廉恥)를 잃고 모든 것을 '떼의 힘'에 의존하려는 무책임한 사고만 키워줄 수 있다. 그에 비하면 모든 문제의 뿌리로서 남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지목한 김예슬양의 결론은 평가해줄 만한 내용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僞惡)한 것 중의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 단계까지의 고민은 '스펙' 쌓기에 내몰린 우리 대학생들도 김양의 심정이 되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특히 반값등록금 시위 학생이나 법인화 반대를 명분으로 총장실을 불법점거한 서울대 학생들은 김양의 대자보 전문을 구해서 음미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김양의 결론인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김양의 홀로서기도 끝내 멋진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