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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부처님 손바닥'에서 일하기

도깨비-1 2011. 3. 11. 14:39

[전문기자 칼럼] '부처님 손바닥'에서 일하기

 

  지해범 중국전문기자/ 2011년 3월 8일 조선일보

 

   주중 한국특파원들 사이에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직후의 일이다. 베이징에 온 지 얼마 안 된 특파원 부인들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만나 밥이나 먹자는 얘기였는데, 같은 장소를 두고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식당은 ◇◇빌딩 옆에 있잖아요."
   "아니야. △△호텔 뒤에 있어."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3자가 끼어들었다. 연변 동포 여성 말투였다.
   "아이참, ○○식당은 동3환 ◇◇빌딩 옆이 맞아요."
   깜짝 놀란 특파원 부인들이 누구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그 여성은 수화기 속으로 사라졌다. 전화통화 때마다 '칙칙'하는 잡음이 들려 이상하게 여겼던 한국특파원들은 모든 전화가 도청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국특파원단과 중국외교부 아주사(亞洲司) 직원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한 특파원이 아주사 직원에게 농반 진반으로 "중국외교부에 좋은 여성 외교관들이 많던데 총각인 ○특파원에게 소개 좀 해주시죠"라고 말하자, 그 중국 직원은 대뜸 "사귀는 여성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라고 대답했다. 한국 기자들의 활동내역을 모두 아는 듯한 그의 말투에 특파원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상은 중국의 '인해전술식 정보수집 활동'의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수집을 위해서라면 미인계를 통한 회유와 협박까지도 서슴지 않는 중국의 첩보활동은 최근 외교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5월 일본 외교관 자살사건이다. 일본 언론은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의 40대 외교관이 술집에서 사귄 호스티스와 내연관계를 맺은 것이 약점으로 잡혀 중국 스파이에게 외교기밀 유출을 강요받다가 자살했다고 보도해 큰 파문이 일었다. 2008년 1월에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를 수행한 고위보좌관이 호텔 디스코장에서 만난 미모의 현지 여성과 춤을 춘 뒤 호텔방으로 올라갔다가 다음날 아침 블랙베리폰을 분실한 사건이 있었다. 그 스마트폰은 이메일로 기밀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제품이었다.
   상하이 주재 한국영사관에 근무하던 외교관들의 스캔들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사건이 중국 당국의 첩보전인지 아닌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확실한 것은 이 사건에도 '미모의 여성'이 개입돼 있고, 그녀는 상하이시 고위층을 연결하는 통로를 자처하면서 한국 외교관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냈다는 점이다. 서둘러 덮을 일은 아니란 얘기다.
   주중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한 고위 외교관은 "중국에서 산다는 것은 솔직히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집에 있는 동안은 가정부가, 집을 나서는 순간 아파트 경비원이, 돌아다니는 동안은 자동차 운전사가, 대사관 일은 현지 직원들이 24시간 다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100만명에 달하는 중국 주재 외교관, 기업주재원, 심지어 유학생들까지도 '빅 브러더' 같은 중국의 첩보 그물망에 24시간 노출돼 있다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