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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공짜'가 이기면 민주주의는 지는 것

도깨비-1 2011. 1. 25. 12:00

[태평로] '공짜'가 이기면 민주주의는 지는 것

  - 김 낭기 논설위원 / 조선일보 2011. 01., 25.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민주주의는 제도 자체로는 최악이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정치제도 중에는 최선의 제도"라고 했다. 요즘 시끌벅적한 '공짜 복지' 논란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최악의 제도로 남을지, 최선의 제도가 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 같다.
   2000년 전 그리스에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탄생했을 때 철학자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능력이 평등하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사람들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노예·평민·귀족으로 나뉜 신분제 사회였으니 그런 주장이 나올 만도 했다. 지금은 신분제의 소멸과 국민 보통 교육제도의 도입 등으로 다른 세상이 됐다.
   민주주의는 환상(幻想)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국민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서 투표할 때뿐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권력을 장악한 소수(少數)의 힘 있는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압력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는 현대사회에선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다수의 횡포'도 빠지지 않는 비판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수결이라도 법 절차를 위반하면 무효로 판정하는 사법제도 같은 게 있어서 다수결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인류는 이렇게 민주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해 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문제 중에는 지금도 숙제이고 앞으로도 숙제로 남아 있을 게 하나 있다. 바로 '대중(大衆)의 속성'과 관련된 문제다. 대중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지만 본능적인 감정과 열망에 휩쓸리기도 쉬운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이 표를 잡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중의 본능적 감정과 열망을 자극하고 여기에 영합하는 일이다. 노무현 후보의 '수도(首都) 이전' 공약에 이어 최근의 무상 의료 같은 '공짜 복지' 구호가 대표적이다. 공짜 복지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복지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나라는 7.5%밖에 안 되는데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은 27.3%나 된다는 통계를 강조한다.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통계다.
   그러나 2008년 정부가 거둔 세금 총액이 1인당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는 25.6%인데 스웨덴은 47.1%라는 사실은 모른 체한다. 그 당시 1인당 GDP가 우리는 1만9153달러, 스웨덴은 3만679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두 나라 국민이 낸 세금 총액의 차이는 더 커진다. 이들 정치인들은 작년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이 복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이를 줄이려 하자 복지의 달콤함에 젖어 있던 시민들이 폭력 시위로 맞서 온 나라가 난리를 치렀던 뉴스에도 눈을 감고 있다. 다음 선거만을 노리는 정치 장사꾼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진짜 정치가라면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국민의 선택이다. 정치 장사꾼과 진짜 정치가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이다. 민주주의의 다른 부작용은 제도의 보완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국민의 선택은 국민 자신 말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앞으로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민주주의는 나라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