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태평로] 사법부, 커진 힘에 걸맞게 자기 통제 해야

도깨비-1 2011. 4. 5. 10:22


[태평로] 사법부, 커진 힘에 걸맞게 자기 통제 해야

 김 낭기 논설위원/ 조선일보 2011. 04. 05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국민들이 '사법부'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독립(獨立)'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사법부의 독립'은 우리의 염원이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실현된 이젠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사법부의 '책임'이 독립 못지않게 중요해진 것이다.
   얼마 전 광주지방법원의 파산(破産) 담당 부장판사가 자기 형과 전직 운전기사, 변호사 친구를 법정관리 기업의 감사와 관리인 자리에 앉힌 사실이 드러났다. 또 변호사 친구는 이 판사가 과거에 형사부·민사부·행정부장을 돌아가며 할 때마다 사건을 도맡아 유리한 판결을 받아냈다. 검찰이 이 부장판사와 친구 변호사 사이의 유착 여부를 수사하려고 두 사람의 통화기록 등에 대한 11건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자 광주지법의 다른 판사가 모조리 기각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꼭 광주에서만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판사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사법부 독립이 이뤄질수록 법을 해석·적용하는 사법부의 역할과 힘은 커진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 민주국가에선 사법부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나 의회가 만든 법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 '사법 통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도 새만금 간척 사업 같은 대규모 국가사업이 법원 결정으로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는 일이 잦다. 4대강 사업도 법원이 환경단체들의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더라면 지금쯤 중단돼 있을 것이다. 전교조 가입 교사의 명단 공개가 무산된 것도, 여성이 종중원(宗中員) 자격을 얻어 조상이 남긴 재산을 상속받게 된 것도 법원 판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법 통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독립된 사법부의 힘이 커진 것에 걸맞게 사법부의 책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판사들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일본은 사법부의 자체 통제가 엄하기로 유명하다. 법원장이 판사들의 사건 처리 능력, 재판 태도와 방식 등을 평가해 성적이 나쁜 판사는 산골벽촌 법원으로 발령내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판사들 월급을 4등급으로 나눠 차별화하고 있다. 20년 경력 판사의 연봉이 1등급은 2481만엔, 4등급은 1542만엔으로 그 차이가 우리 돈으로 1억원쯤 된다.
   미국의 여러 주(州)에선 유권자들이 주대법원 판사의 판결이 옳지 않다고 여길 경우 투표로 그 판사를 해임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주 유권자들은 작년 11월 동성(同性) 결혼을 합법이라고 판결한 아이오와주 대법원 판사 3명을 판사직에서 해임했다. 알래스카·콜로라도·캔자스·일리노이·플로리다주에선 낙태·세금·건강보험 판결을 놓고 판사 해임 운동을 벌이고 있다. 1986년 캘리포니아주에선 사형제 반대 판결을 내린 판사 3명을 해임했다. 독일·프랑스 등에서도 판사들이 하는 일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판사의 선발·승진·교육·징계를 보다 공개적이고 국민 의견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이 당장 외국의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관 평가 제도가 있으나 마나 하고, 법관을 징계위원회에 넘기는 일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고, 모든 법관이 임기 10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재임용되는 지금의 현실을 언제까지나 그냥 둬도 좋다고 생각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