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했지만 해맑던 아이, 난 취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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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사회
글쓴이 : 한겨레 원글보기
메모 : [한겨레] 성폭행 사건 보도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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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일요일 밤 10시.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은 집을 찾지 못 했다. 가야 할 곳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후미진 골목의 반지하방이었다. 그곳에서 바로 전날 7살짜리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을 통해 사건 경위 등 간단한 내용만 알려진 상황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라는 캡(사회부 경찰팀장)의 지시를 받고 겨우 피해자의 주소를 알아낸 참이었다.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에서 길을 찾지 못 하고 방황하고 있을 무렵 마침 순찰차가 지나갔다. 순찰차를 불러 세운 뒤 주소의 위치를 묻자 경찰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약속은 하고 가시는 건가요?"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뒤에야 집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골목은 차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비좁았다. 이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놀던 피해 어린이는 "집에서 가서 같이 놀자"는 범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은 아이를 성폭행한 뒤 집 안을 뒤져 금반지 2개와 아이 지갑에 있던 1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아이의 부모는 베트남인으로 둘 다 봉제공장을 다녀 낮에는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피해 아이의 부모를 직접 만나 경찰 취재만으로는 알 수 없을 그들의 '사연'을 들어봐야 했다.
골목 입구의 식당 주인에게 다시 한번 도움을 받아 골목 안쪽 반지하방의 현관 앞에 섰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갓난 아기의 사진이 보였다. 피해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인 듯 했다. 사고를 당한 뒤 성폭력피해자들을 돕는 원스톱지원센터의 치료를 받은 아이와 부모는 이날 오후 집으로 돌아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간간이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내일 학교 끝나고 아빠 공장에 꼭 와. 엄마 공장은 재미 없잖아. 아빠 공장으로 와야 돼. 알겠지?" 아버지의 목소리도 놀랄 만큼 밝았다. 어머니가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라고 말해 봐"라고 말하자 아이는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몹쓸 일을 당한 뒤에도 웃음을 짓는 아이의 해맑음과 딸을 위해 안타까움을 억누르고 함께 웃음 짓는 부모의 심정이 가슴에 와 박혔다.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한 채 조용히 발길을 돌려 대문을 빠져나왔다. 고민 끝에 캡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을 방해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상황을 보고 받은 캡은 한동안 말 없이 한숨을 내쉬다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회사로 되돌아가면서 기자로서의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팍팍한 생활, 그들이 갖고 있는 사연들, 부모로서의 심정, 아이의 상태 등을 어떤 방법으로든 들어봐야 했던 건 아닐까. 한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을 외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20일 전에 일어난 영등포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때도 담당 기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처음에 한 일간지의 '단독'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오기 전 몇몇 기자들이 같은 사건을 이미 취재했지만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맡고 있던 영등포경찰서에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일간지가 보도를 강행했고 이 사건은 크게 이슈화돼 피해 어린이의 병실까지 기자들이 몰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기자는 이 사건에 대한 첫 기사를 보고 '전형적인 못된 기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사건이 커진 뒤 주요 언론사들은 이 사건을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시켜 나갔다. 언론을 통해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의 원인과 이를 막기 위한 대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개방하는 문제부터 학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관리의 허점, 퇴직 교원이나 경찰 위주로 위촉하는 '배움터 지킴이'의 부실 운영 등이 지적됐다. 또 초등학교 주변 100m를 아동보호 절대구역으로 지정해 유해 환경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학교마다 수위실을 만들어 학교 안팎을 전문적으로 관리하자는 대안도 나왔다. 근본적으로는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위한 국가적 복지의 필요성과 성교육을 통한 성 인식 개선 등의 필요성도 논의됐다.
실제로 앞으로 어떤 점들이 바뀌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보도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들이 조금이나마 더 안전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피해 어린이에 대한 지원도 확대됐다. 수술비 등 금전적인 지원에서부터 심리치료, 병원에서의 교과 공부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지원이 이뤄졌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감수한 '보도 효과'였다.
27일 성폭행 피해자 가족들을 눈 앞에 두고도 취재를 접은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집주소가 다른 언론사에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와 함께 피해자의 집에 몰려갔다. 그러나 피해 어린이와 부모는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때 벨을 누르고 들어가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지 못 한 것이 다시 한번 후회가 됐다.
그렇다면 또다시 같은 상황 앞에 서게 됐을 때 용기 있게 그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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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일요일 밤 10시.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은 집을 찾지 못 했다. 가야 할 곳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후미진 골목의 반지하방이었다. 그곳에서 바로 전날 7살짜리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을 통해 사건 경위 등 간단한 내용만 알려진 상황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라는 캡(사회부 경찰팀장)의 지시를 받고 겨우 피해자의 주소를 알아낸 참이었다.
골목은 차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비좁았다. 이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놀던 피해 어린이는 "집에서 가서 같이 놀자"는 범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범인은 아이를 성폭행한 뒤 집 안을 뒤져 금반지 2개와 아이 지갑에 있던 1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아이의 부모는 베트남인으로 둘 다 봉제공장을 다녀 낮에는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피해 아이의 부모를 직접 만나 경찰 취재만으로는 알 수 없을 그들의 '사연'을 들어봐야 했다.
골목 입구의 식당 주인에게 다시 한번 도움을 받아 골목 안쪽 반지하방의 현관 앞에 섰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갓난 아기의 사진이 보였다. 피해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인 듯 했다. 사고를 당한 뒤 성폭력피해자들을 돕는 원스톱지원센터의 치료를 받은 아이와 부모는 이날 오후 집으로 돌아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간간이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내일 학교 끝나고 아빠 공장에 꼭 와. 엄마 공장은 재미 없잖아. 아빠 공장으로 와야 돼. 알겠지?" 아버지의 목소리도 놀랄 만큼 밝았다. 어머니가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라고 말해 봐"라고 말하자 아이는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몹쓸 일을 당한 뒤에도 웃음을 짓는 아이의 해맑음과 딸을 위해 안타까움을 억누르고 함께 웃음 짓는 부모의 심정이 가슴에 와 박혔다.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한 채 조용히 발길을 돌려 대문을 빠져나왔다. 고민 끝에 캡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을 방해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상황을 보고 받은 캡은 한동안 말 없이 한숨을 내쉬다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회사로 되돌아가면서 기자로서의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팍팍한 생활, 그들이 갖고 있는 사연들, 부모로서의 심정, 아이의 상태 등을 어떤 방법으로든 들어봐야 했던 건 아닐까. 한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는 이유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을 외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20일 전에 일어난 영등포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때도 담당 기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처음에 한 일간지의 '단독'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오기 전 몇몇 기자들이 같은 사건을 이미 취재했지만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이 사건을 맡고 있던 영등포경찰서에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보도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일간지가 보도를 강행했고 이 사건은 크게 이슈화돼 피해 어린이의 병실까지 기자들이 몰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 기자는 이 사건에 대한 첫 기사를 보고 '전형적인 못된 기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사건이 커진 뒤 주요 언론사들은 이 사건을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시켜 나갔다. 언론을 통해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의 원인과 이를 막기 위한 대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개방하는 문제부터 학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관리의 허점, 퇴직 교원이나 경찰 위주로 위촉하는 '배움터 지킴이'의 부실 운영 등이 지적됐다. 또 초등학교 주변 100m를 아동보호 절대구역으로 지정해 유해 환경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학교마다 수위실을 만들어 학교 안팎을 전문적으로 관리하자는 대안도 나왔다. 근본적으로는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위한 국가적 복지의 필요성과 성교육을 통한 성 인식 개선 등의 필요성도 논의됐다.
실제로 앞으로 어떤 점들이 바뀌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보도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들이 조금이나마 더 안전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피해 어린이에 대한 지원도 확대됐다. 수술비 등 금전적인 지원에서부터 심리치료, 병원에서의 교과 공부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지원이 이뤄졌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감수한 '보도 효과'였다.
27일 성폭행 피해자 가족들을 눈 앞에 두고도 취재를 접은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피해자의 집주소가 다른 언론사에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와 함께 피해자의 집에 몰려갔다. 그러나 피해 어린이와 부모는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때 벨을 누르고 들어가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지 못 한 것이 다시 한번 후회가 됐다.
그렇다면 또다시 같은 상황 앞에 서게 됐을 때 용기 있게 그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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