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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정말 드라마 속 경찰을 원하나

도깨비-1 2010. 7. 1. 10:33

[태평로] 정말 드라마 속 경찰을 원하나

   - 박은주/엔터테인먼트부장/조선일보/ 2010. 07. 01

 

   어느 신문사에서 컨설팅업체 조언을 받아 기자등급제를 실시하려고 했다. 기사와 특종 건수를 일일이 점수로 환산하는 게 핵심이었다. 그랬더니 '누구는 금테 둘러 좋은 기사 나오는 곳을 배정해주고, 왜 나를 물먹기는 쉽고 특종은 어려운 곳에 두느냐'는 항의가 빗발쳤고, 선배가 후배에게 좋은 기삿거리를 주는 일도 사라졌다고 한다.
   점수로 업적을 평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폼 나는 일, 궂은 일, 얼굴 붉힐 일이 섞여 있으며, 동료 간 협조가 필수적인 조직일수록 이런 점수제는 먹히기 힘들다. 험하기로는 신문사를 능가하는 경찰 조직에서 '점수식 평가'를 하는 건, 적잖은 문제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범인을 잘 잡아야 뛰어난 경찰'이라는 대원칙에 동의한다 해도 말이다. 살인범 잡으면 50점, 강간범 20점 식의 점수 배정이 범죄를 등급화해서 인식하는 경향을 낳게 했고, 사건 없는 경찰서마저 '범인 만들기'에 집착하는 문화를 가져왔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최근 '성과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며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의 주장을 간추리면 양천서 피의자 고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서울경찰청의 무리한 성과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찰관이 법을 집행함에 있어 얼마나 절차를 잘 준수하고, 얼마나 인권을 우선시했는가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탄했다. 말로서는 틀린 게 없다.
   그렇다면 이런 경찰은 어떤가. 민원인이 찾아오면 부드럽게 인사한 후 그의 말을 몇시간이나 들어주고, 삼촌처럼 너그럽게 피의자를 대하며 그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변명을 며칠이고 들어주는 경찰.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결코 길에서 경찰이 부른다고 죄지은 것도 없이 가슴이 철렁할 일도 없을 것이다.
   훌륭한 인격의 경찰과 경찰서를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이 사는 나라, 아름다운 나라다. 그런데 문제는 자고 나면 어린이가 성폭행당하고, 기이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사기사건이 일어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 인격에 감복해 "내가 범인"이라 자백할 피의자는 없으며, 국민에게 친절하면 승진할 세상에 굳이 '칼침'을 불사하고 살인범 잡고, 조직폭력배 때려잡겠다고 나설 경찰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굳이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드라마 속 배우처럼 멋진 양복 입은(그러나 범인을 놓치는) 경찰이 아니라, 점퍼 입고 촌스러워도 범인 잘 잡는 경찰을 택하고 싶다. 범죄 예방하는 경찰이 최상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할진대, 범인이라도 잘 잡아달란 것이다.
   채 서장은 '실적주의 같은 구조적 문제'를 거론했지만, '구조적 문제'라는 말처럼 개개인을 비겁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단어도 없다. 이런 식이면, 내 성격이 비뚤어진 것은 잘못된 교육구조에 따른 것이고, 양천서 고문 경찰이나 범죄자도 모두 왜곡된 구조의 희생자일 뿐이다.
   고문하는 인간말종을 '구조 탓'이라 규정하는 건, 성실하고 모범적인 '진짜 경찰들'에 대한 다른 방식의 모독이다. 경찰 내부적으로 성과주의에 대한 토론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몰라도, 국민으로선 이 주제를 두고 심각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 절차를 생략한 채, 경찰 간부가 운동권의 철 지난 구호인 '구조 탓'을 하고 있는 건, 왜일까. 떠도는 말처럼, 경찰이 범인 잡는 조직이 아니라 '정치싸움 하는 조직'이 되어버린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