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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지성은 '군인'이 아니다

도깨비-1 2010. 6. 29. 11:58
뉴스: 박지성은 '군인'이 아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2010.06.2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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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오마이뉴스 김행수 기자]






26일(한국시간) 오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우루과이의 경기에서 이청용이 동점골을 성공하며 박주영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뉴시스


정말 잘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지난 토요일 우루과이전뿐만 아니라 그 전의 세 경기 모두 그들은 잘하고 열심히 했다. 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끝나고 차두리 선수가 경기장에 드러누워 눈물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모습은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경기 후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만큼 감동적이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지난 3주 동안 많은 국민들이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물론 왜 드라마 안 하냐고 싫다는 국민들도 있었고, 밤 늦게 차 막힌다고 짜증내는 운전자도 있었다. 그런데 월드컵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 모두 우리 국민들이니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월드컵 관련 딱 하나 유감인 것이 있다. 축구를 스포츠 보도가 아니라 전쟁으로 비유하는 언론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원정 16강, 태극 전사, 게르만 전차부대... 난무하는 전쟁 용어

우리나라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원정 16강'에 들었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들어갔으니 최초의 16강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에 든 것이 처음이라는 의미이다. 그 의미를 결코 깎아내리거나 선수들의 피땀을 과소평가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정 16강'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원정(遠征)이라는 말은 원래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로 '먼 곳으로 정복하러(싸우러)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군사용어로, 지금은 의미가 확대되어 스포츠에서도 쓰이고 있다. 영어로는 'military expedition'으로 쓰고 'Napoeon's expedition to Russia(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등의 예로 사용된다. 이에 반해 운동 경기에서 원정 경기는 'Away match(game)'이라고 쓰고 자기 연고지는 'Home'이라고 한다. 영어의 Home이나 Away라는 용어 어디에도 정복이라는 군사적 의미는 없고, 그냥 멀고 가깝다는 중립적인 지리상의 개념뿐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예외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원정 16강'이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먼 나라를 정복하러 가지 않았고, 전쟁하러 간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축구하러 갔을 뿐이다.

'태극 전사'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지성을 비롯한 우리 선수들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전사'는 아니다. 전사(戰士) 역시 군대 용어로 영어로는 'warrior' 또는 'combatant'로 번역될 것이다. 그런데 축구에서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영어로 'warrior'나 'combatant'로 쓰지 않고, 그냥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player'라고 쓴다. 그들이 축구를 하는 공간 역시 운동장(playground)라고 하지 전장(battlefield)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표팀을 허정무 '사단'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사단장이고, 선수들은 모두 군인이 되는 셈이다. 누가 들으면 우리나라 운동 선수들은 모두 군인인 줄 알겠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 군인은 수비형 미드필드인 김정우 선수밖에 없다. 왜 우리 언론들은 우리 축구 선수들을 '전사'라는 살벌한 표현으로 부를까? 우리 선수들이 불굴의 군인정신을 발휘해 더 열심히 뛰어 다니기를 바라는 것인가?

축구가 전쟁이라면 프랑스 대표 선수들은 하극상?





23일 새벽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국과 나이지리아와의 거리응원에서 한국 대표팀이 나이지리아와 비기며 사상 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붉은악마들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 축구팀들을 지칭할 때도 마찬가지다. 독일 대표팀은 게르만 전차 부대, 이탈리아는 아주리 군단, 네덜란드는 오렌지 군단, 브라질은 삼바 군단, 스페인은 무적 함대, 잉글랜드는 축구종가 3사자군단, 프랑스는 레블레군단 등으로 부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군대 단위를 갖다 붙인다. 참 우스운 것은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다는 점이다.

색깔로 별명을 붙이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나라들도 뒤에 붙은 '군단'이라는 부대 이름은 우리나라 언론들이 붙인 것이다. 그들 팀을 군대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그들 선수들이 스스로 군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역시 거의 없다. 축구를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명명법이고, 독특한 사고 방식이다.

군인이라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이고, 전쟁이라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승부이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축구이고 스포츠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그들을 전사라고 하고, 축구팀을 군대에 비유하고, 축구를 전쟁이라고 표현한다고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이 더 열심히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축구가 전쟁이라면 프랑스 선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랑스는 지난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감독과의 불화, 선수들간의 불협화음으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예선 탈락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프랑스 선수들 중 일부가 감독에게 대들었나 보다. 군대로 치면 부하가 상관에게 하극상을 한 것이고, 사병이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정말로 군대였으면 당장 영창에 보내질 일이고, 전쟁이었다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당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축구는 전쟁이 아니고, 축구 선수는 군인이 아니니까.

요즈음은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끼리 유니폼을 바꾸어 입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우루과이와의 16강전이 끝나고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 슬퍼하는 분위기라서 우루과이 선수들이 유니폼을 바꾸어 입자는 말을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유니폼을 바꾸어 입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선수는 박지성 선수를 제외하고 거의 없었다. 그 동안 흘린 피땀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솟구치는 아쉬움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우리 국민들이 그들을 전사로 부르면서 오히려 그들을 패잔병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결코 패잔병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남측은 왜 북측과의 축구경기를 거부했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축구를 좋아하는 잉글랜드나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민들도 승부에 집착하고 자기 팀 선수들이 더 잘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지는 않는다. 강팀들끼리의 축구 시합을 빅 게임 또는 빅 매치(big game, big match)라고 하지 우리처럼 대전(大戰)이라고 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특히 한일(韓日) 경기는 언제나 전쟁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도쿄에 가서 이기면 '도쿄대첩'이라고 하고 '열도정벌'이라고 한다. 승리를 기뻐하는 거야 자유이고 권리이지만 상대팀과 국민을 '패잔병' 취급하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운동경기의 승패 때문에 그 나라 전체, 그 국민 전체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다. 2002 동계올림픽에서의 오노 선수 플레이 때문에 확산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반감이고, 2008년 하계올림픽 핸드볼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오심 논란 끝에 한골 차 패배 때문에 생긴 적개심이 대표적이다. 당시 노르웨이 팀은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교실에서 학생들은 노르웨이를 나쁜 나라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굳이 민족주의니 국수주의니 하는 거창한 이념을 갖다대지 않더라도 축구를 국가 간의 전쟁으로 보는 것의 부정적인 면은 볼 수 있다. '북'이 '남'보다 축구를 잘하던 군사정권 시절엔 남이 '체제 대결'이라는 '전쟁(축구경기)'에서 지는 것이 두려워 남북 경기 출전을 거부해 벌금을 물기도 했다. 또 중앙정보부 산하에 군대처럼 관리되는 축구팀(이름이 '양지'란다)을 운영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갖고 있고,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면서 축구까지 전쟁이길 강요한 것이 우리 현대사, 아니 축구사의 아이러니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게 축구를 전쟁에 비유하고 축구 선수를 태극전사가 되기를 강요하면서 우리 마음 속에 북이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주입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스포츠에 드리운 전쟁의 또 다른 그림자 '병역 면제' 논란





격년으로 '한일전' 홍역을 앓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


ⓒ WBC 홈페이지


고대 전쟁에서 전사들은 이기면 전리품을 챙겼고 패하면 죽거나 노예가 됐다. 전쟁에 이겨서 받는 보상 중에 병역 단축이나 조기 전역도 있다. 우리나라는 마치 전쟁에서 이긴 병사에게 조기 전역을 시키듯 스포츠에서 이긴 선수에게 병역 면제라는 특혜를 주어왔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에 드리워진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병역 특례 논란이다.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병역 면제 시켜주는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 스포츠문화 전문가인 동아대 정희준 교수는 우리 선수들이 열악한 국내 환경에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제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가장 큰 이유가 병역 면제라고 주장한다. 물론 운동선수에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지겠지만 병역 면제가 중요한 동인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16강에 들자마자 바로 그들의 병역 면제가 추진됐다. WBC 야구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들자 똑같은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대한축구협회는 병역 면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운동선수들이 모두 전사가 되기를 요구하면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 전사가 되는 의무를 면제 시켜주는, 참으로 우습고도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축구 선수가 전사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논리로 병역을 면제 시켜주는 것에 반대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큰 활약을 한 이청용 선수는 아예 중학교를 중퇴해 군대에 가지 않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박지성 선수 역시 2002년 월드컵으로 병역을 면제받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했다는 주장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에 공헌을 한 것으로 따지면 모두가 꺼리는 농사 짓는 젊은이들의 그것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앞으로는 아이 2명 이상 낳으면 애국했다고 병역 면제 시켜 주겠다는 말도 나올 판이다.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에게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병역 면제는 그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병역과 관련해 혜택을 주고 싶다면, 가장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할 나이에 군대를 가는 것이 손실이라고 한다면, 군대 가는 시기를 늦추어 주면 된다. 그리고 군대에 가서도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예를 들어서 20대에는 축구를 하다가 30대쯤에 은퇴하면 그 때에 군대에 가면 된다. 군대에 가서 총 쏘고 땅 파는 것이 아니라 유소년 클럽팀 지도자를 하거나 사회축구팀 코치를 맡으면 된다. 이른바 대체복무이다. 그래서 동네마다 꼬마들과 사회인들도 축구를 할 수 있게 하자. 젊었을 때에는 병역을 유예 받아 열심히 축구를 하고, 나중에는 총 대신 축구공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니 개인이나 국가, 사회에 결코 손해될 것이 없다.

축구는 전쟁이 아닌 스포츠, 그들은 전사가 아니라 선수

이제 축구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걷어낼 때가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스포츠에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낼 때도 된 것 같다. 축구는 스포츠지 전쟁이 아니다. 그래서 한일 축구 시합에서 졌다고 현해탄(대한해협)에 빠져 죽을 이유도 없고, 남북 축구 경기에서 졌다고 아오지 탄광에 갈 일도 없고 삼팔선에 목 멜 이유도 없다.

스포츠(sport)는 라틴어의 'Disportsre'로부터 유래된 'Disport'가 어원인데, 그것이 19세기에 들어와서 분리를 의미하는 'Di'가 없어져서 오늘날 사용되는 'Sport'가 되었다고 한다. 즉, 스포츠의 원래 의미는 "to carry away" 또는 "leave off the work"로 '일상의 일로부터 떠나다, 일로부터 해방되다'의 의미이며, 필연적으로 놀이와 즐거움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어에서 'play soccer'는 있어도 'fight (with) soccer'는 없다. 경기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game'이나 'match'도 전쟁과는 상관없는 놀이 또는 시합을 의미한다. 축구 선수를 전사(싸우는 사람, warrior)가 아니라 노는 사람(player)라고 하는 이유 역시 이와 같다.

최선을 다해 뛴 우리 선수들은 국민들에게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을 갖다주는 전사 대신 스스로 즐겁고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선수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축구를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국가대표를 꿈꾸며 공을 차는 우리의 어린 선수들이 축구를 성적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할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구타도 용서되고, 비인간적 학대도 넘어가고, 반칙도 용납되던 관행을 완전히 끝내야 한다. 그래야 2등을 하고도 땅바닥에 엎드려 우는 학생 선수들에게 눈물 대신 웃음을 찾아줄 수 있다.

비슷한 의미에서 나는 우리나라 축구계의 불세출의 영웅들인 차범근 선수와 홍명보 선수가 축구 선수들도 공부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그 학생들도 커서 전사가 아니라 운동선수가 되거나 평범한 시민이 될 가능성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운동 선수도 학생이고, 커서는 운동선수이자 대한민국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 주장이 나오기까지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렸다.

축구는 전쟁이 아니라 스포츠이고, 그들은 전사가 아니라 선수들이다. 한일 경기이든 남북 경기이든 그 자체로 즐거운 축제고, 이기면 더 재미있는 놀이이면 좋겠다. 이제 우리가 그들과 그들의 후배들이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축구를 할 수 있게 해 주자. 언론과 정치인들부터 나서서 그들을 통하여 애국으로 포장하지 말고, 그들에게 전사가 될 것을 강요하지 말자. 그것이 인간에 대한, 그들의 피눈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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