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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했지만 우리 희생은 가치 있었다"

도깨비-1 2010. 6. 2. 11:22

 


"처절했지만 우리 희생은 가치 있었다"

6·25 참전 미군이 만든 다큐멘터리 시사회… 곳곳서 눈시울 적셔
"지금 모두가 누리는 자유 공짜가 아님을 알았으면" 곧 TV로도 방영될 예정
       - 조선일보/2010.06.02

 

 

   90분에 걸친 6·25전쟁 다큐멘터리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졌지만 200여명의 관람객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57년 전의 처참한 전투 현장을 회고하던 6·25 전쟁 참전용사들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남편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투를 다큐멘터리로 '간접 경험'한 가족들의 손에는 눈물을 닦은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미국의 현충일인 31일 워싱턴 DC의 케네디센터에서는 '기필코 고지를 사수하라(Hold at all costs)' 시사회가 열렸다. 이 다큐멘터리는 6·25 전쟁 휴전을 앞두고 1953년 6월 강원도 김화·철원·평강의 '철의 삼각지대'에서 8일간 벌어졌던 미군과 중공군 간의 치열한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밥 베이커(Baker) 상병 등 이 지역의 '해리 전초기지(Outpost Harry)'에 배치된 미 3사단 15보병연대 K중대 200여명의 장병은 간략하면서도 단호한 지시를 받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지를 사수(死守)하라." 이 지역이 함락되면 수도권이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2만발의 포탄이 쏟아진 끝에 양측에서 수백명이 사망했고, 미군은 임무 완수에 성공했다.
   당시 베이커 상병은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여기서 본 전우들의 영웅적 모습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기도했다. 이후 베이커 상병은 캘리포니아에서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고, 이 약속을 지키려고 수백만달러를 들여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베이커씨는 시사회장에서 기자와 만나 "당시 어떤 희생을 치러가며 해리 OP를 지켰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6·25 당시의 영상물 그리고 참전 한국군·미군·중공군·그리스군 인터뷰를 통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준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시신, 대포가 불을 뿜는 현장, 10대 후반의 어린 미군이 경계 근무를 서는 모습….
   6·25 당시 육군 중위로 참전했던 뉴트 깅리치(Gingrich) 전 하원 의장이 이 다큐멘터리에 해설자로 등장한다. 그는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 가려져 미국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독재자"라고 칭하며 전쟁을 일으킨 북한을 비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남북한의 현재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주며 미군의 희생이 결코 가치 없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정운찬 국무총리는 "한국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던 전쟁의 잿더미에서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백선엽 전 예비역 대장은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국가가 됐다"고 했다.
   이날 시사회에 '용기(courage), 불굴(tenacity), 신념(faith)'이 쓰인 '해리 OP 모임' 모자를 쓰고 참석한 제임스 자보(Jarboe)씨는 감회에 젖었다. "당시 중공군이 주로 밤에 공격해온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는 그는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서 우리들의 희생이 값진 것이었음을 느낀다"고 했다.
   시사회가 끝난 후 깅리치 전 의장은 백선엽 장군과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한국이 해군 함정(천안함) 침몰로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앞으로도 미국은 계속해서 한국을 지원하고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조만간 미국에서 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또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참전 16개국에서 방송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