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한경대 초빙교수 /2010년 5월 26일 조선일보
어느 강연에서 천안함 조사결과를 비판한 도올 김용옥 교수의 발언(25일자 A12면)은 우리 시대의 한 지식인이 평생을 지켜온 자신의 신념까지 저버린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건이다. "조사결과가 0.00001%도 설득되지 않는다. 북한에 그 정도 기술이 있느냐. 모든 정보가 통제된 상태의 조사결과를 어떻게 믿느냐. 왜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일이 발생하느냐. 사건 발표 때 패잔병들이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국민에게 겁주느냐.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선 (강연, 이야기할) 기회가 끊겼다" 등의 발언은 철학자가 아니라 삭발한 운동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우선 그는 천안함 사건에 관한 한 기술적인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노자와 21세기'를 비판한 '노자를 웃긴 남자'란 책에 대해 바둑 고단자가 초급이 하는 말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비전문가가 무슨 계산법으로 0.00001%며 북한의 기술을 운운하는가. '도올논어'라는 방송 강의에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이 바로 앎이니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도올은 자신이 쓴 책들이 어떤 자료에 의존한 것인지 보여 달라는 정보공개를 요구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건발표에 대한 논리적 반박 대신 웬 정보공개 타령인가. "왜 선거 때만 되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와 "왜 입시 때만 되면 날씨가 추운가"는 논리적으로 무슨 차이인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공격을 받은 후 의회에 단호하게 대일 선전포고를 요청했을 때 누구도 그에게 당당한 패잔병이라고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언어사용의 엄격성을 주장하는 그가 '당당함'과 '단호함'도 구분하지 못하는가. 논리적·합리적·상식적 의사소통을 강조하면서 폭력을 단호히 거부한 그가 철학자로서 평생 지켜온 신념을 저버리고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또 뭔가?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어떠한 지적인 영향력에도 구애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정책집행자들은 실은 어느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라고 했다. 도올은 죽은 이데올로기의 노예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현 정권 이래 강의가 끊긴 생계형 피해자이기 때문인가.
이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순수하지 못한 동기를 고백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필자는 제3기 도올철학강의를 졸업하고 도올의 책을 친지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열성팬이다 보니 그의 천안함 발언 이후 생계형 교수인 필자의 연구프로젝트 진행이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이 글로써 그 비판에서 벗어나고 싶다. 도올 김용옥 교수도 죽은 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전처럼 동양철학의 스타 강사로서 생계형 피해에서도 벗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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