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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차이나스토리] (5) 지시엔린(季羨林)과 석림(石林)

도깨비-1 2009. 8. 5. 15:55

 

입력 : 2009.07.13 09:12

몇 차례 쿤밍에 왔지만 매번 석림에 간다 간다하고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그려 보았다.

상상하건대, 석림은 열대 선인장 같을 것이다. 하나 하나 높게 솟아올라 푸른 창공을 찌를 듯 할 것이다.

상상하건대, 석림은 나무가 돌로 변했을 것이다. 한 그루가 아닌 천 그루 만 그루 무성할 것이다.

또 상상하건대, 석림은 커다란 '태호석(太湖石)'일 것이다. 삐죽 뾰족한 바위들이 가득한 멋진 화원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내 두 눈으로 직접 석림을 둘러보니 상상보다 훨씬 더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석림에 들어서니 마치 마술사가 깊은 땅 속에서 주어 올린 듯한 수십 수백 장(丈)에 달하는 청회색(靑灰色) 바위들이 얽히고 설켜 큼지막한 미궁(迷宮)을 만들었다. 미궁 속에는 천문 만호(千門萬戶)가 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곡간(曲澗)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유동(幽洞)이 있었다.

먼 옛날, 아방궁(阿房宮)으로 들어온 듯 하다.

다섯 걸음에 루(樓)가 하나요, 열 걸음마다 각(閣)이 하나로다. 회랑은 굽이 돌고, 첨아(?牙)는 날카롭네. 꼬불꼬불 작은 길 따라 음암기구(陰暗崎嶇)로다.

길을 잃었더니 오히려 석벽이 에워싼 탁 트인 공간과 맑은 샘이라. 기암괴석 드리워진 샘물 은 선경(仙境)처럼 황홀하다. 제 길로 들어서니 곳곳의 동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어지러워도 결국 병풍처럼 늘어선 석벽에 다다른다.

우왕좌왕, 오르락 내리락, 이리 돌고 저리 돌아도 얼마나 멀어졌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잠시 멈춰 서서 둘러보면 '팔진도(八陳圖)'에 빠진 듯 하여 긴장하고, 흥분하기 마련이다.

지시엔린(季羨林) 전 베이징대 교수가 쓴 기행문 '석림송(石林頌)은 일부다.

중국 학술계의 '큰 어른' 지시엔린이 지난 11일 향년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산둥(山東)성 린칭(臨淸)시 출신으로 고문자학자요, 역사학자요, 동방학자요, 사상가요, 번역가요, 불교학자이자 작가로서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고향의 명산 '태산'과 쿤밍의 비경 '석림'을 다녀온 뒤 써내려간 기행문 '태산송(太山頌)'과 '석림송'이 다시금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학자의 자연 사랑을 되새기게 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석림송'은 시를 쓰듯이 군데군데 대구를 활용하며 음율을 맞추고, 다채로운 비유로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때론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들을 떠올리며 아폴로와 비너스와 비교하거나 올림픽 신전 위에서 바라보는 수많은 신들의 형상을 떠올렸다.

고대 로마와 인도까지 상상의 나래를 폈다. 돌 기둥을 바라보며 로마의 대극장과 남인도 바닷가의 거대한 돌덩이로 만든 바라문(婆羅門)교의 묘지를 생각했다.

1911년 8월6일생인 지시엔린은 칭화(淸華)대학 서양문학계열을 졸업한 뒤 1935년 교환 연구생으로 독일로 떠나 조지 아우구스트 대학 게팅겐(Geog-August University Geottingen)에서 산스크리트어와 파리(Pali)어, 토차리안(Tocharian, 20세기 신장에서 발굴된 문헌에 쓰여 있는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하나) 등 고대 인도와 중앙 아시아계 언어를 공부했다.

독일에서 발표한 논문은 국제적으로 학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 후 1946년 베이징대학의 교수로 돌아와 동양학과 인도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자리 잡았다.

'석림송'에는 지시엔린의 풍부한 학식은 물론 자연 사랑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위 하나 하나를 야생 동물의 작은 움직임으로 빗대 표현하는가 하면, 그 야생 동물이 꽃으로 환생하는 '윤회'의 상상력까지 발휘한다. 윈난의 귀한 차 꽃과 모란, 부용화, 연꽃 등의 형상과 색깔을 석림의 돌에다 갈아 입혔다.

중국인들에게 '인정 많은 할아버지'로 인식된 원자바오 총리는 지시엔린의 서거 소식을 듣자 "8월6일 선생님의 생신을 어떻게 축하해야 할지 몇 가지 상의를 드리려 했는데..."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원자바오 총리는 2003년 9월9일부터 지난해 8월2일까지 다섯 번이나 베이징 301병원을 방문하는 등 지시엔린 교수에게 남다른 관심과 존경을 보일 정도였다.

분향소가 마련된 베이징 대학에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와 시진펑 부총리를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제자와 일반인들도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지시엔린은 '석림송'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석림은 능히 화가의 붓을 멈추게 하고, 가수를 침묵하게 하고, 시인을 읊조리지 못하게 한다. 나는 화가가 아니고, 가수도 아니고, 또한 시인이 아니다. 단지 이렇듯 조악한 몇 개의 문자로 나의 송가(頌歌)를 부를 뿐이다.

석림은 예술가의 혼과 숨소리까지 멈추게 할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그 앞에서 '국보'라 불리는 지시엔린은 더없이 낮은 자세로 자연을 노래했다.

윈난(雲南)성의 성도 쿤밍(昆明)은 '상춘(常春)의 도시'다.

대륙의 남쪽, 고원지대인 탓에 늘 봄날처럼 온화하다. 꽃이 많고, 바람이 선선하다. 푸얼차(普耳茶)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의 태릉 선수촌과 비슷한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장인 국가체육기지도 있다.

쿤밍에서 남쪽으로 약 86km 쯤 떨어진 곳, 소수민족인 이족(?族) 자치현 안에 '천하제일기관(天下第一奇觀)'이라 불리는 석림이 있다.

석림은 대ㆍ소 석림(大ㆍ小 石林), 고석림(古石林), 대첩수(大疊水), 장호(長湖), 월호(月湖), 지운동(芝雲洞), 기풍동(奇風洞) 등 7개의 풍경구로 이뤄졌다. 윈난, 구이저우, 광시, 광둥, 푸지엔, 쓰촨 등에서 나타나는 카르스트 지형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객원기자 www.chin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