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전용호 기자]
화엄사로 가는 길 구례구역을 뒤로하고 섬진강 다리를 건너면 구례다. 예(禮)를 구(求)하는 곳. 구례군에서는 '자연으로 가는 길'이라는 상징 문구를 달았다. 콩글리쉬 일색인 다른 시군의 상징문구 보다 훨씬 정감이 넘친다.
오늘 찾아갈 곳은 천년고찰 화엄사를 품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자락이다. 지리산 횡단도로가 1988년 개통되기 전에는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화엄사 계곡으로 올라서야 했다. 지금은 성삼재까지 차로 쉽게 올라가다보니 지리산 종주 기점도 성삼재로 바뀌었다. 오늘은 옛 산사람들이 무수히 오르내렸을 화엄사계곡을 따라 노고단까지 올라가 보련다.
화엄사 매표소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낸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고서 한동안 문화재관람료로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산에 가는데 왜 문화재관람료를 내야 하냐고. 하지만 최근에 문화재관람료 징수가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등산로가 사찰 소유지를 지나가면 문화재관람료를 내야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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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화엄사 계곡으로 노고단 가는 길. 노고단까지 7km, 천왕봉까지는 32.5km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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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주차료를 내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할런지. 주차를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은 화엄사와 남악사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남악사 앞 돌담에는 잠자리가 밤새 얼었던 체온을 회복하려는지 꼬리를 하늘로 들고서 요가를 하고 있다. 이정표에는 노고단 7㎞라고 알려준다.
바위 아래로 흘러나오는 자연의 맛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계곡너머로 화엄사 일주문이 보인다. 산길은 한 아름 정도의 돌들로 바닥을 정리해 놓았다. 두세 사람 걷기에 적당한 넓이다. 시원한 대숲을 지나간다. 물소리는 한여름 무더위만큼 크고 힘차게 흘러내린다.
시원한 물소리를 벗 삼아 걸어간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길은 온몸을 땀으로 적신다. 작은 다리를 지난다. 다리 아래로 내려서서 물을 만지고 얼굴을 적신다. 시원하다. 군데군데 쉼터가 있지만 사람이 앉았던 흔적이 오래되었다. 2㎞정도 걸었나. 연기암 입구다. 연기암을 들러볼까 고민하다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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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계곡 숲길. 산능선을 올라서기까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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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더욱 깊어졌다. 사람 키를 몇 배나 넘어선 커다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나무가 너무 커서 햇빛이 들어오지도 못한다. 걸어가는 사람이 마냥 작게만 보인다. 바위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참샘을 만난다. 목을 축인다. 시원한 물맛. 자연의 맛이라는 느낌이 머리를 감싸고 녹아든다. 이정표에는 노고단 4.5㎞ 남았다고 알려준다.
코가 땅에 닿는다는 코재 산길은 돌길이다. 그래도 국립공원답게 잘 다듬어 놓았다. 이 많은 돌들을 일일이 정비하고 깔아놓은 정성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햇볕이 살짝 들어오는 국수등에서 사과를 쪼개먹고 산길을 재촉한다. 노고단 까지 가려면 온 만큼을 가야한다. 길은 점점 가파르게 올라간다.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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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선대 폭포가 여러갈래로 내린다. 그 옆으로 산길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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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폭포가 여러 갈래로 내리는 집선대에서 점심을 먹는다. 애들과 함께한 산행이라 올라가는 시간이 더디다. 경사는 더욱 급해지고, 하늘이 보이지 않은 돌계단 길은 여전히 끝날 것 같지 않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힘들다고 하여 코재라 했다나. 눈썹바위에 잠시 앉았다가 바로 올라서니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도로와 만난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몇 시간을 걷다가 환한 도로로 나오니 세상이 밝아진 기분이다. 하지만 다 온 게 아니다. 노고단정상까지는 아직도 1.3㎞를 더 가야 한다. 저 멀리 노고단 정상 돌탑이 햇살을 가득 받고서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노고단은 산신할머니는 모시는 곳 도로로 올라서자 길 옆으로 물이 흐른다. 무넹기다. 무넹기는 '물을 넘긴다'는 뜻으로, 해발 1300m에 만들어 놓은 인공 수로다. 1930년에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화엄사 아래에 만든 저수지로 채우기 위해 물길을 바꿔 놓았다. 물이 능선을 넘어서 흘러간다. 스스로 흘러가야할 길이 바뀐 줄도 모른 채. 무넹기에서 땀을 씻어낸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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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넹기. 물길을 바꿔 놓은 수로. 물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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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도로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친구끼리 해발 1000m가 훌쩍 넘은 도로를 도란도란 걸어가고 있다.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고 있다. 목을 축이고 다시 산길을 오른다. 길옆으로 분홍색 큰이질풀과 주황색
동자꽃이 나무 난간 사이로 활짝 웃고 있다.
숲길은 경사가 가팔라서 힘들더니 노고재로 오르는 길은 뜨거운 햇살에 힘들다. 노고재에 올라서니 애들이 예전에 왔던 기억이 나는가 보다. 그 때는 노고단 정상이 개방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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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단 정상 가는 길. 정상에 삼각형 돌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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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길상봉)은 해발 1507m로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老姑)를 모시는 곳(단-檀)이라 하여 노고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꽃들이 흐드러진 하늘정원 노고단 정상까지 시원하게 이어진 나무판 길을 올라선다. 예전에는 훼손이 심했는데 복원과정을 거쳐 일시 개방을 하고 있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하늘정원. 그 위로 노고단까지 나무판으로 깔린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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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고단 하늘정원으로 이어진 나무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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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에 핀 산꽃들. 큰 사진부터 범꼬리, 원추리, 큰이질풀, 동자꽃, 곰취, 산꼬리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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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원추리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연한 노란색은 수줍은 아가씨마냥 싱그럽다. 산 능선으로 이어진 길은 마치 하늘과 맞닿아 걸어간다. 하늘을 배경으로 사뿐사뿐 걷는 걸음에는 신이 났다. 범꼬리, 곰취, 큰이질풀들도 지천으로 피어 서로 세력다툼을 하는 듯하다.
정상에 오를 즈음 짙은 안개가 산정을 감싼다. 노고단 정상이다. 돌탑에 서서 기도를 하는 분도 있고, 사진을 담으려고 열심인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 난간에 기대어 앉아 하얀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산자락을 타고 저 멀리 흘러간다. 안갯속에서 원추리는 말이 없이 사람 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정원에서는 사람도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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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노고단 정상 나무 난간에 앉아서 마음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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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와 원추리에 쌓인 노고단. 하늘정원에서는 사람도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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