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스크랩] 링컨이 만난 노무현(盧武鉉)

도깨비-1 2006. 8. 16. 13:15

‘링컨이 만난 노무현(盧武鉉)’ ①
결단과 포용, 강력한 정책수행 능력발휘 배워야
 / 김인수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오는 25일로 임기 3년 6개월을 넘긴다. 앞으로 1년 반이 남았다. 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정확히 4년1개월10일을 재직하고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졌지만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이제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 6개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FTA 체결 반대 등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고, 양극화와 진보 보수의 갈등이 난마처럼 얽힌 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링컨과의 만남을 통해 해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대통령은 대통령 경선출마 6개월을 앞두고 2001년 11월 30일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제목의 302페이지짜리 책 한권을 서둘러 출간했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링컨에 대한 숙제를 풀고 싶었다. 올해 봄을 넘기면서 초고가 완성됐다. 가을이 되자 그 글을 더 이상 묵혀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이 남북과 동서로 분열되어 쟁투가 끊이지 않는 오늘의 이 시대는 링컨이 직면했던 시대와도 유사하지 않은가. 링컨은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는 성경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내가 ‘동서간의 지역통합이 없이는 개혁도, 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통합의 문을 통과해야만 개혁도, 발전도 가능하다’고 한 주장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길 바란다. 이 책은 나의 관점을 링컨의 삶에 투사한 것”이라고 적었다.
  
   노 대통령은 책 표지에 “강력한 지도력은 강권적 지도력이 아니라 대중의 신뢰와 민주적 절차에 뿌리박은 통합의 지도력이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인 지도력이 통합의 지도력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력만이 남북분단, 지역갈등, 계층대립이 만연한 우리사회의 심각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다. 이는 링컨에게서 그 전형을 발견한다.”고 썼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초심이 링컨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있으며, 링컨을 통해 노 대통령이 무엇을 배워야할지 오늘은 세 가지 관점에서 짚어보자.
  
   ‘독재자, 폭군’ ‘계륵 대통령’ ‘약탈정부’ 온갖 수모 이겨내야
  
   첫째, 대통령 자질과 재임기간 동안 평가문제이다.
  
   노 대통령은 책에서 “역사적 인물 링컨에 대해 미국인들은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링컨이 대통령에 있던 당시 언론은 종종 링컨을 ‘독재자, 폭군’ 등으로 불렀다. 링컨의 고향 일리노이주에서 발행되던 신문조차도 그를 ‘미국의 공직을 불명예스럽게 만든, 가장 간계하고 가장 정직하지 못한 정치가’로 욕했다. 이러한 비난 섞인 평가는 물론 링컨의 반대자들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아무튼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결코 호의적인 것이 못되었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국민의,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이정표로 불리는 불멸의 게티즈버그 연설조차 당시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다. 수어드 국무장관은 “나는 링컨이 저렇게 연설할 줄은 몰랐다. 나는 대단히 실망했다”고 말했다. 하리스 신문은 “링컨의 연설과 같이 우둔하고 평범한 말은 다시없을 것이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시카고 트리뷴지가 처음으로 링컨에게 유익한 기사라고 발표했고,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칸, 매사추세츠지가 잇따라 그의 연설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도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연설문을 잘 읽어보라. 이 연설은 모범적인 연설로서 배울 가치가 있다. 강력한 감정과 풍부한 지성은 이 연설의 어머니이며, 근실성(勤實性)은 이연설의 조산부(助産婦)이다.”
  
   지금 노대통령이 일부 언론으로부터 ‘계륵(鷄肋)대통령’으로 불리고 있고, 참여정부를 ‘약탈정부’로 명명했다. ‘도둑정치’라는 표현도 썼다. 어떤 언론은 칼럼을 통해 출처불명의 유치한 농담을 전하면서 국가원수를 ‘저잣거리 안주’로 폄훼했다.
  
   그는 야당으로부터는 “등신외교”니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험담도 들었다.
  
   링컨도 남북전쟁을 수행하면서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다 겪어야 했다. 하루는 수어드 국무장관, 존헤이 백악관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맥클렐란 육군총사령관을 찾아갔으나 집에 없어 1시간을 기다렸다. 대통령이 자기를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서도 맥클렐란은 2층으로 올라가 잠자리에 들었다. 링컨은 30분을 더 기다리다가 침실로 갔다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는 국무장관에게 “지금 예절이나 위신을 따질 때가 아니오”라고 말하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멕클렐란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허약하고 어리석고 부적당한 것을 볼 때 내 마음은 답답하다”며 “무능한 정부에 진저리가 났다”고 함부로 말을 내뱉는 등 정치인들을 경멸했고, 각료들을 ‘거위 떼’라고 우롱하기도 했다고 노 대통령은 썼다.
  
   노 대통령은 “링컨은 그런 무례함을 인내했다”며 “그러나 사실은 링컨에게는 당시 멕클렐란을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힘이 없었다”고 기술했다. 그런 멕클렐란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 링컨 재선에 가장 큰 위협을 주어 한때 재선이 불가능했으나 남북전쟁에서 극적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재선에 성공했다. 링컨은 당시 재선을 사실상 포기하기도 했다.
  
   링컨은 1663년 3월3일 전국에 걸쳐 징병제 실시를 발표하자 뉴욕, 보스턴, 트로이, 뉴어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뉴욕에서는 1,000명이 사망하고 군중들이 시가지를 점령하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자 미드장군과 웨스트포인트 사관생도들이 경찰을 지원, 겨우 진압했다. 국민들은 전쟁에 진절머리를 냈다.
  
   지금 노 대통령은 역대 국방장관들과 주요 장성들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항이기 때문에 국회동의나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만약 작통권 환수를 강행하면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또 한미 FTA 체결과 관련 정운찬 회장(전 서울대 총장) 등 경제학회 전문가들로부터 “미국이라는 너무 큰 강대국을 협상상대로 삼았다”며 “미국이 국익에는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므로 협상중단 내지 협상을 서두르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나 한미FTA 문제 등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링컨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노 대통령이 명심해야할 점은 부적절한 발언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막가자는 거지요.” “내가 대통령인데...”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정언유착의 조폭문화” “‘뻑’하면 진보는 좌파고, 빨갱이라는 것은 사회진보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약육강식에 가깝다. 별놈의 보수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고, 진보는 사회를 이루는 한 연대로서 더불어 살자이다. 가급적 바꾸지 말자가 보수고, 고쳐가며 살자가 진보다”“공산당 활동을 허용해야 민주주의가 완성될 것”“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2009년 이전도 좋다”는 등이다.
  
   링컨은 4년 임기내내 남북전쟁을 치르며 자신이 가장 귀여워했던 아들을 잃고 참으로 암담한 시절을 보내면서도 부적절한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용어사용에 항상 신중을 기했다. 자신을 고릴라, 시골뜨기라고 인격적으로 무시했지만 결코 여기에 동요하지 않았다. 게티즈버그 연설에는 5분 연설을 위해 며칠이고 수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진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신중치 못한 부적절한 말들로 연설 때마다 아슬아슬해 대통령의 무게를 떨어뜨리고 말을 자주 바꾸어 정상적인 대통령직 수행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관용으로 미국 하나로 통합, 반란자 배반자부터 특사 단행
  
   둘째, 국민통합이다. 링컨이 위대한 것은 남북전쟁을 이겼을 뿐 아니라 여러 군데로 분열할 번한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켰다는 점이다.
  
   링컨은 국민통합의 절대명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관용이라고 판단했다. “나는 자비가 엄격한 정의보다 풍성한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링컨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도 관용을 통한 국민통합 방침을 철회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았다”며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국민의 마음속에 각인하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통합을 통한 국가 재건만이 미국의 미래를 약속한다는 사실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통합당 후보로 대통령에 재선된 링컨은 취임사에서 남부의 분리주의자를 응징하자고 하지 않았고 남북전쟁을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대결로 보지 않았다”며 “그는 차원 높은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화해와 관용으로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해결하자고 촉구했다”고 했다.
  
   노대통령은 “그는 적이라거나 타도 등의 대결용어를 쓰지 않았다. 남과 북의 어느 쪽이 옳다는 직설적인 주장도 하지 않았다”며 “그보다는 서로 상대를 심판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적고 있다.
  
   링컨은 1865년 4월 11일 마지막 연설에서도 “일단 무사히 집에 돌아오기만 한다면 집을 뛰쳐나갔다는 사실이 문제될 것이 무엇이냐”며 “남부 주는 남부인이 통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란군 및 배반자들에게 특사를 단행하고 공식집무를 마쳤다.
  
   노 대통령 배워야할 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국민통합은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마음속에 우러나는 관용과 화해, 사랑으로써만 가능하다. 특사 역시 노 대통령 측근들보다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노 대통령을 배척했던 사람들이나 국민들을 우선해야 한다.
  
   청와대 낙하산인사 청탁 안 들어 줬다고 6개월 만에 문광부차관을 경질해 뒷말이 많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정상적인 업무협의이며 청와대 비서실인사가 차관과 전화한 것 자체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노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큰 정적 국방장관 기용 링컨의 뛰어난 용인술 본받아야
  
   셋째는 인사문제이다. 무엇보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인사는 만사(萬事)이다.
  
   링컨의 용인술은 뛰어났다. 자신의 정적인 수어드를 국무장관에 앉히고 끝까지 함께했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한판 대결을 벌였던 정적 민주당 더글러스를 찾아가 머리를 숙이며 조언을 구했고, 그는 죽을 때까지 협력했다. 체이스는 자신과 재선경합을 했지만 곧바로 대법원장에 앉혔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최악상황에서 에드윈 스탠턴 국방장관의 전격기용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다. 스탠턴은 민주당 핵심인사였고, 링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명한 변호사였다. 그는 링컨을 고릴라라며 인격 모독 등 노골적으로 무시했고,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가적 재앙”이라며 쿠데타를 일으켜 링컨을 내쫓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인물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링컨의 기용은 적중했고 남북전쟁 승리에 큰 몫을 했다.
  
   “그 사람이 나를 수백 번 무시한들 어떻습니까. 그는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국방부장관을 할 충분한 자질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의 난국을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는 소신과 추진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가 이 난국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물론 링컨 시절에는 컴퓨터가 없어 그는 ‘코드인사’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적이라도 나라에 유익하면 과감히 발탁, 적재적소에 기용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인물난에도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 요직에 돌려가며 등용, 야당으로부터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입맛에 맞는 인물만 골라 쓰는 노 대통령은 깊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통합에 어떤 인물을 기용해야 하는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노대통령은 “쉼 없이 정적들의 강공에 시달리는 정권을 가지고 링컨이 연방통합과 노예해방 전쟁을 수행한 것을 보면서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떠올린다”며 “권력적 수단을 통한 강제력에 있어서는 허약했지만 결단과 포용을 통해 강력하게 정책 수행능력을 발휘한 링컨이었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1년6개월 동안 링컨으로부터 배워 실천해야할 점이 바로 결단과 포용이다. 그러면 장관 인사권 존중해달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나 한미FTA 문제도 링컨의 결단과 포용으로 풀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원문보기는 이곳을 클릭
       
출처 : 칼럼
글쓴이 : 사상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