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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진룡 前차관 경질 파문]유 전 차관이 밝힌 전말"

도깨비-1 2006. 8. 12. 16:16
뉴스: "[유진룡 前차관 경질 파문]유 전 차관이 밝힌 전말"
출처: 동아일보 2006.08.1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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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前차관 경질 파문]유 전 차관이 밝힌 전말"


[동아일보]

“어찌 보면 자존심 문제 같습니다. 그들(청와대)은 ‘감히 네가…’ 하고 생각한 것 같고, 나도 자존심이 있으니 내 원칙을 따른 것이고. 원칙과 원칙이 부딪쳤는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닌가 하네요….”

11일 새벽 서울 광진구 구의동 유진룡(50)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자택 앞에서 귀가하던 유 전 차관을 만났다.

그는 “환송회 비슷한 자리에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그만 괴롭혀라. 내가 자꾸 거론되는 게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기자가 ‘밤새 기다린 성의를 봐서 잠깐만 시간을 내 달라’고 팔을 붙들며 매달리자 난감해하던 유 전 차관은 근처 맥줏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고뇌어린 표정에 극도로 말을 아꼈고, 잇따른 질문에도 오랜 침묵 후 간간이 입을 열었다.

이날 새벽 두 시간 넘게 통음을 하며 그와 나눈 대화를 쟁점별로 정리했다.

○ 아리랑TV 부사장 인사 청탁

―청와대의 아리랑TV 부사장 인사 청탁 대상자로 알려진 K 씨와 통화했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하던데….

“(말없이 웃다가) 그가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다. 아리랑TV 부사장 직은 원래 없다가 해외 진출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2004년 신설된 자리다. 그런데 장명호 현 사장이 취임 직후 경영합리화를 위해 그 자리를 없애고 3명인 본부장도 2명으로 줄이겠다고 해서 잘 생각했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부사장 자리에 청와대의 인사 청탁이 들어온 거다.”

―청탁이 아니라 그냥 추천만 한 것은 아닌가. K 씨는 “청와대 인사 풀(pool)에 이름이 올라 있으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어디든 추천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한참 침묵한 뒤) 그렇지 않다. 그 대상자가 장 사장에게 ‘내가 여기 부사장으로 오기로 돼 있다’는 말을 했고, 장 사장이 문화부 관계자를 통해 ‘인사 외압을 막아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 대상자를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방송 경력도, 그 자리에 필수적인 영어 관련 경력도 없는 데다 사장이 막아 달라고 한 부사장을 내가 어떻게 임명하겠는가. 그런데도 이백만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화로 인사 청탁을 하기에 내가 ‘그의 취직 자리가 정 필요하면 다른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이러다간 언젠가 사고 난다. 대통령에게도 누가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리랑TV의 장 사장은 11일 이와 관련한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문제가 된 부사장 직은 6월 19일 폐지됐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공모 압력

―영상자료원장 공모와 관련한 인사 청탁도 아리랑TV 건과 비슷한 강도였나.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쪽도 대상자가 영화 관련 경력이 없고, 이력서를 봐도 뭘 했는지 잘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 전 차관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11일 영상자료원 원장 공모와 관련해 청와대가 인사 청탁을 거절당하자 보복성으로 최종 심사대상에 오른 3명을 모두 탈락시키고 재공모를 실시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이날 청와대는 전문성 부족을 이유로 “적임자가 없어 청와대가 직접 재공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한 한 위원은 “영화계 전문가들이 모여 인사 취지에 맞게 최종 후보를 공정하게 뽑았다”면서 “추천위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추천했단 말이냐”고 반박했다.

인사 청탁 의혹을 받은 후보는 최종 심사대상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심사대상에 오른 한 후보는 “당시 유 차관에게 ‘내가 혹시 (낙하산 인사의) 들러리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 없다. 추천위원들에게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후보를 정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계 인사로 구성된 추천위원들이 엄정하게 뽑은 후보 3명을 청와대가 ‘전문성 부족’을 이유로 모두 퇴짜를 놓은 이유가 석연치 않다”면서 “공모제는 사기다. 이번 인사 공모제에 지망하면서 현 정권의 ‘코드 인사’에 절망했다”고 말했다.

영상자료원은 아직까지 원장 후임이 결정되지 않아 지난달 27일 임기가 만료된 이효인 원장이 계속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원장 재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 신문유통원 관련 직무회피 혐의

―청와대는 경질의 가장 큰 이유가 신문유통원 관련 직무회피라고 밝혔다.

“그건 문화부 책임이 아니다. 신문유통원의 예산 운영방식이 ‘매칭 펀드’(지원받는 신문사도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로 정해진 것은 신문법을 만들 때부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문화부가 아니라 기획예산처가 돈을 갖고 있고 조건이 붙어 있어서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청와대에서 매칭 펀드 방식을 갖고 문화부에 책임을 묻겠다고 하기에 내가 ‘매칭 펀드에 동의한 여당 의원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으라’고 했다. ‘칼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이건 휘두르면 안 되는 칼’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신문유통원 권선준 경영기획실장은 “예산을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기획예산처 심사를 거쳐 수시로 지원받는데 2분기 예산심의가 부처 간 이견이 길어져 두 달간 예산 지원을 못 받아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사업비 분담, 지역센터가 설립될 지역 선정 등 기본적인 사업 준비와 관련해 지원대상 신문사들의 준비가 덜 된 탓도 크며 문화부가 고의로 업무를 회피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공직기강 조사 이유

―인사 청탁 거절 정도의 문제로 공직 기강 조사까지 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겠다. (계속 답변을 거절하다) 나를 곧장 자를 생각이었다면 왜 조사를 했는지가 의문이다. 공직사회에 소위 말해 ‘덤비면 죽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조사를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을 그들이 전혀 안 한다는 게 나로서는 황당했다. …(그들이) 어리석은 짓을 한 거다.”

―전직 장관들도 경질을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소문을 전해 듣긴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까닭은 그들(청와대)이 지금 처리할 게(인사) 많은데 내가 있는 한 그게 안 되니까 그런 것 같다. 난 아예 선언을 했다. 나를 자르든지, 청탁을 하지 말든지 하라고.”

―8일 이후 청와대와 접촉한 적이 있나.

“없다. 인사수석실에서 연락이 왔기에 ‘당신들 기억에서 날 지워 달라’고 했다. 뒷자리 같은 걸 생각하라고들 하지만 난 그럴 생각 없다.”

―이후엔 뭐 할 건가.

“아내가 마취과 의사인데 ‘당신 혼자 노는 꼴은 못 보겠다’며 지난주에 병원에 사표를 냈다. 동반 실업자다.(웃음) 당분간 그냥 쉬려고 한다. 가족을 생각하면 무책임하다는 자책감도 있지만 내가 원칙을 버려 가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는 기자가 ‘취재하면서 문화부의 후배 공무원들이 유 전 차관의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변함없이 신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하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고마운 일이네요”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