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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400홈런을 향해…이승엽 홈런 드라마

도깨비-1 2006. 7. 13. 23:11

400홈런을 향해…이승엽 홈런 드라마
 

2006년 7월 13일 (목) 11:22

  
[JES 김성원] 1995년 7월23일 잠실 OB전. 삼성 루키 좌타자가 박철순에게 3회초 홈런을 터뜨렸다. “기분이 묘했다. 어린 시절 내 우상 박철순 선배에게 홈런을 빼앗다니 정말 죄송스러울 뿐이다.” 영웅은 영웅을 밀어내고 탄생한다.

82년 프로야구 원년 여섯살짜리 코흘리개가 95년 고교 졸업뒤 자신의 우상에게 터뜨린 홈런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중반 한국과 일본의 야구사를 장식하기 위한 예광탄이었다. 이· 승· 엽(30). 그로 인해‘국민타자’ ‘아시아 홈런 신기록’이라는 신조어가 세상에 나왔다. 이승엽이 그려낸 홈런 드라마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은 정말 행복했다.


▲400발의 축포는 언제 터질 것인가



지금 이승엽의 페이스라면 시즌 50홈런도 가능할 태세다. 삼성 시절 54홈런(1999년). 56홈런(2003년)을 때렸던 기세가 다시 재현된다. 일본야구를 상징한다는 요미우리에서 당당하게 4번 타자를 꿰찼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어그러짐 없이 쾌속 항진.

이미 월드베이스볼클래식 5홈런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이승엽이다. 그러나 이미 2년간 그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끝낸 일본 야구 아닌가. 상승세를 이어갈지는 사실 걱정이었다. 이승엽이 개막부터 맹타를 터뜨리자 일본 투수들은 예상대로 심한 견제를 시작했다. 높은 몸쪽 직구에 이은 포크볼로 그를 잡아냈다.

잠깐의 시련은 이승엽의 반격을 예고하는 것에 불과했다. 4월에 5홈런. 5월에 8홈런으로 앞서 나가더니 6월에는 아예 부문 단독 1위로 치고 나섰다. 그리고 7월에는 한-일 통산 400홈런을 남겨두고 있다. 이미 지난 2003년 6월22일 대구 SK전서 한-미-일 최연소 300홈런(26세10개월4일)을 돌파한 이승엽은 이제 400고지를 남겨뒀다.

이승엽은 300홈런 돌파 당시 일본의 오 사다하루(27세 3개월11일). 미국의 알렉스 로드리게스(27세 8개월6일)를 제친 바 있다. ‘일본 진출 첫 해 였던 지난 2004년 14홈런으로 다시 부진한 통에 최연소 400홈런 달성(알렉스 로드리게스·29세 10개월18일)은 힘들어졌으나 리그 적응기간을 끝내고 30세 이전에 400을 돌파하는 것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신기원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의 이승엽’이 다시 한번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이승엽의 청룡언월도, 어떻게 진화됐나?



무게는 줄이고. 길이는 짧게. ‘무사’ 이승엽은 세계와 싸우면서 점차 배트 길이와 무게를 줄여갔다. 커다란 홈런보다는 임팩트한 장타가 더 중요했고. 그래서 홈런이 나온다면 좋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갈때 일본 프로야구계는 이승엽을 반신반의 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안타를 쳐서 실력을 인정받는게 중요했다.

이승엽은 지난 2003년까지 한국 프로 무대서 950g에 34인치의 방망이를 사용했다. 당시 80㎏중반 대의 몸무게를 유지하던 이승엽으로서는 상당히 무거운 배트 무게. 이승엽은 여기에 배트 특별주문으로 그립을 최대한 가늘게 하고. 헤드를 두껍게 해 타구가 방망이에 맞을때 원심력을 최대화 했다. 일반적으로 같은 중량이라도 그립이 가늘면 중량감이 더 느껴지기 때문에 이 시절 이승엽의 배트는 그야말로 해머에 다름없었다. 예전 요미우리의 터피 로즈가 자신의 큰 체구를 이용해 이런 종류의 방망이를 사용했다.

일본 진출 첫 해와 둘째 해인 지난 2004∼2005년 그는 본격적으로 ‘방망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920g대로 줄이면서 집요하게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일본 투수들과 지리한 대결을 진행한다. 이때부터 또 체지방을 측정하며 본격적인 웨이트트레이닝도 시작. 체중이 늘어나면서 배트 무게가 줄어들어 방망이 스피드가 놀랄만큼 증가한다. 이승엽의 배트는 타격부위가 맥주병 형상으로 돼 있어 낙폭 큰 변화구에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마쓰이(양키스)가 쓰는 것과 다소 비슷하다.

올해는 아예 900g대 미만의 배트를 즐겨 사용한다. 그립도 더 가늘어 졌고 길이까지 짧아졌다. 자신의 약점으로 지난 해까지 계속 지적되던 좌투수가 나올 경우엔 최대 20g 더 줄인 배트를 들고 나온다. 변화구 대처를 위해 선택한 것이고 이 판단은 결국 옳았다.

▲2006시즌 이승엽 홈런 하이라이트

# WBC 1라운드 일본전 결승홈런 3월5일 일본 도쿄돔 1라운드 일본전. 1-2이던 8회 특급 마무리 이시이로부터 역전 2점 홈런을 뽑아냈다. 2라운드 진출로 만족하는듯 했던 한국 대표팀은 이 한방으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고 WBC 4강 신화의 초석을 놓았다.

# WBC 2라운드 미국전 결승홈런 3월14일 미국 에인절스타디움 2라운드 미국전. 이승엽은 0-0이던 1회 지난 해 내셔널리그 다승왕 좌완 돈트렐 윌리스에게 선제 홈런을 때렸다. 세계속에 한국야구를 알리는 한 방.

# 일본 센트럴리그 개막전 홈런 3월31일 일본 도쿄돔 요코하마전. 하라 요미우리 감독은 WBC서 맹활약을 떨친 이승엽에게 요미우리 70대 4번타자를 맡겼다. 이승엽은 개막전 5회 시원한 홈런포로 화답했다.

#누의 공과로 도둑맞은 홈런 6월11일 마린스타디움 지바 롯데전. 1-1이던 3회 와타나베로부터 2점홈런을 터뜨렸다. 그러나 1루주자 오제키가 3루를 공과해 이승엽의 홈런은 단타로 처리됐다. 며칠 후 오심이라는 점이 밝혀져 화제가 됐던 홈런.

# 8연패 구한 20·21호 연타석포 6월15일 도쿄돔 오릭스전. 4회와 7회 연타석포. 일본 진출 후 첫 기록. 이날 홈런 2방으로 센트럴리그 홈런 선두로 치고 나갔고. 팀은 8연패 지옥에서 벗어났다.

▲이승엽, 반전의 미니시리즈



최고 타자 이승엽의 홈런궤적은 일직선으로만 진행된게 아니었다. 3000m 장애물 달리기였다. 숱한 좌절 속에 분통 터져 흘린 눈물이 있었고 그때마다 보란듯이 일어섰다. 그때의 패배는 ‘이승엽 나무’를 무성하게 자라게 하는 귀한 밑거름이 됐다.

그 첫번째가 바로 지난 1998년. 이승엽은 9월까지 피말리는 홈런왕 경쟁 끝에 OB(현 두산)의 타이론 우즈에게 홈런왕 타이틀을 내준다. 우즈 42개. 이승엽 38개. 1998년은 외국인 선수 도입 원년이었다. 첫해 최고 슬러거의 자리를 외국인에게 내줬다는 것은 이승엽 뿐만이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 전체에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다음해 이승엽은 보란듯이 54홈런으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50홈런을 돌파하며 로마이어· 샌더스· 스미스· 호세 등 외국인 거포들의 추격을 한번에 제압했다.

두번째는 미국진출 좌절이다. 지난 2003년-2004년 겨울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서부지역 구단을 방문했으나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이승엽은 당시 “그때 겪었던 일은 아마 죽을때까지도 입에 내지 않을 것”이라며 참단한 제안을 받고 돌아갔다.

이승엽 미니시리즈의 최대 반전은 어쩌면 여기서부터일지 모른다. 만약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대신 소속팀 삼성으로 돌아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의 이승엽은 어떤 목표. 어떤 꿈을 갖고 뛸 수 있었을까. 이승엽은 과감하게 일본 진출을 결정했다.

그리고 세번째로 반쪽짜리 선수에 다름없었던 평가를 받으면서 가장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던 시절. 바비 발렌타인 지바 롯데 감독은 예의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해 그를 반쪽 선수 취급했다. 지바 롯데에서 보낸 2년은 결국 올시즌 이승엽이 좌-우에 상관없이 많은 장타를 때려내는 데 도움이 됐다.

▲세계속의 한류 상품 이승엽

이승엽은 25살 한국 프로야구가 만든 명품이다. 미국 팜시스템에서 흘린 땀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우뚝 선 박찬호(샌디에이고)와 한국인 출신 월드시리즈 주전 마무리로 세계의 주인이 되었던 김병현(콜로라도)과는 또 다르다.

그가 데뷔한 1995년 1호 홈런부터 2003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쏘아올린 통산 324호이자 아시아 신기록. 시즌 56호째 아치는 온전히 한국야구의 재산. 이승엽이 홈런을 때려내는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차례나 바뀌었고 월드컵은 세차례를 치렀다. 프로야구 쌍방울· 해태가 문을 닫았고 SK와 KIA가 새롭게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승엽의 홈런은 ‘겨울연가’다. 이미 한국에서 그의 홈런은 드라마같은 운명의 반전을 일궈낸 것이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에이스 마쓰자카를 홈런 두 방으로 두들겨 야구 사상 첫 메달(동)을 따는데 주인공 역할을 했다. 2002년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때는 6차전서 거짓말에 가까운 동점 스리런포를 터뜨렸다. 지금 이승엽은 일본으로 수출돼 다시 그 드라마를 재현하고 있다.

김성원 기자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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