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태평로] 듣기 거북한 '호남정치 復元'이라는 말

도깨비-1 2015. 4. 7. 10:34

[태평로] 듣기 거북한 '호남정치 復元'이라는 말

  • 신정록 논설위원
  •  

    입력 : 2015.04.07 03:00 / 조선일보

     

    요즘 야권발(發) 뉴스에서 빈도가 가장 높으면서도 그 뜻을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말이다. '호남정치'가 뭘 뜻하는 것인지부터 불분명한 데다 '복원'이라는 것은 언제 적의 어떤 상황으로 돌려놓겠다는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는 물론 재·보선에 나가기 위해 탈당한 사람들까지 같은 말을 쓰면서도 의미가 제각각이다. '광주정신'이라는 말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주류와 비주류, 탈당파가 모두 쓰면서도 뉘앙스가 다르다. 듣는 사람에게 편한 대로 해석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얘기인가?

    문재인 대표는 지난 2월 8일 전당대회 때 광주 연설에서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聖地)"라고 했다. 대표가 된 뒤에는 5·18 민주묘지에 가서 '광주정신으로 다시 시작'이라고 썼다. 이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와 경쟁했던 박지원 의원은 자기가 대표가 되어야 '호남정치가 복원되는 것'이라고 했다. 최고위원 출마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은 탈당과 4·29 재·보선 출마 명분으로 똑같은 표현을 썼다. 심지어 정의당 천호선 대표마저 광주에 가서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의 의미는 각자의 처지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다. 문 대표는 "국가적 위기 앞에 (호남정치 복원을 놓고)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고 했다. 자기 중심으로 모여 달라는 얘기다. 박 의원은 정반대로 "(대북 송금) 특검 때문에 DJ가 투석을 시작했고 나도 감옥에서 13번 수술을 받았다"며 호남정치 복원을 얘기했다. 그 말에는 배신감과 소외감이 담겼다.

    탈당파라고 다를까. 천 전 의원의 경우는 '호남정치 복원'이 공천이 어렵게 되자 탈당하면서 내세운 명분이라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출마하면서 전주에 가서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 말을 한 정 전 의원의 경우는 뭐라 말하기조차 힘들다. 이쯤 되면 새정치연합 내 주류·비주류든, 새정치연합 탈당파든 누가 비교적 순수하고 누가 더 정략적인지 따지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이 와중에 공중에 붕 뜬 것이 역설적으로 '호남정치 복원'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경북 포항 출신인 김성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현 김대중도서관장)이 "소수의 단결은 정의이고 다수의 단결은 불의"라고 말한 일이 있다. 다수인 영남이 뭉치는 것은 불의(不義)이지만 소수인 호남이 뭉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취지였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발언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영남 패권주의'를 정면에서 들이받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말 하나에만 견줘 보더라도 지금 야권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크기도 작고 품위도 느낄 수 없다.

    '호남정치 복원' 같은 얘기는 '영남정치' '충청정치' 같은 얘기처럼 아예 나오지 않는 게 가장 좋다. 그런 말이 자꾸 나오는 게 호남에 좋을 리도 없다. 굳이 해야겠거든 정말 뭔가를 바꿀 사람이 자기 가진 것을 다 던지면서 해야 한다. 그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계속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는 일은 거북하고 민망하다. 정말 생각이 있고 역량도 있는 정치 지도자라면 크게 판을 바꿔 그런 말 자체가 의미 없어지도록 하는 길을 걸을 것이다.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