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음식

[김성윤의 맛 세상] 韓食은 건강식이어야만 할까

도깨비-1 2015. 2. 26. 23:19

 

[김성윤의 맛 세상] 韓食은 건강식이어야만 할까

 

입력 : 2015.02.26 03:00 / 조선일보 김성윤 문화부 기자

전통食 건강·정력에 좋다는 건 열량 따지면 막연한 믿음일 뿐
발효 음식도 우리만의 것 아니고 毒性 유발 물질 생성될 수 있어
'맛'에 충분한 자부심 가지면서 위험 요소 가려내는 작업 해야

유럽의 한 국가에서 매년 열리는 음식 행사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한창 한식(韓食) 세계화를 밀어붙이던 때였고, 담당 부처 고위 관료가 이 행사의 전야제에 참석했다. 행사 실무를 주관하는 여성 사무국장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관료가 대뜸 "당신은 매우 아름답고 피부가 매우 좋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그는 나름 아이스브레이커(ice breaker·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말)랍시고 한 말이라고 짐작하지만 외국에선 처음 보는 상대방, 특히 여성일 경우 외모에 대한 직접적인 칭찬은 잘 하지 않는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무례하다거나 심지어 성희롱으로 여길 수도 있는 그의 발언에 잠시 정적이 만찬장에 감돌았다. 하지만 이 한국 남성 관료는 썰렁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한국 음식을 드세요. 그러면 당신은 더욱 아름다워질 겁니다. 당신의 남편도 한식을 먹으면 (힘이) '세질(strong)' 거예요. 한식은 건강식입니다."

그 내용의 적절성을 떠나 우리는 이 관료의 발언에서 한국인과 한국 정부가 한식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외국에 알리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우리 전통 음식은 건강에 좋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진 듯하다. 한국 음식은 정력(精力) 증진 효과마저 갖춘, 세계적으로 우수한 건강식이란 자부심을 가졌다. 과연 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보다 월등하게 건강에 좋을까.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 명절 음식의 열량을 조사해봤다. 예상보다 훨씬 높아서 놀랐다. 떡국 한 그릇에 담긴 열량은 439㎉(이하 모든 음식 열량은 '칼로리수첩'(우듬지) 참고)로, 패스트푸드업체인 맥도날드 햄버거(248㎉)의 거의 두 배 수준이었다. 맥도날드의 대표적 대형 햄버거인 빅맥(565㎉)과 비교해도 별로 낮지 않았다.

'누가 햄버거만 먹나. 감자튀김과 탄산음료를 곁들인 세트로 주로 먹지'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명절 음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빅맥과 감자튀김, 코카콜라로 구성된 '빅맥세트'는 열량이 862 ~1030㎉이다. 떡국에 갈비찜(150g)·동태전(70g)·고사리나물(50g)을 1인분씩 먹었을 때 열량을 계산해보니 빅맥세트에 버금가는 966㎉나 됐다. 평소 먹는 흰쌀밥도 한 그릇(210g)에 313㎉가 담겨 있다. 칼로리로만 따졌을 때 한식은 건강식이라고 할 수 없다.

한식이 건강식이라는 중요한 근거로 발효음식이 다양하고 많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발효음식은 한민족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치즈다. 다 알듯 치즈는 소나 양, 염소 등 동물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246가지 치즈를 가진 나라를 통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을 정도로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치즈를 먹어왔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모든 나라는 저마다 고유의 전통 치즈가 있다. 치즈 외에 서양음식의 기본인 빵도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킨 뒤 구워서 만든다. 콩을 발효시킨 간장·된장 따위 장류와 생선·새우 같은 해산물을 발효시킨 젓갈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베트남·태국 등 아시아 각국 음식의 근간이 되는 양념이다.


	[김성윤의 맛 세상] 韓食은 건강식이어야만 할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게다가 발효음식이라고 해서 꼭 건강에 유익하다고 할 수는 없다. 식생활 클리닉 '건강한 식탁' 원장 이미숙씨는 최근 펴낸 '한식의 배신'에서 "발효음식에서는 우리가 원치 않던 성분이 왕왕 발견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원치 않던 성분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최근 발효음식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바이오제닉 아민(Biogenic Amines)이 대표적"이라고 소개했다.

단백질을 함유한 식품이 부패하거나 발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바이오제닉 아민은 인체에 독성(毒性)을 유발할 수 있다. 이 원장은 "과다 섭취 시에 신경계 및 혈관계를 자극할 수 있고, 식품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체내대사를 통해 발암물질로 전환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가 알려지면서 유럽에서는 치즈를 만들 때 원료 우유의 살균, 숙성 시간 등을 조절하는 등 바이오제닉 함량을 낮추려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안전한 유제품을 만들게 됐다. 와인이나 맥주 같은 발효주도 바이오제닉 아민 함량 규제 기준을 만들었다. 이 원장은 "발효음식을 유난히 많이 먹는 한국에서 언제까지 이 문제를 덮어둘 것이냐"며 "한식이 진정 건강식이 되기 위해서는 선입견에 가려진 한식의 위험 요소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식이 건강에 유익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약(藥)처럼 신봉하거나 홍보할 순 없다. 그날 음식 행사 전야제에 함께 있었던 유럽 국적의 요리사는 한국 관료의 말을 듣더니 "건강을 챙기려면 약을, 정력을 되살리려면 비아그라를 먹는 편이 빠르고 확실하지 않겠느냐"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가며 한식의 매력에 푹 빠진 그 요리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식은 맛있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