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을 추모·위로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4월30일 저녁 서울 중구 청계광장 들머리에서 참가자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조선의 창공이 원혼의 피눈물로 물들어 잿빛 같은 암흑을 드리우고
온생명의 분노가 열화같이 치솟아
암흑의 장막을 불태울 때
원망조차 잊어버린 순결한 여린 혼령들은
신단수의 하늘에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
홍익인간의 천부인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김용옥 교수 |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
‘박근혜 하야’ 도올 김용옥 ‘특별 기고’ 일파만파 |
대부분 언론들 ‘한겨레’ 인용 보도…댓글 3만여건
대다수 누리꾼들 “도올은 진정한 지식인이다” 지지
일부는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워” 비판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의 <한겨레> 기고가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 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김 교수의 글은 주말 내내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김 교수의 글은 <한겨레> 누리집과 주요 포털에서 3만 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수만 건 이상 인용되면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또 대다수 언론도 온라인을 통해 김 교수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했다.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은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다. 도올은 진정한 지식인이다”“이 시대에 침묵하는 지식인 사회지도층들은 반성해야 한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지식인들이 침묵하면 역적이다. 도올 선생님 지지합니다. 더 많은 쓴소리 채찍을 주셔야 합니다. 백성을 두려워 하지 않는 왕의 마지막을 역사에서 항상 우리는 배웠습니다”라며 할 말을 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일부 누리꾼(j****)과 트위터리언(@re******)은 “파문??? 진작에 나왔어야 할 얘기아닌가? 중학생조차도 얘기하는건데..... 당연히 물러나야지요~~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파문이 아니라 당연한 요구죠!!”라며 보수언론의 ‘파문’ 운운을 일축했다.
한 트위터리언(@jg********)은 “도올 김용옥처럼 용기있는 목소리를 내는 정치지도자 하나 없는 대한민국은 결국 침묵하는 건가요? 국민은 다 죽어가는데 뭐하십니까?”라며 정치권의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도올의 기고문을 가리켜 “요사스럽다”거나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의견이 엇갈렸다.
오승훈기자 vino@hani.co.kr
지금 하야를 말하지 않는 까닭 |
등록 : 2014.05.05 10:51 수정 : 2014.05.05 12:59/한겨레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4일 오전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 등 정부의 책임있는 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2014.5.4/뉴스1 |
‘왜 대통령 퇴진을 말하지 않느냐?’는 독자의 전화
헌법 파괴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이유는 충분하나…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56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겨레 주주이고 독자이고, 고교생 딸아이도 열렬 독자이어서 하는 말인데….” 전화선 저쪽의 독자는 주저 주저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온 말은 이랬습니다. “왜 <한겨레>는 대통령 하야, 아니 대통령의 퇴진을 말하지 않는 거죠?” 한동안 말한 이도, 저도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말이 이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알아서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건 제 이야기 이전에 제 딸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 예, 예.’ 이렇게 얼버무리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제가 난처해 하는 줄 알고는 독자는 수고하시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습니다.
한동안 머리 속이 복잡했습니다. 지난 한 해는 국정원과 국방부 등 비밀요원들의 조직적인 여론 공작 문제로 날이 새고 밤이 샜습니다. 국정원의 남북정상대화록 공개는 국가기관의 이런 헌법 파괴와 대선 공작을 덮기 위한 또 다른 공작이었습니다. 공작 책임자를 기소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사찰과 퇴진 공작도 이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간첩 조작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탄로나면서 당사자인 유우성씨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고, 공작을 한 자들은 기소됐습니다. 이 사건 역시 대선 공작 물타기용 공작이자, 현직 서울시장 낙선을 위한 공작이었을 겁니다. 간첩 증거 조작에는 검찰까지 연루됐으니, 최고의 권력기관이 동원된 셈이었습니다.
이쯤만 해도 사실 하야 혹은 퇴진 문제를 거론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기억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2월, 총선을 2개월 앞두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 게 고작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싶다고 덧붙였죠. 그때 당신이 몸담고 있던 새누리당은, 지금 당신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의원 등의 이름으로 탄핵안을 발의했습니다. 불과 10여년 전 일입니다.
사실 저는 <한겨레>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민주국가 시민의 권리로써 말할 수 있는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헌정 질서를 문란하는 정보기관의 공작 속에서 출범했고, 또 지금까지 벌어진 일이라곤 은폐를 위한 공작이나 검찰총장 사찰, 선거 때 국민과 한 약속의 파기 그리고 미증유의 인명 사고 등이었으니, 퇴진을 요구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출발이 부정했고, 국민의 생명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여전히 국가와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올 김용옥 선생은 지면을 통해 대통령의 하야를 공개리에 주장했더군요.
그러나 저를 주저하게 하는 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끼칠 영향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데 무능하고 무책임했으며, 재앙 이후엔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이 정권은 어떻게든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했습니다. 30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나도록 수수방관했던 이들은 사고가 나자마자 계속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흘렸습니다. 마치 북한이 핵실험 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익은 첩보를 제기하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 했습니다. 이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는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빨리 지우고, 이 정권의 무책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누그러지는 것입니다. 천안함 때는 어떻게든 ‘관제 기억’을 주입하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썼던 이들이, 지금은 분향소 설치도 제한하고, 장례와 분향에 대한 지원도 제한하고, 추모 행사도 위축시키기 위해 기를 쓰는 등 세월호의 기억을 말소시키기 위해 안달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북한의 핵실험 등 도발 이외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건, 아마도 세월호 재앙을 정치화시키는 것일 겝니다. 지난해 대선 공작을 놓고 대선 불복이냐며 물타기를 하는 한편 지지세력의 결집에 나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퇴진 논란을 통해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입니다. 정치 쟁점 곧 정쟁으로 변질되면 최소한 양비론의 방패 뒤에 숨을 수 있고, 맹목적인 지지자들의 광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미 ‘박사모’는 박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전쟁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7만 박사모가 뭉치고 단결해 음해 세력을 척결하고 좌빨을 분리수거 하자’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사위,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남편은 추모의 상장인 ‘노란 리본’의 배후를 수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벌써부터 유가족을 욕보이고, 빈정거리는 등 도발을 유도해왔습니다.
권력에 눈 먼 패륜의 광기에 휩쓸려선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정쟁이 두려운 게 아니라, 온전히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에 동참하고, 위로하고, 반성하는 데 바쳐져야 할 시간들이 싸움으로 흘러가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살아남은 이들이 그분들에게 바쳐야 할 속죄의 시간입니다. 그런 반성과 참회 없이는 또 이런 재앙이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튼 짓에 휘말려 좀비떼들을 불러내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이 자리에서 하는 까닭은, 당신은 여전히 이런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거나 염원에 대해 무지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을 들어보면, 당신은 여전히 당신 자신을 국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국가 개조론’을 들고나왔습니다. “내각 전체가 원점에서 ‘국가 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현재 만들고 있는 안전 마스터 플랜도 국가 개조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알듯이 국가는 국민과 영토와 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 정부는 입법부와 사법부와 함께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영토를 수호하며 주권을 지킵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조직이지, 초월적 위치에서 국민과 국가를 주물럭거리는 조직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위임받은 자들의 무능, 무책임, 농간과 관행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런 정부의 잘못을 국가의 잘못으로 떠넘겼습니다. 국가의 잘못이란 곧 국민의 잘못입니다. 국가 개조란 국민 개조를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친인 박정희씨가 일쑤 써먹던 게 ‘국가 개조론’이었습니다. 그때 부친은 스스로를 종교적 메시아의 자리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정부의 무능으로 빚어진 참사 앞에서 구원의 메시아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국가 운운할 게 아니라, 이 정부를 개조할 때입니다. 퇴진할 각오로 이 정권을 근본부터 바꿔야 할 때입니다.
엊그제는 종교계 지도자들을 앉혀놓고, 그런 의식의 연장선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했더군요. 요컨대 ‘국가 개조 차원의 대안을 가지고 국민에게 사과를 하겠다!’ 알고서 말하는 건지 써주는대로 읽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반성의 연장에서 나오는 게 대안입니다. 어떻게 말을 마차 뒤에 묶고 달리자고 하십니까. 게다가 유언비어가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혼란을 일으켜 가슴 아프다고요? 유가족이 어떤 유언비어에 그렇게 큰 상처를 입었는지 말씀해보십시요. 그들에게 상처를 입힌 건, 당신과 이 정부입니다.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라는 분들을 소품처럼 앉혀놓고, 국민을 훈계하고, 메시아 같은 모습을 보이니 그저 참담할 따름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바꿔야 할 것은 이 정부이고, 개조해야 할 것은 이 정권입니다. 함부로 국가 개조를 입에 담지 마십시요.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다.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나치의 선동꾼 요제프 괴벨스의 말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