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야! 한국사회] 여기가 끝이 아니다 / 백영경

도깨비-1 2014. 5. 5. 14:48

[야! 한국사회] 여기가 끝이 아니다 / 백영경

등록 : 2014.04.30 19:02 수정 : 2014.04.30 22:19 /한겨레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세월호 사태 속에서 희생자들의 상황이나 이를 지켜보는 가족이나 국민들의 다급하고 애끓는 마음과는 달리 구조나 대책은 너무나 “평소” 같았다. 아마도 우리의 바람은 평소에는 어찌하고 살았든 저 배 안에서 아이들이 갇혀서 죽어가는 이 상황에서만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을 게다. 재난은 비상상황이 아닌가. 자기 살기 바쁘던 사람들도 재난 상황에서는 이웃을 돕고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계기이기도 한 게 재난이다.

그러니 이 정도 사고가 났으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인명을 구조하는 데 힘쓰고, 평소에 불통으로 유명하던 대통령도 아픔을 함께하면서 진정 어린 사죄를 하고, 영역 다툼 때문이건 예산 부족이건 평소에 지리멸렬하던 행정 역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어야 했다.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민간과 관료, 경찰은 모두 생명의 존귀함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으로 전문성에 입각한 협력관계를 맺었어야 마땅하리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희망 어린 생각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난은 예외상황이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벌어진 일은 평소 벌어지던 일들을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고스란히 반복하면서, 사태가 심각한 만큼 평소보다 더 큰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놓고 보면 정말 몰랐다고 말하기는 차마 어렵다. 이윤을 위해서 안전을 무시하는 현실, 문서로만 오가는 규제, 위급한 순간에도 책임 모면이나 이해관계가 먼저인 현실이 새로운가, 아니면 재난 현장에 와서 사진만 찍고 실무자들에게 방해만 되는 윗분들이 새로운가.

이번에 특히 충격을 준 데는 구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흘려보냈다는 뼈아픔과 함께, 그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이유도 컸을 것이다. 사건 당일 오전부터 언론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저렇게 큰 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냥 가라앉아버리리라고 누가 생각했을 것인가. 이후 도착한 카카오톡 메시지며 휴대전화로 촬영된 마지막 시간들의 동영상은 이들이 이후 맞이했을 상황을 떠올리게 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비참함, 슬픔을 전염시킨다. 숨 막히고 지켜보기에 몸과 마음이 다 아픈 장면들이다. 여기에 대해 뭐라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치고 참 조심스럽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마음이 쓰이는 일은 세월호와 함께 다른 사건들, 그리고 그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여년간만 해도 수련원이 무너져서 유치원생들이 희생되고, 백화점에 다리가 무너지고 지하철에서 화재가 나는 등 참사라고 이름 붙은 사고가 수없이 일어났다. 냉동창고에서 노동자가 죽고, 아주 최근에도 몸을 움직이지 못해 불 속에서 장애인들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결국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외면했던 사건들, 그리고 나와의 사회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무감했던 일들이 쌓여서 오늘의 세월호 사태로 드러나게 된 것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태는 우리가 알면서도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왔던 평소의 한국 사회를 맞대면하는 순간이다. 국민의 85%가 세월호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반복될 거라고 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이번 사태의 심각함을 다수가 인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도 세월호가 침몰한 날 고리원자력발전소는 우려 속에서도 재가동이 결정되었고, 안전 우려에도 아파트 리모델링에 수직증축을 허용한다고 하고, 제2롯데월드 건설로 석촌호수 물이 말라 결국 땅이 꺼질 우려도 있다지만 모두 계속한다고 한다. 괜찮을 거라고 한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