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연예인 기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짜 이유

도깨비-1 2014. 5. 5. 14:09

연예인 기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짜 이유

기사입력 :[ 2014-04-28 12:58 ]



연예인들의 기부와 처신, 왜 유독 도드라질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나라에 닥친 큰 재앙은 그 어디든 그렇듯 방송가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주요 예능 프로그램들은 2주째 결방을 하고 있고, TV 속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던 연예인들은 기부와 조문으로 그 활동을 대신하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어떻게 다시 깔깔 웃으며 떠들기를 시작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엄청난 인재가 빚어내고 무능한 정부와 무책임한 관계당국의 행정력을 마주하게 한 대재앙의 참사를 겪으며 사람들의 분노는 심지어 자발적인 기부에 대해서도 논란을 일으키는 지경이다.

기부 논란의 핵심이 강요와 액수의 정도에 관한 것이라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이것은 척박한 기부문화 때문에 빚어진 천박한 의식의 발로라고 정리하면 된다. 기부란 자발적인 행위이고 연예인들이 국가적 시스템 안에서 부를 축적한 재벌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도 제 역할을 못하는 이 상황에서 왜 연예인들의 기부가 유독 도드라지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송승헌, 하지원, 정일우, 박신혜, 온주완, 박재민, 김보성, 김민종, 윤다훈, 차승원, 김수현, 양현석, 강호동, 차인표 신애라 부부, 송윤아 설경규 부부, 수지, 이준, 준호, 팝핀현준, 조권, 최수종 하희라 부부, 임형주, 이상민, 김형준, 솔비, 최윤영, 박경림,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런닝맨> 멤버들 그리고, 박주영, 김연아, 류현진, 추성훈, 홍명보 감독 등의 스포츠 스타들까지. 누군가는 빼먹었음이 분명하기에 걱정스럽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명단만 해도 대략 이렇다. 국가적 재난에 이렇게 다수의 연예인들이 기부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는 건 새롭고 특이하긴 하다. 거기다 엄청난 분노의 기운이 겹쳐지니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타나는 모양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의아하게 보이는 지금의 연예인 기부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 당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야박해서라기보다 TV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의 특성 때문이다. TV와 소통하는, 즉 TV시청의 개념의 변화와 맞물린 현상인 것이다.

물론, 한 명의 국민이자 사람으로서 참담한 재난에 힘을 보태겠다는 시민의식이 이번 연예인 기부의 출발점임을 확실히 밝혀두는 바다.



오늘날 TV는 모든 것을 녹이는 용광로다. 하다하다 이제 대중의 일상까지 그 대상이 되었다. TV는 더 이상 로망과 꾸며진 세계만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지금 TV는 그 어느 때보다 현실감각을 요구받고 있다. TV는 일상에서 힌트를 얻고 그들과 더 가깝고 친숙해지려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TV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수다를 떨고 위무의 콘텐츠로 활용한다. 연예인들 또한 예전엔 최대한 노출을 피하며 무대에서만 얼굴을 비추고 대중들과는 분리된 별천지의 세계에서 살고자 했다면 요즘은 연예인을 신분이 아닌 직업으로 인식하고자 노력한다. 스타의식보단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걸 쿨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은 호감을 느낀다. 평범한 동네 마트에서 연예인들이 장보는 모습이 화면이 되는 이유다.

그런 한 가지 예가 연예인의 집과 사는 모습이 촬영장이 된 현실이다. 사람들은 예능에서 그들이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경외나 동경으로의 접근이 아니라 비교와 엿보기다. 무지 좋은 집에 굉장한 것을 갖춰놓고 사는 연예인 집을 보여주는 방식은 동경과 취향을 전시하는 패션 채널이나 주부를 위한 아침방송에나 존재한다.

평범하게 보인다고 유명 연예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이 높은 출연료를 받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내가 준 사랑을 헤프게 여기지 않길 바라고, 보답 또한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하게 원한다. 이것이 인터넷과 SNS 시대가 낳은 가장 특징적인 TV콘텐츠 소비의 모습이다. 더 이상 방송국, 카메라 안, 무대 안만이 TV의 세상이 아니다. 방송 콘텐츠 내의 캐릭터가 아닌 그 자신 자체로 이미지와 인지도가 만들어지는 환경이 되자 연예인들은 현실로 내려왔다. 이제 연예인들의 친교 파티나 강남 클럽 문화 등은 부럽기보다 냉소의 대상이 되고, 열애설은 예전만큼 파괴력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여러분 곁에서 함께한다는 것,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임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제스처다. 기부 행렬은 바로 이런 환경 변화 차원에서 나타났다. 이 시대와 이 사회,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건 방송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예능은 TV와 일상이 얽히고설켜 공감대를 이룬 가상현실이다.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한 예능은 실제 우리의 일상을 더 재밌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예능의 세계관은 어떻게 보면 그냥 우리 일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고, 어떤 지점에서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처럼 제작진이 만든 세계에 시청자들의 피드백이 덧입혀져서 만들어진 세상이기도 하다.

그저 스튜디오 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쇼라면 별 상관없지만 대부분의 예능이 현실세계와 긴밀한 연결고리가 있다. 그 연결고리가 지금 위태로워졌다. 이 현실의 아픔을 어떻게 예능의 세계로 가져와 소화하고 다시 웃고 까불지 도저히 각이 안 나온다. 예전 박명수가 사다리를 걷어차면서 <무한도전> 좀비특집이 밑장부터 흔들렸듯이 지금은 시청자들과 예능, TV가 공유해왔던 정서의 근간과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은 예능과 TV가 여전히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우리와 TV의 스토리는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의 기부는 그들의 행위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바람이기도 하다. TV와 연예인에게 때로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공인의 태도를 요구하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세상만큼은 현실과 달리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이 지켜지길 바라는 시청자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경규가 골프를 친 것은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방송인으로서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지금 시청자들은 단순히 TV를 프로그램 단위로 시청하지 않고 하나의 세계관의 차원에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 세계만큼은 우리의 친구이길 바라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길 바란다. 이를 특종이라고 보도한 YTN의 의도를 떠나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라는 구분을 넘어서 TV와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인 TV의 시대 또한 살고 있음을 인지해야 했던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