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재난보도 방송, 원칙 지키자

도깨비-1 2014. 4. 23. 15:16

재난보도 방송, 원칙 지키자

 

입력 : 2014.04.23 05:35/ 조선일보/ 신동흔 산업2부 기자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 종편채널 JTBC 앵커는 구조된 학생을 전화로 인터뷰하면서 "친구가 죽은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TV 카메라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이 장면은 그대로 안방에 전해졌다. 이틀 뒤인 지난 18일 KBS 1TV의 오후 4시 '뉴스 특보'는 "구조 당국이 선내에 엉켜 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고 긴급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오보(誤報)였다. 출처도 불명확한 내용을 허겁지겁 내보내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오보 릴레이는 이어졌다. 같은 날 종편 채널 MBN에는 자신을 민간 잠수부라고 주장한 20대 여성이 등장해 "배 안에서… (실종자들과) 대화한 잠수부도 있다" "정부가 민간 잠수부들의 활동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그는 잠수 자격증도 없는 사람으로 밝혀져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JTBC의 '뉴스 9'에도 또 다른 민간 잠수 사업가가 출연해 해군이 불허한 장비를 수색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로 인해 구조작업에 혼란이 야기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21일 오전 KBS 2TV '생생정보통'은 10대 여고생들의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했다. '언니, 오늘 수학여행 간다며? 잘 다녀와! 기념품 잊지마!' '언니가 말이야, 기념품 못 사올 것 같아. 미안해….' 방송은 이 대화를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이 사촌 여동생과 주고받은 안타까운 사연으로 소개했지만 방송 전에 이미 허위로 판명 난 내용이었다.

방송사들은 연일 '뉴스 특보'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생사(生死)의 경계선을 넘어 살아온 학생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검증되지 않은 인터뷰를 내보내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後進性)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 방송사들은 수십대의 헬기를 띄우고 취재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당국이 "구조 활동에 방해된다"고 하자 즉시 취재 헬기를 줄이고 공동 취재 모드로 바꿨다. 특종보다 인명 구조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NHK는 사망자의 시신이나 처참한 사고 현장은 일절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울부짖는 유족의 모습도 없었다. 필요할 경우 정적(靜的)인 사진만 보여줬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준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 18일 오보 자막을 내보내고 있는 KBS 뉴스 특보.
지난 18일 오보 자막을 내보내고 있는 KBS 뉴스 특보.
영국 BBC는 재난 현장을 취재할 때 '편집 가이드라인(editorial guideline)'을 철저히 따른다. 개인을 식별하기 힘들도록 처리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특히 아이들이나 18세 이하 청소년은 절대 불편을 겪거나 위험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뉴욕 맨해튼 인근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늦게 기사를 송고한 언론사였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속보보다 피해 현황과 사고 현장을 끝까지 확인해 오보를 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우리 방송사도 재난 방송 매뉴얼이 있고, 방송심의 기준에도 재난 방송에 대한 준칙이 있다. 하지만 지금 진도 앞바다에서 누가 그 매뉴얼대로 방송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사고도 바로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서 발생했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올라서려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원칙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