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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숭례문의 '못'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도깨비-1 2014. 2. 11. 22:25

김대중 칼럼

숭례문의 '못'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입력 : 2014.02.11 05:43 / 조선일보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당국, 傳統 집착 정서 의식 "숭례문 전통 못 복구" 거짓
옛것만 역사·전통이 아니라 오늘의 작품이 훗날 傳統돼
新기술·예술魂 합작한 DDP '새것' 향한 탐구심 일깨워

 

지난 6일자 조선일보 '오늘의 100자 평'에 이런 독자 의견이 실렸다. "수천 년 된 피라미드, 앙코르와트 유적지도 모두 최첨단 기술로 복원하는데 1000년도 안 된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 무슨 전통 기법 타령이며 나무로 불 때는 용광로에 삽질 톱질이 웬 말이냐?" 이 글은 전날 실린 '전통 못으로 복구했다는 숭례문의 대장간은 쇼'라는 기사에 대한 독자 평이었다.

숭례문 복구 때 직접 못을 만들기 위해 대장간을 세워 거기서 전통 기법으로 제작했다는 문화재청 당국의 애당초 설명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면 당국은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옛것'을 좋아하고 '전통'을 귀히 여기는 국민들의 생각, 여론(사실은 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에 요즘 철물을 썼다면 누가 그것을 '역사'로 볼 것이며 또 지킬 가치가 있다고 여기겠는가 하는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를 거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독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이다. 우리가 주변으로부터 위해당하는 핍박의 역사를 가졌기에 우리 것에 더욱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로 살면서, 또 6·25전쟁을 치르면서 우리 '것'이 많이 부서지고 강탈당해서 우리 '옛것'에 더욱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은 '옛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만들고 자랑하는 것도 10년 후면 역사가 되고 100년 후면 전통이 되는 법이다. 우리가 숭례문을 복원하면서 외형은 그대로 갖추되 그 내부에는 오늘의 기술과 기법을 집어넣는다면 그것도 100년 후면 역사가 되는 이치다. 어쩌면 후세 사람들이 숭례문이 단순히 500년 전 것에 머물지 않고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됐는지를 관찰하고 연구하게 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독자가 지적했듯이 앙코르와트는 지금 일본·인도·중국·프랑스 네 나라가 각각 구역을 나눠서 복원하고 있는데 각기 현대 기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일본 나라(奈良)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돌은 앙코르와트 건설 때 썼던 돌과 같은 지역에서 캐온 것을 쓰지만 기술은 컴퓨터로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전동 해머, 전동 커터 및 에어컨 등 최신 장비로 돌을 다듬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특별취재팀이 작년에 연재한 '문화재 복원, 전통을 넘어서'는 독일의 베를린궁(宮), 일본 나라의 평성궁 등의 복원에서 필요하면 재료도 외국 것을 들여오고 복원 기법도 현대 기법을 동원한 사례들을 상세히 보도했었다.

실제 서울 가회동의 '옛집'(한옥)도 겉모습은 옛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는 아주 현대적으로 생활에 편리하게 개조해 살고 있음을 우리는 익숙히 보고 있다. 영국이나 스위스, 북유럽 등에서 흔히 보는 쓰러질 것 같은 낡은(?) 건물의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식이다.

숭례문의 '거짓말'이 보도된 그즈음, 우리는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세워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의 등장을 놀라운 눈으로 맞이하고 있다. 일찍이 한국에 없었던, 아니 아시아에도 없었던 이 비정형(非定型·일정한 형태도 없고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건물은 분명 한국의 랜드마크로 우뚝 자리 잡을 것이다. 한 장도 같은 것이 없는 4만5100여 장의 알루미늄 판으로 덮여 있는 이 둥근 모자 같은 건물에는 건축물이라면 으레 있게 마련인 직선(直線)이 하나도 없다. 어찌 보면 거대한 은빛 물고기의 모양새다. 밖으로 난 창(窓) 하나 없는 내부는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때로는 천재적 건축가 가우디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라크 출신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64)의 한 치도 양보 없는 예술가적 고집과 국내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공법과 기술을 끝내 이뤄낸 디자인 관계자, 그리고 삼성물산의 노력의 합작품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내걸었던 '디자인 서울'의 진면목이 아닐 수 없다.

숭례문의 '대장간'과 동대문의 DDP는 너무도 극명한 대조다. 하지만 '옛것'을 되살리려는 정서와 '새것'을 향해 뛰어오르는 탐구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DDP는 우리가 '옛것'에 집착하고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시대적 요구를 웅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에게 스스로 다짐하고 또 세계에 보여줄 것은 숭례문의 대장간 못이 아니라 우리의 예술혼과 현대 기법이 합작한 동대문의 디자인 플라자라는 점이다.

30여년 전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을 둘러보고 우리 경복궁은 찾지 않으리라 했던 치기(稚氣) 어린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스페인을 여행했을 때 그 숱한 성당과 궁, 성보다 가우디의 건축물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은 기억도 있다. 이제 그런 것에서 치유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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