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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과 '살렘'

도깨비-1 2014. 1. 22. 14:39

 

'샬롬'과 '살렘'

입력 : 2014.01.21 05:36 / 조선일보  노석조 | 국제부 기자  
 
 
'샬롬이냐 살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스라엘에 갔을 땐 차라리 현지 말을 모르는 것이 마음 편한 듯하다. 좀 안다고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살렘'이라 인사하거나 팔레스타인 무슬림에게 '샬롬'이라 했다간 삿대질 받거나 욕바가지 되기 십상이다. 살렘은 팔레스타인인이 쓰는 아랍어고, 샬롬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다. 비슷한 발음인데 둘 다 '평화'라는 같은 뜻이며 인사말 등으로 쓰인다.

'다윗과 골리앗'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두 민족은 오래전부터 앙숙이다. 팔레스타인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개와 유대인 출입을 금함'이란 경고문이 걸려 있을 정도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이들은 말뿐 아니라 음식도 비슷하다. 똑같이 돼지고기를 금기시하고 먹지 않는다. 한쪽은 이슬람교, 한쪽은 유대교 율법에 따른 것일 뿐이다. 이들은 으깬 콩을 돌돌 말아 기름에 튀긴 동그랑땡을 복주머니 같은 빵에 넣은 '펠라펠'이나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 두 민족이 닮은꼴인 건 '토라' '코란' 등 각자의 경전이 쓰이기 전부터 이웃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역사책을 써왔다. 1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에는 민족 최대 기쁨의 날로 기록됐다. 독일의 나치 독재자 히틀러에게 대학살까지 당했던 이들이 2000여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자신들의 국가를 세운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등 아랍 국가들에는 정반대였다. 이들은 '알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르며 "나라를 빼앗겼다"고 울부짖었다. 이스라엘의 샬롬이 아랍에는 살렘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11일 또 한 번 같은 사실을 두고 정반대 역사가 쓰였다. 이날 사망한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이스라엘은 "국가 안보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위대한 수호자였다"고 했지만, 팔레스타인은 "드디어 학살자가 죽었다"고 한 것이다. 샤론은 1982년 9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 3000명이 집단 살해된 '사브라와 샤틸라' 사건의 배후로 아랍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사흘 내내 학살이 이뤄지는 동안 현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이들이 이스라엘군이었고, 당시 국방장관이 샤론이었기 때문이다.

샤론은 생전에 "뭐든 보이면 달려가 차지하라. 놓치면 죄다 적(敵)이 앗아간다"는 연설을 했다고 현지 일간지 하아레츠는 전했다. 팔레스타인과 치열하게 영토 싸움을 하는 시기에 그의 살벌한 '피아 식별론'은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혹자는 고혈압을 앓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170㎝에 115㎏일 정도로 뚱뚱했던 샤론을 가리켜 '적에겐 빵 부스러기도 흘려주지 않는 잔인한 욕심쟁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건국 1세대인 샤론이 고향인 텔아비브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자신의 역사를 뭐라 쓰고 마침표를 찍었는지 알 순 없다. 그러나 그의 다음 세대는 샬롬과 살렘이 하나 되는 '진짜 역사'를 써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땐 '텔아비브'란 도시의 뜻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땅이 '봄의 동산'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