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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칼럼 / '배임죄'로 처벌받을 정치인들

도깨비-1 2014. 1. 28. 10:13

'배임죄'로 처벌받을 정치인들

 

부동산 취득세 100일 늦게 인하, 재벌 총수 손해 끼치면 '배임죄'
국회의원도 피해 주면 처벌해야… 정부 경제 혁신 계획도 1년 늦어
대통령 임무 적정한 시기 실행했나… 사심 없이 반대 의견 傾聽 필수

 

송희영 칼럼/입력 : 2014.01.11 07:38 /조선일보

 

연말 정기국회에서 부동산 취득세를 내리는 법안이 통과됐다. 작년 12월 10일이었다. 법은 그로부터 100여일을 거슬러 올라가 8월 28일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했다. 뒤늦게마나 세금이 내린 것을 모두 환영했지만 국회는 해야 할 일을 100일 늦게 처리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기들이 애초부터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보지는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 형법은 '타인(他人)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355조 2항)'를 하는 것을 배임죄(背任罪)로 보고 있다. 주로 재벌 총수에게 적용되는 죄목이다. 주주들로부터 경영권을 위탁받은 기업인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거나 회사의 이득을 다른 호주머니로 챙겨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손해 볼 것이 뻔한 사업에 투자하거나 손실을 줄일 수 있는데도 제때에 손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인에게는 무서운 형벌이다.

국가를 주식회사의 하나로 본다면 국회의원은 선거라는 주주총회를 통해 선출되는 국가 경영인이다. 국민이라는 주주로부터 4년간 국정을 위탁받은 임시 계약직이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은 경영인과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기업인이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안기면 처벌받는 것처럼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정치인도 처벌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취득세 인하 문제를 놓고 따지자면 의원들은 "그러니까 8월 28일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하지 않았는가"고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할 일을 다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좋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막 피어나던 흐름을 타지 못했다. 국회는 국민이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을 최적(最適) 시점에서 하지 않아 경기 회복을 지연시켰다. 그에 따른 피해는 온 국민이 함께 맛보고 있다.

정부도 새해 들어 경제 청사진을 내놓았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은 '4% 경제성장, 국민소득 3만달러,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담고 있다. 여행의 목적지가 뚜렷해졌다는 점에서 모처럼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의아한 것은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면 왜 1년 전에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우리의 경기 흐름은 2010년 6.3% 성장한 이후 2011년 3.7%, 2012년 2.0% 성장했다. 누가 봐도 가라앉는 국면이었다. 2012년 총선·대선 과정에서 복지 욕구가 폭발하고 경제 민주화 목소리가 높아졌던 것도 경기가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많은 사람이 삶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을 인수받던 시점에서 경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했지만 경기 살리기보다는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앞세웠다. 온 국민이 정권인수위원회와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절정기(絶頂期)를 헛되게 보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나 장관은 배임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임무'를 적정한 시기에 실행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배임죄는 독일·일본에는 있지만 미국엔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경영인이 경영 실패에 따른 민사소송은 피하지 못한다. 무너진 회사의 경영인이 기소되면 법원이 반드시 짚고 가는 점검 사항이 있다. 그중 하나가 경영상 결정을 내리기 전에 구체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려고 애썼는가이다. 실패 위험을 피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미국 법원은 기업인이 다른 전문가의 반대 의견을 얼마큼 참고했는지도 살펴본다. 그래서 의사 결정 과정에서 경영진의 판단과는 다른 의견을 듣는 사외이사 제도가 발달했다. 미국에서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들이 돈을 버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우리 정치인들 가운데는 '사심(私心)을 버리고 일한다'는 분이 적지 않다. 1초를 아껴가며 보고서를 읽고 나라 경제를 잘해보려고 애쓰다가 풀리지 않는 것까지 타박하면 누가 국가 경영을 맡고 싶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사심 없이 자기 임무를 잘해보겠다면 자기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미국 법원에서라면 반대 의견이나 나와 다른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아 손해배상 판결을 받게 될 정치인이 정치권에는 많다는 뜻이다.

우리 헌법에는 국회의원은 일을 제대로 못 해도 유권자들이 소환해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가 없다. 다만 형법은 업무상 배임 행위에는 최고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356조) 하고 있다. 그 대상이 될 만한 정치인들 이름을 금방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송희영 |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