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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似而非 국가'에 묻는다

도깨비-1 2014. 1. 6. 19:09

문갑식의 동서남북

'似而非 국가'에 묻는다

입력 : 2014.01.06 05:43/ 조선일보/

문갑식 선임기자

 

예비역 육군 병장 우용락(禹榕樂·68)은 지난 3일 새벽 6시 12분 경북 구미발 서울행 KTX에 올랐다. 오전 10시 반 국립현충원을 찾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전우 100명이 함께했다. 그는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회장이다. 우 회장은 1968년 5월 베트남에 갔다. 나라에서 "가라"고 해 이듬해 8월까지 냐짱에 있었다. 십자성(十字星)부대 102후송병원 소속 의무병이었다. 그는 2011년 3월 회장에 출마해 장군 출신을 투표로 꺾고 당선됐다.

병(兵) 출신으로 그런 결심을 한 이유가 있다. "전우 8만여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장군들에게만 맡겨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묻는 것이었다. "올해가 월남전 참전 50주년인데 아십니까?"

대한민국은 1964년 붕따우에 제1이동외과병원을 열었다.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것이다. 이후 백구(1965년), 비둘기-청룡-맹호(65년)-백마(66년)-은마부대(67년)가 차례로 사이공부터 다낭까지 배치됐다. 1973년까지 참전한 국군은 32만5517명이다. 이 중 4407명이 전사하고 1만7060명이 다쳤다. 자유월남을 제외한 참전 7개국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우 회장은 물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국민, 있습니까?"

질문은 이어졌다. 그것은 국민을 향한 울분 같았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위령제(慰靈祭) 한번 지내고 기념탑 하나 세운 적 있습니까? 참전 기념관 있습니까? 그것보다 월남전 참전 기념일이 언제인지는 압니까?"

대한민국이 파병 선발대를 구성한 날은 1964년 7월 18일, 선발대 도착일은 그해 9월 22일, 파월 장병 국민대회가 열린 날은 65년 2월 9일, 월남공화국 한국군사원조단 설치령(대통령령 2163호) 제정일은 6월 21일이다. 그런가 하면 전투부대 1진인 청룡부대 결단식은 1965년 9월 20일, 주월한국군사령부 설치령 발효일과 맹호부대 환송식은 각각 같은 해 9월 25일과 10월 12일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의 월남 참전 기념일은 언제라는 말인가?

"지금은 사령부가 설치된 9월 25일을 기념하지만 한때는 9월 11일에 했죠. 나라부터 이 모양이니 좌파 단체들에서 우리보고 미제(美帝)의 용병(傭兵)이니 선량한 양민을 학살했느니 하는 헛소리를 해대는 거 아닌가요?"

우 회장 세대가 월남에 갈 때 우리 1인당 GNP는 76달러였다.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파병을 본격화하기로 한 이유는 여럿 있지만 1964년 서독에서의 기억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가난을 물리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관심 밖이었다. 유일하게 호의적인 서독의 루프트한자기(機)를 얻어 타고 갔을 때 그가 본 것은 까맣게 그을린 광부(鑛夫)들과 시체를 닦던 간호사들이었다. 간호사들이 떠나는 육영수 여사를 붙들고 울었다. "어머니, 어머니!" 광부들은 동석한 뤼브케 대통령에게 절을 하며 울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역사에 무지한 우리는 0~4세에게 월 22만~34만원의 복지를 주면서 참전자에겐 지난해까지 월 15만원을 줬다. 시위 벌인 일부 사이비 민주 투사에게 몇천만, 몇억원을 주면서 나라 세운 세대에겐 1년에 1만원 인상을 아까워하는 사이비(似而非)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