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이슈

[이슈 진단] 사실 취재를 포기한 우리 언론들이 부끄럽다

도깨비-1 2013. 9. 17. 08:01

[이슈 진단] 사실 취재를 포기한 우리 언론들이 부끄럽다

-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학   

  입력 : 2013.09.16 03:06 / 조선일보

검찰총장 의혹 취재해 확인 대신 '왜 이때냐' 묻고 음모론으로 모는 '구경꾼' 언론들…
피의자 조사할 때 이 정도 정황증거면 검찰은 의심 않을까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학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학
'채동욱 혼외 아들 의혹'은 검찰총장이 전격 사퇴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청와대는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후폭풍이 어디까지 갈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선일보와 검찰총장 채동욱이 진실 게임을 벌이는 동안 정치권과 언론은 사태의 본질에서 비켜선 여러 추측을 쏟아내어 혼란을 증폭하는 형국이다.

조선일보의 9월 6일자 첫 보도는 채동욱 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으며 그 아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요지였다. 채 총장은 모르는 일이라면서 부인하였다. 혼외 아들로 추정되는 아이의 생모임을 밝힌 Y라는 여인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에 채 총장은 아이 아버지가 아니고 채씨 성을 가진 다른 사람이 아이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편지를 보냈다.

조선일보 보도의 핵심은 요약하면 이렇다. ①서초동의 한 사립학교 기록에 혼외 아들로 추정되는 학생의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되어 있다. ②그 아이는 8월 31일 서울에 있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미국으로 떠났다. ③친모 Y 여인은 채동욱 총장이 부산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10년 넘게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④아들의 아버지 이름을 채동욱으로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가족도 아들의 아버지를 채동욱으로 알고 있었다.

검찰총장은 권력의 칼날을 쥔 막중한 직책이다. 반면에 권력 감시자 역할은 언론에 주어진 사명이다. 사소한 사생활이라도 결코 눈감아 줄 수 없는 것은 검찰총장이라는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은 무거운 윤리적 책임도 따른다. 목사나 신부와 같은 성직자의 간통이나 비리에는 일반인보다 훨씬 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은 언론이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것이고, 해야 한다. 왜 하필 이때냐, 어째서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았느냐 따위는 본질을 비켜 가려는 궤변이다. 언론은 기사가 될 수 있는 사건을 인지(認知)하면 당연히 취재를 하고 사실이 확인되면 용기와 소신을 가지고 밝혀낼 의무가 있다. 검찰총장의 의혹을 보도하면 검찰 흔들기가 된다는 주장을 다른 사안에 적용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공무원의 비리를 보도하면 해당 공무원은 물론이고 지휘 감독 책임을 물어 그의 상관까지도 수십 년 쌓은 흠결 없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해임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도 언론은 이를 먼저 고려할 수는 없다. 특정 부서의 비리를 파헤치면 그 부서가 동요하겠지만 그런다고 해당 부서 흔들기로 규정하여 언론의 '의도'를 문제로 삼는다면 언론은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조선일보 이외 언론의 태도이다. 왜 이 문제에 대해서 독자적으로 취재하여 '사실'에 접근하려 하지 않고 양측의 대결, 국정원·청와대의 개입 등의 음모론, 파워게임의 시각으로 사태를 보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언론이 구경꾼으로 비켜서서 관전평과 음모론을 증폭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 종편(綜編) 채널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수많은 '정치 평론가'의 의혹 제기에 전파를 낭비하고 있어 신생 종편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할 정도다. 조선일보 기사 가운데 오보(誤報)가 포함됐을지도 모른다. 과장 보도가 있다면 비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언론이라도 진영 논리에 입각해 사태를 바라본다면 심각한 고질병을 앓고 있으며 의무를 방기하는 태도인 것이다.

당사자인 채동욱 총장의 사퇴 성명도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모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혀둡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라는 대목이다. 의혹을 품을 상당한 근거가 있음은 앞에서 정리해 본 그대로다. '사실무근'이나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지닌 보도였다. 핵심 증거인 친자(親子)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학교 기록에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모가 확인해 주었으니 의혹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검찰도 피의자를 조사할 때 이 정도 근거와 정황 증거라면 상당한 의심을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채 총장의 성명서 전문>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으며

저는 오늘 검찰 총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주어진 임기를 채우지 못하여 국민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지난 5개월 검찰 총장으로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올바르게 검찰을 올바르게 이끌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모든 사건마다 공정하고 불편 부당한 입장에서 나오는대로 사실을 밝혔고 있는 그대로 법리를 적용했으며 그 외에 다른 어떠한 고려도 없었습니다. 저의 신상에 관한 모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혀둡니다. 근거없는 의혹 제기로 공직자의 양심적인 직무 수행을 어렵게 하는 일이 더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검찰 가족 여러분. 국민이 원하는 검찰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로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소중한 임무를 수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9월 13일 검찰총장 채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