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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진보와 민주주의의 敵, 이석기

도깨비-1 2013. 9. 10. 10:22

[윤평중 칼럼] 진보와 민주주의의 敵, 이석기

 

입력 : 2013.09.06 02:59 / 조선일보

수령 유일 체제의 北을 우러러보고 무장투쟁 迷夢에 빠진 사이비혁명가
민주공화국 뒤집으려한 국가의 敵… '그 정도에 안 흔들린다' 가벼운 인식
선진국일수록 반역죄 嚴罰… 국가危害 집단을 통제 못하면 內亂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013년 한국의 가을'을 뜨겁게 달구는 '이석기 사태'는 세 가지 차원에서 심각하고도 흥미롭다. 첫째, 통합진보당 이석기 그룹은 진보 전체에 막대한 타격을 가하는 중이다. 건국 이래 구조적으로 보수에 기운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한국 진보는 가시밭길을 헤쳐 왔다. 철 지난 이념의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이석기 일당의 망동(妄動)은 이런 진보의 노력을 깨트려 보수화의 흐름을 재촉한다. 사회적 균형이 크게 일그러질 게 분명하다.

현실 정치적으로 이석기 집단은 궤멸(潰滅) 직전이다. 정책 연대를 했던 민주당, 한때 같은 당 소속이었던 정의당조차 '이석기 쓰나미'에서 발을 빼는 게 생생한 증거다. 4일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이 의원 체포 동의안에 따르면 이석기 조직은 진보이기는커녕 수구 좌파에 불과하다. 조국 해방을 위한 무장 투쟁의 미몽(迷夢)에 사로잡힌 사이비 혁명가(革命家)는 한국 진보의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로 날아야 할 우리 사회에서 이석기 집단은 합리적 진보의 적(敵)이다.

둘째, 주사파 민중민주주의는 파산선고를 맞은 지 오래다. 이석기 일당이 우러러보는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상은 처참하기만 하다. 북한은 공동체의 주인이어야 할 인민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 반(反)민주주의의 전형이며 수령과 한 줌의 지배 엘리트가 폭압 통치로 민중을 착취하는 반(反)공화국 그 자체다. 200년에 가까운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낳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산당과 서기장의 독재로 귀결됨을 입증했다. 수령 유일 체제로 타락한 북한 현대사는 민중민주주의가 어떻게 퇴행하는지 정치적 막장의 극한(極限)을 보여준다. 민중민주주의를 외치는 이석기 그룹은 민주주의의 적(敵)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석기 집단의 내란 음모, 선동 등의 혐의는 치열한 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하다. 생존 문제가 걸린 이석기 일당은 끈질긴 법률 투쟁으로 무죄를 강변(强辯)할 것이다. 몇 해가 지나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온다 해도 곧장 역사 투쟁으로 옮아갈 게 분명하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충격이 가시고 한반도 내외 정세가 요동칠 때 이석기 파동이 어떻게 정리될지 지금으로선 알기 어렵다.

셋째, 법률적 판단 이전에 체포 동의안이 밝힌 이석기 조직의 언행(言行)은 엄중하기 짝이 없는 정치철학적 성찰을 강제한다. 바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며 '국가는 어떻게, 그리고 왜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평소에 우리는 국가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평범한 시민은 축구 국가 대표팀 대항 경기나 과속 운전 딱지 발부, 세금 낼 때에나 국가의 존재를 떠올린다. 마치 공기처럼 투명하게 우리를 둘러싸는 게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주권국가에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 '국가란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을 요구하는 공동체'라는 점이다. 국가가 영토 안에서 군대와 경찰을 운용하는 게 그 증거다. 물론 이런 물리적 폭력의 독점은 정당해야 하며 그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 국가 공권력에 도전하는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허용하는 정상 국가가 존재할 수 없는 근본 이유다. 체포 동의안에 서술된 이석기 조직의 행보는 위험천만하게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한국 현대사는 비대화한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로 점철된 시대였다. 독재 정권이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이라는 국가의 본질이 경시되는 역사적 맥락이다. 주정꾼이 파출소에서 난동을 벌이고 시위대가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행태에는 다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13년의 한국은 더 이상 1970·80년대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국가란 나와 우리 가족이 삶을 영위하면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공동체다. 그 공동체를 폭력으로 위해(危害)하려는 집단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내란(內亂) 상태다. 선진국일수록 반역죄를 엄격히 처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발달 장애를 앓는 주사파 광신도들의 집단 자위(自慰)' 정도로 '나라가 흔들리진 않는다'는 진보의 인식은 이석기 사태를 너무 가벼이 보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을 폭력으로 뒤집으려는 집단은 국가의 공적(公敵)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