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이석기의 야릇한 웃음
'대한민국 반대'에 관대했던 우리… 北에 너그러우면 성숙한 줄 알고
'反국가'를 '反정부'쯤 여기게 돼… 美, 스노든이나 매닝에 관용 없어
'다른 목소리'도 있을 수 있지만… 헌법이란 '울타리' 本質은 지켜야
입력 : 2013.09.03 03:22 /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 이석기가 카메라 앞에서 히죽이 웃는 얼굴은 온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지른다. 통진당 사람들의 '프락치' '조작' 운운하는 기자회견은 온 국민의 기(氣)를 막는다. 이석기가 엊그제 국정원 앞 데모에서 마치 영웅이나 된 듯이 손을 흔들어 대고 있는 모습은 진보 성향의 사람들마저 낯 뜨겁게 하고 있다. 이들의 뻔뻔함, 당돌함은 저들이 갑(甲)이고 대한민국이 을(乙)인 것처럼 만든다. 아니, 을도 아니고 국민을 졸(卒)로 만든다.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처신했기에 이석기 등(等)은 우리를 이처럼 우습게 아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깔보였기에 저들은 대한민국 대낮에 대로(大路)에서 저렇게 당당한 것일까? 우리가 저런 '돈키호테의 빨치산 용사 놀이'(진중권)에 흔들릴 나라는 아니지만 저런 자(者)들이 활개 치고 다니게 만든 것도 결국 '우리 수준' 아닌가?
문제의 근본은 반(反)국가 사범을 다루는 데 우리 사회와 우리 정치권이 너무 관대했거나 소홀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그 원인의 첫째는 과거 정치권력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국가 사범으로 몰아가거나 옭아맸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정치권력의 탈헌법적 유지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나 세력 또는 시민들을 이른바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거나 처치했던 사례들이 부지불식간에 국민으로 하여금 '반국가' 사범마저도 '반정부'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우리 국민 개개인이 정치권력에 실망하거나 자주 비판하다 보니 모든 반정부에 관대해지고 때로 그 반정부가 반(反)대한민국으로 변질해도 그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반국가'가 '반정부'의 허울을 쓰고 병균처럼 번져갔던 것이다. 또 저들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자기들 동조 세력이 많이 늘었다는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가 넘는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자유민주주의 실천에서도 상등권을 누리고 있다는 자부심이 때로 반국가적 행태에도 관대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점도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경제력·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어 비록 친북·종북이라도 이겨낼 수 있고, 또 북한에 좀 더 관대한 것이 성숙된 국민의 척도인 양 여기는 '유행성 북한병'에 걸려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철저한 나라일수록 반국가 사범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용도 없음을 우리는 최근 미국의 스노든 사건과 매닝 사건에서 목격하고 있다. 반테러 작전의 일환으로 많은 시민을 감청한 당국을 폭로한 스노든은 영원히 미국 땅을 못 밟을 것 같고, 미국 정부는 그를 받아준 러시아와 외교적 마찰 내지 불화를 감수하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군사 기밀 폭로에 관련된 매닝은 그가 단지 일등병인데도 35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이석기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당장 집권 세력에 도전하는 정적(政敵) 수준도 아니다. 과거 우리의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정치적 억압, 민주주의의 말살 등 탈헌법적 상황을 견디다 못해 들고일어난 저항운동자도 아니다. 그는 그저 아무런 논리도, 타당성도 없이 대한민국이 싫고 '북조선'이 좋고, 그래서 북한에 유리하고 대한민국에 불리한 일들을 골라 하는 지극히 저질스러운 종북자일 뿐이다. 그런 이석기는 지금 승자처럼 웃고 떠들고 다니고, 언론은 그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도 뭉그적거리며, 통진당 국회 진출에 대한 책임 면하기에 급급하다. 통진당은 자기들이 언제 대한민국을 긍정했다고 버젓이 국회 내에서 국회 마크를 배경으로 국정원의 '매수' '프락치' '조작'을 외치고 있다. 사건의 발표가 왜 굳이 이 시기인가라고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온전한 나라도 아니다.
우리는 '이석기 사건' 으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남북으로 갈려 치열한 대치 상황에 있다 해도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인 만큼 하나의 논리로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다른 목소리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다른 것'에 밀려나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헌법이라는 울타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본질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나라를 만들고 출발하기 전에 합의한 것이다. 이석기류(類)가 그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와 본질의 전당에 자리 잡는 일은 이제는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석기의 야릇한 미소와 뻔뻔함이 그동안 하루하루 사느라 바빠 제 발밑은 보지 못했던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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