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좀 오버하는 것 아닙니까
中이 北을 버릴 것 같다?
경제 민주화는 악법이다?
국정원 댓글이 국기 문란?
진주의료원 없애면
가난한 사람 치료 못 받아?
다들 오버하고 있다
-양상훈 논설위원/ 조선일보 2013. 06. 19.
요즘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오버(과잉 행동)하는 것 같다. 중국이 갑자기 다른 나라가 된 것 같은 뉴스의 진원지는 대부분 정부다. 얼마 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 지도층에서도 북한이 자산이라기보다는 부채가 되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군 지휘부가 중국을 다녀온 후엔 "중국 측에서 북한이 아니라 한국하고 국경을 맞대는 것이 낫다는 말도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자세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북핵이 현실화함에 따라 장차 한·미·일이 실제로 대응하고 나올 경우 중국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북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입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후 중국 정부는 치열한 내부 토론 끝에 '북한 정권의 안정이 북핵 폐기보다 우선'이라는 원칙을 정했다. 이 원칙은 아직 그대로다.
최근 중국 측은 공식 석상에서나 세미나 자리에서 우리가 듣기에 솔깃한, 심지어 약간 충격적인 얘기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얘기들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걸 내심 바라는 듯한 태도도 엿보인다. 이런 자리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아무래도 자기들 말을 북한이 들으라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며 "이 국면이 바뀌면 중국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학자는 "우리가 이 분위기에 취하면 중국에 또 한 번 당할 수 있다"고 했다. 길게 보면 역사는 중·북이 아니라 한·중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며, 중국의 전략에 대한 과잉 기대는 금물이다.
요즘 재계나 여권 다수, 보수 단체들은 마치 경제 민주화 입법을 하면 우리 경제가 주저앉을 것처럼 말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작명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본뜻은 너무나 심각한 경제력 집중을 좀 완화해보자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계층 양극화, 세대 양극화,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를 그냥 두고 우리 경제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재벌도 잘되는 네 곳만 잘되고 나머지는 어렵다고 한다. 30대 그룹 중 이 네 곳이 1년에 낸 이익이 다른 26개 그룹 전체가 낸 이익의 4배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이어지는 것도 경제력 집중 완화 문제와 끈이 닿아 있다. 그냥 손 놓고 있으면 결국엔 너나없이 다 위험해지는 사태가 온다. 과잉 입법은 막아야겠지만 경제의 저변을 확대하고, 우리 사회를 더 지속 가능하게 바꾸자는 시도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들어가 국내 정치 문제에 댓글을 단 것은 법 위반이다. 어찌 보면 큰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국기 문란'이라면서, 그것만 아니었으면 대선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그 댓글에 영향을 받아 투표한 사람이 2800만명 중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대선을 앞두고 경찰이 실제 조사 결과와 다른 발표를 했다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이 지금까지 다시 조사해 최종적으로 내놓은 결과를 그날 발표했다고 해도, 야당 후보를 직접 거론한 댓글은 3~4건뿐이었다는데 그걸로 선거 결과가 달라졌겠는가. 야권에서 제기할 만한 문제이긴 하지만 오버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국정원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는 진짜 문제는 제대로 논의하지도 않고 있다.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한 곳을 폐쇄하기로 하자 좌파 진영이 들고일어나 마치 저소득층은 치료받을 곳이 없어지는 것처럼, 공공 의료가 사라지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너무나 과장된 얘기들이다. 국민 모두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우리나라는 진주의료원 같은 지역 의료원을 빼고도 세계에서 드물게 뛰어난 의료 공급 체계를 가진 나라다. 미국에서 1억원을 줘야 받을 수 있는 수술을 우리나라에선 200만원에 받는 것을 목격했다.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 수가 적은 것으로 순위를 매기면 한국은 세계 상위권에 든다고 확신한다. 의료 사각지대는 줄여야 하지만 그런 명분에 편승해 철밥통을 지키려는 노조를 위해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오버해서 열을 내면 골수 지지자들이 열광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른다. 합리적으로 주장하면 골수 지지자들은 입이 나온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과거 한때 오버가 통하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한·미 FTA를 놓고 문제를 침소봉대하는 오버가 판을 쳤지만 국민 다수는 상식적 판단을 했고, 1년여가 지난 지금 그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버 필패(必敗)의 공식이 굳어지면 우리나라, 우리 사회는 몇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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