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스크랩] 古宅 체험과 민박까지 그리고 선조들의 지혜를 느길수 있는 민박

도깨비-1 2013. 1. 4. 09:25

 

 

                          거창군 위천면  鄭蘊先生 고택 

                           이제는 민박을 겸할수 있습니다

 

 

 

 

 

정온선생가옥(鄭蘊先生家屋.중요민속자료  제205호.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 )

사랑채 상량대에「숭정기원후사경진삼월(崇禎紀元後四庚辰三月)」의 묵서명(墨書銘)이 있다. 순조 (純祖)20년에 해당되며 서기로는 1820년이 된다. 이 집에는 정조(正祖)의 어제시(御製詩)도 전하여 온다. 현판(懸板)에 목각(木刻)하였다. 「정종대왕(正宗大王) 어제 일 장산색벽차아(長山色碧嵯峨) 종득건곤정기다(鍾得乾坤正氣多) 북거남래동일의(北去南來同一義) 정금견석부증마(精金堅石不曾磨) 숭정사경오(崇禎四庚午) 거창부사신금린순근서(居昌府使臣金麟淳謹書)」라 하였다.「숭정사경오(崇禎四庚午)」는 고종(高宗)7년(1870)에 해당한다. 그리고 하나 더 전하여 오는데「정종대왕(正宗大王) 어제 유제문간공정(諭祭文簡公鄭) 온가묘문(蘊家廟文)」이라 제(題)하였다. 글 말미(末尾)에「숭정기원후일백팔십삼년경오(崇禎紀元後一百八十三年庚午) 추게(追揭)」라 하였다. 순조(純祖)10년(年)(1810)에 해당한다. 정온(鄭蘊)(1569∼1642)은 초계정씨(草溪鄭氏)로 호는 동계(桐溪)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화의(和議)에 반대하다가 인조(仁祖)가 나가서 굴복하게 되자 분을 참지못하고 자결하려 하였으나 성취하지 못하고는 벼슬을 물러나 덕유산(德裕山)에 칩거하다 죽었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후손들이 그의 생가(生家)를 1820년에 중창(重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솟을대문의 대문간채를 들어서면 남향한 사랑채가 있다. ㄱ자형 평면이며 정면 6칸, 측면은 전퇴(前退) 있는 2칸 반이고 ㄱ자로 꺽이어 나온 내루(內褸) 부분이 칸반(間半) 규모이다. 이 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줄박이 겹집이며 전퇴(前退)를 두었다는 것과 내루에 눈썹지붕이 별설(別設)되어 있다는 점이다. 안채도 남향하였는데 정면 8칸, 측면 3칸반의 전후퇴(前後退) 있는 두줄박이 겹집이다. 사랑채의 평면구성과 함께 주목된다. 거창(居昌)은 남쪽 지방인데도 이 지역에 북방성향의 겹집이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산곡간(山谷間)의 집이어서 그럴 수 있었다면 이웃의 다른 집들도 이런 유형인지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안채나 사랑채는 기단이 낮은 반면에 툇마루가 높게 설치되어 있다. 고상성(高床性)이 짙다. 역시 남쪽지방의 특색에 벗어나지 않았다. 안채로 들어가자면 사랑채 좌측의 중문(中門)을 통하도록 되어 있으며 중문채는 3칸이다. 중문을 들어서면 방정(方正)한 내정(內庭)인데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내정 좌우로 각각 부속건물이 있다. 서측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큼직한 곡간(穀間)이 있다. 중방(中枋) 아래에 판벽(板壁)들인 이 곡간 뒤편에 내측(內厠)이 있다. 마당 동측엔 서향한 뜰아래채가 있는데 외줄박이 4칸집이다. 가묘(家廟)는 안채의 후원(後苑)에 삼문(三門)을 연 방곽내(方郭內)에 별설(別設)되어 있는데 전퇴(前退)가 있는 3칸이다. 규모가 큰 기와집들이 부재도 넉넉하여서 장대하고 헌칠하다. 학술적인 가치는 평면구성에 있다.(문화재청 자료)

 

 

 

 

 

 

 

 

이 집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줄박이 겹집이며 전퇴(前退)를 두었다는 것과 내루에 눈썹지붕이 별설(別設)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랑채 내부  민박을 할수 있는 공간이  세칸의 방과 욕실   차를 나눌수 있는 다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비들의 공간같은  신비의 감 마저  느겨 옵니다

 

 

 

 

 고택  사랑채에 딸려 있는 이곳에  다원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고방채: 서측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큼직한 곡간(穀間)이 있다. 중방(中枋) 아래에 판벽(板壁)들인 이 곡간 뒤편에 내측(內厠)이 있다. 마당 동측엔 서향한 뜰아래채가 있는데 외줄박이 4칸집이다

 

 사랑채의  뒷쪽   안채가 시작되는 공간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

 그 옛날의 종택의 우믈이 아직도 그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랑채 뒷부분  안채의 모습 입니다

 

 사랑채  전관의 모습 입니다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50-1에 소재한 정온선생 생가는, 지은지 500여 년 정도가 지난것으로 추정된다. 정온선생의 생가였고 종택이었다는 이 집은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205호로 지정돼 있다. 선생의 생몰연대가 조선조 때인 1569~1641년임을 감안한다면, 줄잡아 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집이다.순조 20년인 1820년에 후손들이 중창을 한 후로 줄곧 자리를 지켜 온 집이다. 이 집은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원형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의 중요한 자리를 하고 있다. 정온선생 생가의 구성은 대문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아래채, 곳간채, 사당으로 구성돼 있다.어느 사대부가나 그러하듯 하나 정도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 정온선생의 생가는 지역의 기후에 맞게 북부지방의 보편적인 결집형태와, 남부지방의 특징인 높은 툇마루를 두어 두 지역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근에 가볼만한곳은 거창 수승대 국민관광지와 금원산  그리고 무주 리조트 덕유산 국립공원등 좀 떨어진 곳은  합천 해인사 등이 있습니다 

 

 

 

 오래된 기와에서  올라오는 와송들이 뜨거운 날씨에 아주  말라 있네요

이곳에서  민박을  하실려면 미리 예약을  하셔야 하고

일반 펜션보다는 좀 가격면에서 비싸지만 그만한 효과를 보실수 있습니다

물론  욕실과 주방은 따로 준비되어 있고요

사랑채에는  독채로 렌트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별채에도 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단체  답사 손님들과 주위 관광 손님들 선비처럼 조용한 곳을  원하는 단체 손님들의 아주 좋은곳으로

추천하고  싶네요

주인장  전화번호:055-942-0173

                        016-518-4727

 

출처 : 거창에서 세계로
글쓴이 : 타이거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