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박철순 등)

김기태 감독 사건은 선배들 잘못된 유산의 하나

도깨비-1 2012. 9. 19. 12:12

 

김기태 감독 사건은 선배들 잘못된 유산의 하나
과거 지도자들의 악습을 답습해 나온 안타까운 사건
문상열 편집 편집부 입력 : 2012.09.17 09:18
[마니아리포트 문상열]모든 스포츠는 룰에 따라 경기가 이뤄진다. 가장 룰이 까다로운 게 야구와 골프다. 그런데 야구는 한 수 더 뜬다. 룰에 없는 바로 ‘불문율(Unwritten Rule)’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용도 한 권의 책을 이룰 정도로 많다. 다른 종목은 불문율이라는 게 거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장기 레이스를 치르다 보니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 지켜야 할 점들을 강조하려고 이런 불문율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LG 김기태 감독의 ‘야구모독’ 사건도 일종의 불문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연 한국 프로야구에 불문율이 얼마나 통용되고 있고 또 현재의 감독들이 이런 룰들을 얼마나 지켰는지 묻고 싶다. 한국 프로야구는 역사가 짧아서 불문율이라는 게 지켜지지 않았고 지도자들도 잘 모른다. 더구나 선배 지도자들의 나쁜 점들을 답습한 점이 많아 불문율을 운운하기 조차 어렵다.

거울 법칙이라는 게 있다. 욕하면서도 배우는 것이다. 학교의 학풍, 회사의 사풍 등이 대표적이다. 나쁜 점 마저 닮는다. 소위 말하는 우리의 원로 지도자들이 후배들에게 남긴 게 무엇인가. 그런 걸 유산(Legacy)이라고 한다. 프로야구를 오랫동안 취재한 기자로서 항상 되묻는 게 ‘우리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는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한 두 명에 불과하다.

원로 지도자들은 지금도 되풀이해서 얘기하는 게 있다. “우리 때는 야구공 꿰매서 했다. 요즘 애들은 좋은 환경에서 야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르는 게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한 탓에 프리미엄을 엄청나게 오랫동안 누렸다. 몇개 팀 씩을 전전하며 감독을 했던 게 바로 그 프리미엄이다. 아쉬운 점은 이팀 저팀 옮겨 다니며 오랫동안 지도자를 하면서 올바른 야구철학으로 후배들을 지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점이다. 그들이 올바른 야구를 했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현재보다 질적 양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져주기 경기, 기록 만들어주기, 심판판정 불복에 이은 덕아웃 철수 등 문제점은 수없이 많다. 선배들이 남겼던 발자취이고 요즘도 간혹 반복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이정훈 감독(천안 북일고)은 느닷없이 일본 선수들의 압축배트를 거론해 야구인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자국에서 야구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기껏한다는 말이 압축배트 운운이었다. 국내 프로판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었다. 이 역시 선배들의 못된 점을 배운 결과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이 없다.

국내 프로야구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 야구에 푹 빠져 있다. 사실 일본 프로야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태 감독도 일본 프로야구에서 연수했다. 일본 야구는 아직도 비합리적인 구석이 많다. 감독을 마치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것이 그렇다. 국내에서도 잘못된 시각 가운데 하나가 감독을 마치 전지전능한 신으로 보는 점이다. 감독은 리더십이 뛰어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자신이 야구를 바꾼다는 착각을 하면 곤란하다.

야구는 수십년 동안 도도히 흘러온 강물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보비 발렌타인 감독 이 망가지는 것을 보라. 국내 프로야구는 일본 야구, 특히 감독들의 영향을 받아 모든 걸 다 뜯어 고치고 바꾸려고 한다. 김기태 감독의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방망이 한번 잡지도 않은 투수를 대타로 기용하는 ‘넌센스’ 방법으로 선수단을 휘어 잡으려는 태도는 전근대적이다. 선수 기용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고? 팬들과 야구인 모두가 상식적으로 인정하는 선에서의 선수 기용이어야 된다는 점도 먼저 알아야 한다. 모두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이 있다.

이만수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코치로 오랫동안 활동했으나 올시즌 SK 야구는 ‘한국형 이만수 야구’다. 메이저리그식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LG 김기태 감독이 SK 이만수 감독에게 쌓인 감정 가운데 하나가 6월 30일 경기다. 8-0으로 SK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원은 무관심 도루를 줬지만 김재현은 2,3루를 연거푸 훔치면서 상대를 자극했다. 야구의 불문율 가운데 ’2점 이상 뒤지고 있을 때는 결코 도루를 하지 마라(Never steal when you’re two or more runs down.)’는 게 있다. 이 감독이 불문율을 제대로 숙지했으면 김재현의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소리를 쳐서라도 막아야 했다. 김재현은 모를 수 있다.

요즘 감독들은 많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그대로 인 게 예전 지도자들 처럼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면 상대가 잘해서 진 게 아니고 우리가 못해서 진 거다. 패인은 감독 자신과 우리 팀에게 있다. 물론 패인은 분석해야 겠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상대가 우리보다 강해서 이겼다고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게 되풀이 되다 보니 후배들도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점을 배우게 된다. 승부세계의 기본은 ‘Better teams win the game.’이다. 전력이 나은 팀이 이기는 법이다.

김기태 감독은 ‘투수 대타’ 사건을 두고 기자들에게 이만수 감독의 매치업을 갖고 “상대가 우리를 갖고 놀았다”고 했다. 이만수 감독은 애둘러서 야구철학이 다르다고 했는데 김기태 감독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만약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LG가 매타자 때마다 투수 매치업을 하면 그건 비난받을 만하다. 상대에게 고의적으로 고추가루를 뿌리려는 게 역력하니까. 하지만 플레이오프 4강 경쟁을 벌이는 SK는 당연히 투수 매치업을 해야 한다. 어디서 야구를 배웠는지.
이제 프로야구도 30년이 흐르면서 야구 불문율을 내세워 상대방 감독의 매치업을 걸고 넘어가는 시대가 됐다.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닌,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야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Thinking baseball은 있어도 Thinking Football, Thinking basketball은 없다. 야구는 매우 독특한 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