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학자 보고서를 마녀사냥한 한국은 아직 암흑시대다

도깨비-1 2012. 4. 16. 10:00


[아침논단] 학자 보고서를 마녀사냥한 한국은 아직 암흑시대다

 

근거없는 이영조 교수 음해
지역구 공천받자 또 재연돼
광주 '민중반란'은 악의적 오역
4·3은 남로당 무장봉기로 시작
좌파의 야비한 중상에 동조한
새누리 비대위원들 사과해야


   강규형 -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역사학/ 조선일보 2012. 04. 16

 

   총선은 예상대로 시끄러웠다. 선거란 원래 상호 비난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패륜적 발언처럼 실제 있었던 일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고, 당선자 중 성추행 논란 등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도 마땅히 조치돼야 한다. 그러나 허위 사실을 가지고 비방해선 안 된다. 후진 사회일수록 중상모략이 잘 통한다. 불행히도 한국은 이 점에선 후진적 암흑사회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그중 가장 심각한 예를 하나 살펴보자.
   이영조 경희대 교수가 새누리당 서울 강남을 지역구 공천을 받은 직후부터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그가 진실화해위원장 재직 시절인 2010년 발표한 영문 보고서에서 "제주 4·3은 폭동" "광주 5·18은 민중 반란"이라고 했다는 것이 비방의 요지였다. 이런 음해는 보고서 발표 당시 한 인터넷 신문이 무분별하게 저질렀고 여러 매체와 인터넷 공간에 무비판적으로 인용됐다. 국회에서도 야당 국회의원들은 사실 확인도 안 하고 그를 매도했다. 이러한 '인격 살인'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일부 비상대책위원이 가세하면서 그는 소명 기회도 갖지 못하고 공천이 전격적으로 취소됐다.
   이 문제는 결국 엄밀한 발표문 분석을 통해서 시비를 가려야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우리 사회 특유의 사람 죽여놓고 어물쩍 넘어가는 태도는 용납될 수 없다. 먼저 '민중 반란'이라고 악의적으로 오역(誤譯)된 popular revolt란 영어 단어를 살펴보자. revolt는 '항쟁' '의거' '반란' 등 여러 뜻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발표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항쟁'의 뜻으로 쓴 것이 자명하다. 발표문은 '광주민주화운동(Gwangju Democratic movement)' '광주학살(Gwangju massacre)'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병기하며 5·18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했다. 5·18기념재단의 영문 홈페이지도 revolt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헝가리 국민이 공산 압제에 항거한 1956년 '헝가리 의거'도 Hungarian Revolution이나 Hungarian Revolt라 부른다.
   이영조 교수는 또한 4·3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a communist-led rebellion(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이 발발했다"고 서술하고, 그 이후 진압 과정에서 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실을 밝혔다. 이는 공정한 서술이다. 제주 4·3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공식 보고서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제헌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4월 3일 새벽을 기해 무장봉기를 조직적으로 일으켜 무차별 살해와 방화를 해 초기의 양민 희생을 야기했다는 사실은 이견(異見)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후 군·경에 의한 과잉 진압이 진행돼 무고한 희생자도 많이 발생하는 비극이 생겼기에 우리 정부는 여기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남로당 제주도 무장봉기의 최고 지도자였던 김달삼은 북한으로 탈출해 훈장을 받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됐으며 무장 공비를 이끌고 남파돼 태백산에서 활동하다 1950년 3월 토벌대에게 사살됐다.
   수구 좌파의 전형적인 수법은 쓰러뜨릴 목표를 정하면 허위 사실을 가지고 무차별 맹폭(猛爆)을 가하는 것이다. 여기에 좌파 언론과 정치인이 합세하고, 인터넷 공간에선 생각 없는 네티즌들이 이런 허위를 무비판적으로 실어나른다. 이영조 교수는 수구 좌파의 반(反)대한민국적 사고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수구 좌파의 야비함이야 원래 그렇다 치고, 이에 가세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들의 행태는 무엇인가? 물론 급박한 선거전 와중에 신속히 사태를 진정시키려 한 점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호도하고 허위에 동조한 것은 용인될 수 없다. 이영조 교수의 공천에 문제를 제기한 비상대책위원들은 이 교수의 발표문은 제대로 읽어봤는지 궁금하다. 이들은 외국 유학을 한 사람들이라 영문 발표문을 이제라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평가해 봤으니 본인들 주장이 옳았는지는 양심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본인들이 틀렸다면 지금이라도 이 교수에게 사과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런 민감한 문제는 학문적 엄정성과 이성적 판단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직도 암흑시대를 살아가는 우중(愚衆)일 뿐이다. ▣